건강칼럼-고시촌의 성, 그리고 천사의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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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고시촌의 성, 그리고 천사의 타락
  • 법률저널
  • 승인 2010.07.1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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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열린내과 원장

고시촌은 엄격한 자기 [도야]가 요구되는 촌락입니다. 그래서 ‘-촌’자가 붙어 있습니다. 끝없는 자기 연마와 자기 훈련이 필요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 인간을 확인하는 능력 등을 동시에 연습하게 됩니다. 마치 중세 시대에 수도원의 수도사 훈련 과정과 같은 고독하고 극렬한 과정이 그 곳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세 도제[apprentice-ship] 사회처럼 전문 장인이 되기 위한 지적 훈련의 장인 것입니다. 여기서 전통적으로 이성 사이의 성[sex]은 매우 금기시되어 왔습니다. 성에 대한 개방이나 지적 관심이 고도의 숙련도를 요구하는 지적 작업에 크게 장애가 된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부장판사 급의 ‘성적 향응’을 상상하게 하는 커다란 파문이 일어나면서 도대체 법과 성[sex]의 관계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의 전문적 공로를 쌓고 사회 정의 실천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사들에게 우리 사회가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네요. 정말 이렇게 가혹한 퇴출을 선물할 수밖에 없는지 매우 애석한 정황이 눈앞에 연출되고 있습니다. 그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성[sex]이라고 하겠습니다. 목사의 성[sex]은 벌써 옛날에 ‘주홍글씨’라는 중편 소설로 속세에 경종을 울려주었고 지금도 성직 사회의 성은 말할 수 없는 금기 사항에 속합니다. 법조인들의 성도 과연 그러한가요?


고시촌에 최근 풍속도에서 커다란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학원이건 독서실이건 간에 매우 많은 비율에서 남녀 커플들이 같이 동반 출석하고 있습니다. 연수원에서 여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40%를 넘은지 오래입니다. 그에 따라 커플들의 이합집산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기에다가 성 개방의 풍조가 사회 전반에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기에 고시촌만이 고립되어 있다거나 아니면 고시촌 시민들만 높은 성적 순결을 지키고 있다거나 하는 낭만적인 상상은 이미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고시촌에서 성업하고 있는 퇴폐 업소들만 하더라도 그것이 시장 지향적인 산업이니만큼 시장 수요가 상당히 높다고 하는 확실한 반증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오래된 속담 중에 [고시촌 10년에 과부 하나 얻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고시촌 사회에서도 역사적[?]으로 보면 성적으로 많은 갈등이 존재하였다고 짐작됩니다. 지금도 저의 상담인 중에는 고시촌 시민으로 사시면서 자주 찾아와 발기부전 치료제를 얻어가는 분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결혼한 것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니면서 나이 먹은 채로 고시 중에 있으면서 넘쳐나는 성적 욕구를 적절하게 해결하고 있는 능력 있는 분들입니다. 경구피임약을 받으러 오는 여학생들도 이제는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려 깊은 남친들은 대신 자기가 받으러 오기도 합니다. 임신 여부인지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임신 피하는 법은 [1주 놀고 2주 금기하고 다시 1주 놀면 되는 것]인데 자세한 것은 오셔서 상담하세요. 조물주가 1달에 절반을 실컷 놀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말입니다.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건강칼럼에서 성을 다루는 것은 도덕적 법적, 사회적, 기준을 논하기 위한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경제적 손실을 지적하거나 두뇌 기능의 분산을 평정하여 성을 지양하라고 설교하는 것은 더욱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넘쳐나는 신세대의 성적 분방함과 고시촌 특유의 중세적인 계율 아닌 계율 사이의 갈등 등을 짚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만 짚어도 독자들은 이제 필자의 심중을 이미 투철하게 파악하셨을 것입니다. 필자는 있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거기서 건강을 지켜나가자고 그 요점을 설파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두뇌 건강을 위하여 정상적인 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현실적인 고시촌 풍속도는 시민들이 건강하다는 실증이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사[human history]에서 미루어 보면 그러한 모습이 진실에 가깝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방종이 아니어야 한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남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스폰서가 자청하고 나서서 일회적인 성을 유도하거나 방조 내지 헌상하여서는 안 되고 그럴만한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연애로 치닫고 있는 현재 고시촌 풍속은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는 연애 당사자들의 자유로운 정신이라고 하겠습니다. 필자는 어렸을 적에 공원에 놀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원의 울타리를 붙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한없이 울면서 사랑의 노래를 오래 부르며 울부짖는 젊은 대학생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의 필자가 정상을 한 바퀴 돌아서 내려올 때까지 2시간이 넘도록 그 자리에서 떠나간 연인이 남긴 상처를 세상에 항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안 되겠다 생각합니다.


감히 [연애는 자유롭게 떠나보냄을 의미한다]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요? 고시촌의 여성 시민들은 과연 [황진이] 같은 [홍장] 같은 도전이 가능할까요?

열린내과 02-877-0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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