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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유머 몰이해의 바보기자들, 아웃사이더 진중권의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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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유머 몰이해의 바보기자들, 아웃사이더 진중권의 도발
  • 오시영
  • 승인 2020.02.21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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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오시영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기자가 되는 것은 죄악이다. 특히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더욱 그러하다. 유머는 언제나 반의적이다. 표현과 의미가 서로 다르게 표현되어 웃어야 할 때 울게 만들고, 울어야 할 때 웃게 만드는 것이 유머의 진정한 힘이다. 그런데 유머를 대함에 있어 표현에 집착하게 되면 화자의 진의를 왜곡하게 된다. 그런 해석은 처음에는 자기의 해석이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주장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스스로 바보임을 증명하게 된다. 그런데 기자나 전달자의 해석 오류에 동일한 해석 오류를 범한 이들이 가세하게 되면 그 오류가 묘하게 힘을 얻게 되고, 거칠어지게 되고, 억지가 통하는 현상이 일반화되기도 한다.

필자의 기억 속 언어 해석의 최대 오류사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통령 못해 먹겠다.”라는 말에 대한 집단적 오류였다. 거의 억지에 가까운 오류해석이 광풍처럼 편을 갈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라는 저 말은 “정말 대통령다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최고로 잘해 보고 싶다.”라는 간절한 바람의 반의적 표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공격하는 많은 이들은 위 말을 문장 그대로 해석을 강제하면서 “그렇다면 사퇴하라.”라고 억지 아닌 억지를 부리기까지 하였다. 한국어의 묘미로 “정말 더러워서 못해 먹겠네.”라는 말이 있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를 받거나, 계약 성사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거래처의 들어줄 수 없는 부당한 요구를 접하거나, 자식들이 지나치게 속을 썩히는 등등, 정말 잘해보고 싶은데 잘 되지 않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우리는 저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 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못해 먹겠다.”라는 말로 표현하게 된다. 이처럼 반의어는 표현에 스며들어 있는 화자의 본의를 제대로 파악할 때 비로소 소통이 가능하게 된다.

지난 13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축을 위무하기 위하여 방문한 한 시장에서 그전부터 알고 있다고 밝힌 종업원의 손님이 줄었다는 말에 “요새는 좀 손님들이 적으니까 편하시겠네요.”라고 농담한 것을 놓고 일부 정치권을 비롯한 언론들은 “소상공인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라고 비판을 가하였다. 물론 진지하게 함께 걱정하는 표현방법을 택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저 표현도 종업원에 대한 위로의 말로 흔히 사용되는 반의적 표현방법으로 충분히 우리 사회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 표현방식인 것은 분명하다. 손님이 적어 일 양이 줄어들어 편해서 좋겠다는 비아냥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반의적으로 “매상이 줄어들어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우세요!”라는 위로의 말로도 해석될 수도 있다. 우리말은 문자로 써 놓으면 똑같은 경우에도 화자의 억양과 어미의 톤에 따라 부정이 긍정으로, 긍정이 부정으로 해석되는 묘한 이중적 언어적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좋은 언어이다. 이중적 해석이 이루어지는 언어는 화자의 진의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법학입문의 기초과정에서 “법 해석론”을 배우게 되는데, 해석의 두 주류로 문리해석과 논리해석이 있다. 두 해석이 충돌할 경우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 것이냐 인데, 경험이 부족한 법률가는 문리해석에 치우쳐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만, 경험이 많고 실력 있는 법률가는 논리해석, 즉 전체 구조 속에서 그 표현이 차지하고 있는 진의를 제대로 해석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배운다. 즉 문리해석에 치우치면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논리해석에 의해 전체를 총체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올바른 결론을 도출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해석에 위배되는 결론을 도출하게 되면, 모래알 씹은 듯 무언가 마땅치 않고, 뒤가 개운하지 않다.

언어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SNS시대를 맞아, 모두가 무엇이든 휘갈겨 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모두에게 주어진 하얀 백지가 구깃구깃 구겨서 버릴 쓰레기 같은 낙서장이 될 것인지, 아니면 많은 의미를 부여할 살아있는 생각의 저장창고가 될 것인지는 쓰는 이에게 달려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모두들 젖먹이 어린 아이라도 되어 버렸는지 자기에게 주어진 하얀 백지를 쓰레기 같은 낙서장으로 낭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SNS에 기록된 언어는 그 언어가 옳든 그르든, 좋든 나쁘든 가리지 않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역사가 되고 있다. 모두가 자기의 역사를 만드는 고백서를 쓰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 기록을 통해 자기 스스로 자신의 목을 치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의 단계를 넘어 자승자살(自繩自殺)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오랫동안 글을 써온 필자도 그 중의 하나이겠지만, 인간은 불완전체인 까닭에 곳곳에 스스로 자기를 향한 공격무기를 설치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문제는 그 불완전성에 대한 자각을 깊이 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이들은 조심스레 겸손해지지만, 그 불완전성을 무시한 채 완전체라고 착각하는 이들은 여전히 자승자박의 단계를 넘어 자승자살의 길을 계속해서 걷는다. 지난 1월 29일자의 고려대학교 임미리 연구교수의 경향신문 정동칼럼 “민주당 빼고”라는 칼럼 역시 그런 과정 중의 한 꼭지 글이라 하겠다. 문재인 정부, 민주당 정권이 언제나 옳고 모든 것이 완전한 집권세력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지난 2년 9개월간의 집권 기간 동안 잘못한 것도 더러 있고, 집권세력 중 일부가 권한 남용이나 부정부패행위에 연루되어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열을 잘못한 자와 셋을 잘못한 자가 있을 경우 모두 처벌해야 하는 것이 옳지만, 처벌의 강도에서는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똥 묻는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라는 속담이 만들어지지 않았겠는가?

문재인 정부 또한 시행착오와 오류 또한 적지 않지만, 지난 집권 33개월 동안 “최루탄을 단 한 발도 사용하지 않은 정부.”라는 것만으로 충분히 다른 정권과 차별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본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는 적지 않는 최루탄이 난무하였고, 시위진압용 물대포가 난사되어 귀한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 적도 있지만, 문 정권 들어 촛불집회와 광화문태극기집회로 상징되는 수많은 집회시위 및 노동자 등의 시위가 수없이 많았지만, 여태까지 단 한 발의 최루탄이 사용되지 않고, 단 한 번의 물대포도 난사되지 않았다는 것이야말로 문재인 정부가 시위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얼마나 존중하는 민주정부라는 점을 증명하는 실천적 증거라고 하지 않겠는가? 최루탄과 물대포로 상징되는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의 차이에서, 일부 소수의 비위사실이 지나치게 침소봉대되어 “민주당 빼고”라는 결론에 이름은 커다란 오류에 의한 일방적 해석일 뿐이라는 비판이 가해질 수도 있다고 하겠다.

“민주당 빼고”라는 칼럼은 언론중재위원회로부터 “공직선거법 제8조 언론기관의 공정보도의무위반”으로 판정되어 이 칼럼을 게재한 경향신문에 대해 “권고” 결정이 내려졌다. 위 보도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총재 명의로 임미리 교수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하였다가 “집권 여당의 언론 통제”라는 언론사들의 프레임에 갇혀 자진하여 고소를 취하하였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개인적으로 임 교수를 고발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민주당이 임 교수를 고발한 것에 대해 찬성하지 않지만, 객관적으로 그 고소에 법적 잘못이 있다고는 보지는 않는다. 법률가로서, 언론중재위원회가 결정한 것처럼 공직선거법 제8조가 정한 “언론사는 정당의 정강·정책이나 후보자의 정견 기타사항에 관해 보도·논평을 공정하게 해야 한다.”를 위반하였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언론사 기자라면 민주당의 위 고발사건을 비난하기에 앞서 “임미리 교수의 칼럼의 위법성”에 대해 먼저 판단해야 하고, 그 판단을 전제로 “고발의 적정성”을 비판해야 함에도, 우리 대한민국 언론은 그러한 판단의 절차적 과정 없이, 다시 말해 전자는 무시 생략된 채 후자에만 열을 올리는 형국이어서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스스로 자신의 과잉반응에 대한 반성으로 고소를 취소한 것은 나름 잘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한 가지 어리둥절한 점은 공직선거법 위법행위를 한 이는 임미리 교수인데, 이를 고소하였다가 취소한 민주당이 임미리 교수에게 사과하였다는 점이다. “민주당 빼고”를 주장하여 선거법을 위반한 임미리 교수가 민주당에 사과하는 것이 옳을 것 같은데, 반대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에 대한 언론의 적확한 판단이 혼돈에 빠져 있음은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역시 일시적 손해에도 불구하고 고수해야 하는 자존심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최근 정치판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각 당 국회의원 공천 대상자들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마치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의 정당성에 대한 판단의 전권을 가진 심판자인 양 피아를 가리지 않고, 좌우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못 마땅하다는 듯한 촌평이 이어지고 있다. 그의 비판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물론이고 자유한국당, 신보수당 등 보수적 정당들이 합친 미래통합당 역시 전전긍긍하고 있다. 진중권 교수의 팔로워들의 집단적 세력화에 의한 여론 왜곡현상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라는 옛말이 있듯이, 구더기가 들끓더라도 장은 담가야 한다. 예전에 위생시설이 완벽하지 않았던 시절, 메주를 담가 된장과 간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파리가 유충을 생산해 내었고, 그 유충들이 된장 속에서 버글거렸던 것일 뿐, 구더기가 결코 된장의 본질은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는 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아웃사이더의 주관적 주장에 지나치게 두려움을 가지고 움츠러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공천대상자가 자기 정당의 정체성에 부합하면 과감하게 공천할 것이고, 그가 가진 흠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투표를 통해 판단 받고 승복하면 된다. 그 흠이 심판을 통해 치유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아웃사이더들의 세상이 전개되고 있다.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나 진중권 전 동양대교수나 어찌 보면 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라 할 수 있다. 전임교수가 되지 못하고, 박사 학위를 받지 못한 그들이, 아웃사이더가 사회적 구조를 넘어서 메인스트림에 합류하려면 각고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어찌 보면 위 두 사람은 메인스트림의 가장자리의 한 축에 한 발을 올려놓았다고 평가될 수도 있다. 하지만 메인스트림은 물방울 하나가 아니라 도도한 물줄기여서 아웃사이더가 그 물줄기를 이겨내며 굳건하게 정착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개인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아웃사이더들이 메인스트림에 도전하고 있는 세상, 그게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지향하고 있는 방향이고, 그 지향성은 옳다.

그 와중에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여서 대통령의 지지를 받고는 있지만, 전국 검찰의 상층부 대부분은 서울대 법대 출신 검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 어느 조직보다 서울대 법대 출신 분포도가 높고, 그들이 형성한 검찰의 메인스트림은 강고하다. 경희대 출신 혈혈단신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제대로 지휘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 예전 전두환으로 상징되는 하나회라는 육사 출신의 사조직이 육군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처럼 – 그래서 12.12반란을 일으켜 군사독재정권을 세웠던 것처럼 서울대 법대 출신 검사장들이 메인스트림을 형성하고 있는 검찰조직에서 그들이 과연 검찰과 행정수반인 대통령이라는 국가조직에 충성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사적 학연관계를 중심으로 계속하여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저항할 것인지 문재인 대통령은 심도 있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한양대 법대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 출신이 아니다. 테네시 윌리암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아닌 “서울대 법대 출신 검사들의 사적, 학연적 결합관계가 기반이 된 검찰 개혁 저항의 열차”의 종착역이 어디가 될 것인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과 공수처 설치의 구체화 과정에서 결론 내려질 것이다. 아웃사이더들의 분발과 자중이 이중적으로 요구되는 세상에서, 최루탄의 강제된 눈물이 없는 세상, 100%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살 만 하지 않는가? 유머를 문리해석하며 목숨 거는 바보 기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 세상이 그대들 억지에 속아 넘어갈 만큼 그리 어리숙하게 보이는가?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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