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41-법조인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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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41-법조인의 덕목
  • 손호영
  • 승인 2021.10.1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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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법학박사

한(漢)나라 문제(文帝) 시절, 태자가 수레를 타고 궁궐로 들어오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법에 따르면 궁궐로 들어오는 이는 수레에서 내려 걸어와야 하는데, 태자는 그 지위와 위세를 믿고 굳이 번거롭게 수레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궁문을 지키며 출입자를 단속하던 장석지는 태자를 급히 따라가 수레를 세웁니다. “수레를 타고서는 궁궐로 들어가시지 못합니다.” 단호한 장석지에, 태자는 분노보다는 당황했을지 모릅니다. 장석지는 수레를 막아서는 것을 넘어 태자를 불경(不敬)으로 탄핵하기에 이릅니다. 황제는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였다며 장석지에게 자신의 불찰을 이야기하며 예를 갖췄고, 태후는 태자의 선처를 구하는 조서를 보냈습니다. 그때야 장석지는 태자를 궁궐로 들였습니다.

황제는 장석지의 곧은 태도를 눈여겨보고는 지위를 높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장석지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를 만납니다. 황제가 수레를 타고 다리를 지나던 중, 시골 사람이 갑자기 다리 밑에서 뛰어나옵니다. 수레를 끌던 말이 놀라자, 병사들이 그를 잡습니다. 황제는 당시 형벌을 맡던 업무를 맡은 장석지에게 그의 처벌을 명합니다. 시골 사람은 “황제의 수레가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다리 밑에 숨었는데, 이제는 다 지나갔다고 생각해서, 나왔을 뿐입니다.”라고 구슬프게 주장합니다. 장석지는 그가 황제가 출행할 때 앞을 막았다며, 벌금형에 처한다고 판결합니다. 황제는 어이가 없어 장석지를 문책합니다. “말이 놀라 내가 다칠 뻔하지 않았는가, 고작 벌금형이라니.” 장석지는 말합니다. “법은 황제와 천하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황제께서 저에게 그를 넘기셨으니, 저는 천하의 법을 공정하게 적용할 뿐입니다. 한쪽으로 기울면, 천하의 법이 제각기 무겁게도 가볍게도 될 것이니, 헤아려 주십시오.” 황제는 수긍합니다.

이후 한 도둑이 옛 황제를 모시는 사당에서 옥가락지를 훔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황제는 그를 장석지에게 처벌하라 하였는데, 장석지는 도둑만을 처벌하는 판결을 내립니다. 황제는 몹시 반발하며, 그 집안 식구를 모두 처벌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장석지는 법에 의하면 자신의 판결이 옳다면서, “죄는 같아도 무겁고 가벼운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어야 합니다. 종묘의 물건을 훔쳤다 하여 집안 식구까지 모두 처벌한다면, 만약 옛 황제의 묘에서 한 움큼의 흙을 훔쳐갔을 때에는 어떻게 처벌해야 하겠습니까.” 황제는 숙고하다가 그의 판결을 받아들입니다.

역사서 사기(史記)는 한나라 시절 법을 다룬 장석지를 조명하면서, 그의 원칙론과 융통성을 모두 다룹니다. 장석지의 일화를 살펴보면서 느끼는 그의 가장 큰 덕목은 지식이나 지혜가 아니라 용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장석지는 가장 큰 권력인 황제의 비위를 거스르면서도 자신의 판단을 내세웠는데,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보면 자신의 안전이 위태로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용기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생각해봅니다. 장석지 스스로 말하는 바와 같이, 바로 ‘법’이 그의 떳떳함을 근거지웁니다. 황제와 천하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지켜야 하는 것, 어느 쪽으로 기울이지 않아 누군가에게는 무겁고 누군가에게는 가볍지 않은 것, 공정함과 공평함. 장석지는 법이란 바로 이러하다고 생각했고, 자신은 그 법을 지키고 적용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장석지가 생각하는 관리상은 다음 사례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장석지는 황제를 따라 호랑이를 기르는 동물원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황제는 책임자에게 동물원에서 기르는 여러 짐승들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하였지만, 그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마침 동물원의 사육사가 있기에, 황제가 그에게 다시 묻자, 그는 기회를 만났다며 짐승들에 대해 물 흐르듯 상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황제는 “관리란 이러해야 한다.”며, 그를 동물원의 책임자로 임명하려 했습니다. 장석지가 한참 궁리하다가 황제에게 덕망 높은 신하에 대해 묻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윗사람으로서 덕이 있는 사람이다.” 황제의 대답에, 장석지는 말합니다. “그는 일을 논할 때, 말을 입 밖으로 잘 내지 못하며 우물쭈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주변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사육사를 책임자로 임명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황제는 끄덕이며 앞서 행하려 했던 임명을 중단합니다.

동물원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책임자가 각 동물의 습성을 모두 파악하고 있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책임자는 동물을 기르는 사육사를 관리하고, 동물원의 관리와 운영에 힘쓰는 것이 본연의 역할일지 모릅니다. 동물원에 잠깐 들른 황제가 찰나의 궁금증으로 내던진 질문에 대답을 잘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육사가 동물원의 책임자로 임명된다는 것은, 즉흥적일 뿐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장석지는 자신의 위치에서 그에 맡는 역할을 다하는 것이 올바른 관리라고 여긴 것이고, 책임자와 사육사의 역할은 각기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바를 황제에게 진언하여, 바로잡았습니다.

장석지의 오랜 일화는 오늘의 법조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의미가 있습니다. 방대한 지식보다, 탁월한 지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법조인이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실현해나가는 용기가 아닐까 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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