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조양방직’과 ‘강화리조트’의 강화도 이미지 쇄신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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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조양방직’과 ‘강화리조트’의 강화도 이미지 쇄신프로젝트
  • 신희섭
  • 승인 2018.11.1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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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강화도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고인돌, 전등사, 몽고항쟁, 초지진, 문수산성, 인삼, 순무김치, 한강하구, 대략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하지만 나에게 강화도는 기억이 좀 다르다. 우선 냉전의 기억이 있다. 강화도는 내 어머니의 고향이다. 그래서 여름방학과 겨울 방학이면 강화도의 외가를 갔다. 민통선(민간인 통제선)안에 있던 외가를 가는 과정은 복잡했다. 총 3번의 검문소를 지나야했다. 마지막 검문소에서는 어른 중 누군가가 주민등록증을 맡겨야만 출입이 가능했다. 그렇게 들어간 당산리 외가는 냉전의 현장이었다.

북한과 마주한 이곳에서 처음 접하는 것은 남북의 확성기를 통한 선전방송들이었다. 밤에는 트럭과 전차 궤도 소리가 들리고 가끔 총소리도 들렸다. 해병대가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늘어선 빨간 색 휘장들. 언덕에서 망원경으로 볼 수 있었던 척박한 북한 땅과 북한 주민들. 어머니가 어릴 적에는 수영을 했다고 하는 바다 쪽에는 철조망과 군인들의 철통같이 경비.

오랜 시간 강화는 내게 냉전의 상징으로 남아있었다.

또 다른 기억은 화문석과 미꾸라지다. 외할머니께서는 화문석을 만드셨다. 여름방학이면 화문석의 재료인 왕골을 따러갔다. 진드기 가득한 논에서 한 여름 왕골을 따고, 왕골을 3단으로 쪼개고, 쪄서 말리고. 이렇게 말린 왕골들을 가지고 할머니는 겨울에 화문석을 만드셨다. 그때 기억으로 화문석은 손이 참 많이 가는구나 했다. 왕골을 딸 때 틈틈이 미꾸라지나 물고기를 잡았다. 오염이 덜 된 곳이라 미꾸라지나 물고기가 꽤 많았다. 특히 미꾸라지가 많았다. 뱀만한 미꾸라지들을 양동이로 한 가득 잡았다. 저녁 국그릇에서 미꾸라지가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이 아직도 추어탕을 못 먹게 한다.

또 다른 기억은 북한의 어설픔이다. 고등학교시절 강화도에 갔을 때였다. 강 건너 북한에 지어둔 아파트 6채 중의 한 채가 없어진 것이다. 가을 날 바람이 많이 불 때 한 채가 바람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1980년대 북한은 시골에 아파트를 지어놓고 남한에 대해 자신들의 체제 우월성을 과시했다. 그런데 아무도 살지 않던 건물은 바람도 이기지 못했다.

나에게 강화는 외가, 냉전, 화문석, 미꾸라지, 북한으로 기억된다. 좀 올드한 상징들이다.

성인이 된 뒤에는 많이 찾아보지 않았던 강화를 며칠 전 방문했다. 이번에 가본 강화는 내 기억 속 강화와 많이 달랐다.

조양방직이란 곳이 있었다. 강화읍에. 과거 방직회사였던 조양방직은 경성방직보다도 역사가 긴 회사다. 지금은 방직회사를 접고 그 자리를 커다란 카페로 운영하고 있었다. 여러 채의 건물들은 일제시대, 산업화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채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방직회사의 공장본채는 몇 백 명이 한 번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되어있었다. 평일 오후 시간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인구가 많지 않은 섬인 강화도에서 한 장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요즘 강화에 잘 꾸며진 카페들이 많이 늘고 있다고 한다.

다른 장소로 강화 씨사이드 리조트가 있었다. 6월 개장을 한 이곳은 1.8km짜리 루지(썰매) 체험장이 있었다. 곤돌라를 타고 산을 오르면 넓게 펼쳐진 장관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꼭대기에서 1.8km나 되는 구불구불한 트랙을 무동력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놀이 시설도 있다. 평일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썰매를 체험했다. 주말에는 1시간 정도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아이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강화도에 아이들을 데리고 와도 될 장소가 생긴 것이다.

강화도는 바뀌고 있었다. 유적지를 보는 섬, 사찰로 유명한 섬. 낚시를 하는 이들에게 인기 많은 섬에서 친구들과 차 한 잔 하기 좋은 섬, 아이들과 루지를 타기 좋은 섬으로 이미지 쇄신중이다. 고인돌, 초지진, 광성보, 연미정, 문수산성과 같은 역사적 유적지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차와 놀이를 할 수 있는 섬으로 변신중이다.

순천이 정원축제로 새로운 여행지가 되었듯이, 화천이 산천어 축제로 겨울 여행지가 되었듯이. 파주가 출판단지가 되었듯이. 강화도 역시 새로운 여행지로 변신해가고 있다. 시간이 흐른 뒤 “강화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하는 질문에 사람들의 대답은 달라질 수도 있다.

현재는 변화무쌍한 시대로 변신이 중요한 시대다. 개인들도 변신을 강요받는 시대인데 지방이라고 다를 수 없다. 과거의 이미지만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없다면 새로운 이미지로 변신해야 한다.

인간이나 집단 모두 본능적으로 안정을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변신은 본능에 반하는 일이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필요는 변신을 만들어낸다. 문화가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는 어떤가? 최근 자유한국당은 정당 혁신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조직강화특별위원회까지 만들었지만 변신 아니라 변화조차 요원해 보인다. 권력이 변화를 거부하게 한다. 국제관계도 마찬가지다. 2018년을 뜨겁게 달군 남한-북한-미국의 관계도 획기적인 변화까지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리는 보고 있다.

여기서 결론. 문화가 정치에 앞서는 것이다. 필요와 수요가 권력보다 발 빠르게 움직인다. "정치가 문화를 이끈다(politics lead culture)"는 주장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정치 이전에 시민과 문화를 보는 이유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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