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제55회 변리사시험 수석 박병언씨
일산 백석고등학교/중앙대학교 약학과 졸업
직장 그만두고 동경하던 변리사 도전, 3년만에 수석합격 이뤄
“외면당한 기술의 가치를 발굴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 할 것”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의 한 구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안정적인 길을 따라 걸으려 한다. 누구에게나 삶은 단 한 번뿐이기에 최대한 실패를 피해가려고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미 손에 쥐고 있는 안락함과 안정을 포기하고 모험에 뛰어드는 것은 어지간한 용기와 자신에 대한 믿음 없이는 하기 힘든 선택이다.
2018년 변리사시험에서 수석을 거머쥔 박병언씨는 바로 그 쉽지 않은 선택을 했고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걸었다. 박씨는 일산 백석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약학과에 진학했다. 이어 제약회사에 취업하며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이라는 기반을 갖췄다.
그런데 그 기반을 스스로 부수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수험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박씨는 “회사 근무 당시 인하우스 변리사님이 있었는데 그 분을 보고 변리사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을 키웠던 것 같다. 또 근무하던 부서가 신기술을 많이 다루는 부서다 보니 항상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있어왔고 이런 적성이 변리사와 어울릴 수 있다 판단했다”고 대답했다.
그는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회사를 그만두는 선택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았고 늦은 나이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 있게 도전해보고 싶었다. 좀 더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하는 게 인생을 길게 봤을 때 올바른 길이라 생각했고 부모님과 선배님들, 친구들이 지지해 준 것이 많은 힘이 됐다”고 전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기에 마지노선도 정해뒀다. 퇴직금과 직장 생활을 하며 모아둔 돈을 군자금 삼아 3년 안에 붙지 못한다면 미련 없이 그만두겠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꼭 3년 만에 꿈을 이룸과 동시에 수석 합격이라는 영예도 차지하게 됐다.
그는 “마지노선을 정해둔 덕분에 더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직장을 그만두면서 준비하는 분들이 생각해야 할 부분은 금전적인 문제의 해결과 수험준비기간을 명확히 하는 것, 그리고 가족과 지인들의 지지를 얻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본격적인 수험은 기본강의 수강부터 시작했다. 수험 첫 해 9월 이전에 민법과 특허법, 상표법 기본강의를 모두 수강했고 9월부터는 객관식 회독을 시작했다. 첫 달에는 민법 객관식만 풀었고 문제집을 풀기 전에 요약서로 정리했다. 다음 달부터는 특허 객관식을 추가했고 이후 상표법, 디자인보호법 순으로 한 달에 한 과목씩 추가하면서 회독수를 늘려갔다.
1차시험에서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민법이었다. 박씨는 “익숙하지 않은 법과목이다 보니 생소한 단어와 낯선 내용들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판례 원문을 찾아보면서 판례의 키워드를 파악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 11월쯤 돼서 어느 정도 키워드가 보이기 시작했고 강사들이 짚어주는 키워드와 내가 생각하는 키워드가 일치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점점 실력이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2차시험의 경우 동차기간에는 여러 강사들의 자료를 보는 것보다 한 강사의 강의를 중심으로 흔들리지 않고 준비하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시험에서는 나름대로 잘 쓰고 나왔지만 합격을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8월 한 달간 휴식기를 가진 후 9월부터 스터디를 모집해 공부를 재개했다.
스터디를 구성한 후 다음해 2월까지는 스터디원들과 매주 주말에 학원에 모여서 실제 GS 수업과 마찬가지로 답안을 작성하고 모르는 것은 서로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 3달은 민사소송법을, 그 후로 특허법, 상표법 답안 작성 스터디를 이어갔다. 1월부터는 하권 GS 수업을 수강하면서 남는 시간에만 답안 작성 스터디를 했다.
기득기간 중에는 변리사 준비생들이 모여 있는 독서실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독서실에서 스터디를 구해서 사례집 회독 스터디를 했다. 주 3회, 회당 2시간씩 진도를 정해놓고 사례집을 풀면서 모르는 부분은 서로 묻고 답하는 시간도 충분히 가졌다. 매주 주말에는 GS를 수강했고 소위 대세 강사들 위주로 수업을 들었다.
박씨는 “2차시험은 서술식으로 답안을 작성해야 하다 보니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내용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글로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스터디 문답시간을 이용해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질문하고 내가 아는 것을 상대방이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면서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2차시험 과목 중에서는 민사소송법에서 애를 먹었다. 그는 “판례가 이해가 안 될 때는 판례 원문을 찾아가면서 공부했고 학설의 논거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교수 기본서, 논문 등 자료를 찾아가면서 공부했다”며 민사소송법을 극복한 방법을 설명했다.
박씨의 고득점 답안작성 비법의 키워드는 ‘보고서’다. 그는 “답안은 교수님께 제출하는 보고서처럼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 권이 넘는 답안 중에서 내 답안을 교수님이 좀 더 읽고 싶게 써야한다는 생각으로 답안 작성 방법을 많이 생각해왔다”고 전했다.
이같은 고민 끝에 박씨가 선택한 방법은 먼저 문장은 짧게 단문 형식으로 작성하는 것이다. 복문 형식으로 작성하다보면 요점이 흐려지고 주술관계가 헝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선택이다.
또 한 문장에는 하나의 메시지만 담도록 노력했다. 메시지가 없는 문장, 전 문장과 중복되는 문장을 걸러내는 데 신경을 썼다. 판례의 논리적 흐름을 살리려는 노력도 읽고 싶은 답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다. 단순 암기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판례를 이해하고 판례의 흐름을 살린 답안을 작성하는 데 공을 들였다.
많은 고민을 통해 찾아낸 답안작성 노하우는 고득점으로 이어졌다. 그는 고득점 합격 비법을 묻는 질문에 “문제에서 묻는 것을 정확하게 작성한 것이 고득점 합격 비법인 것 같다. 쟁점이 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답안에 작성했고 판례는 논리적 흐름까지 살려서 정확하게 적도록 노력했다”고 대답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해 묵묵히 걸어온 끝에 수석 합격이라는 기쁨을 누리게 됐지만 그 길이 마냥 평탄하지는 않았다. 수험기간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자 “동차시험 결과가 나온 날”이라고 답했다.
박씨는 “시험장에서 긴장한 나머지 유기화학 문제를 풀면서 부등호를 거꾸로 썼는데 그 한 문제 때문에 시험에 떨어졌다. 너무나 사소한, 해서는 안 되는 실수로 떨어졌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었다. 그 때문인지 나중에 기출 풀이할 때 54회 시험지는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통한의 시험 결과가 나온 후 두 달 정도를 약국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했는데 안타까운 실수와 그로 인한 실패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는 “다른 일에 열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기억도 잊혀지고 약국 직원들이 친절하게 대해줘서 힘들었던 기억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떠났다가 돌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견뎌냈기에 얻은 성과다. 박씨는 변리사가 되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을 수험생들에게 “고생한 만큼 보상이 돌아옵니다. 당장은 힘들고 그만두고 싶어도 견뎌나가다 보면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변리사시험이 보통 몇 년에 걸친 장기 레이스라서 정신적으로 지치고 힘들 때가 많습니다.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관리도 중요합니다.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깨끗하게 털어내는 것도 공부하는 것만큼 중요하니 잊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진심이 담긴 조언과 응원을 전했다.
특히 그와 같이 직장을 다니면서 도전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1차시험은 직장이 여유롭다면 병행하면서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내 경우 다녔던 부서가 일이 여유로운 편이 아니고 자칫하면 수험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만두는 결정을 했다. 2차시험은 직장과 병행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한다. 공부량도 많고 주말마다 GS와 병행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수험기간을 줄이려면 전업으로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경험에서 비롯된 구체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수험이라는 모험을 끝내고 이제는 변리사로서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고 있는 박씨. 그는 이미 새로운 모험을 위한 방향 설정을 마친 모습이었다. “외면당한 기술의 가치를 발굴할 수 있는, 그런 가치 있는 기술이 합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변리사가 되고 싶다”는 그의 당찬 포부가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그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과감하게 선택하고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이 돼 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무엇보다도 저를 위해 항상 응원해주시고 기도해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선택을 지지해주시고 아낌없이 지원해주신 두 분께는 그 어떤 감사의 말도 충분하다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옆에서 오랜 기간 지켜봐준 친구들, 함께 공부했던 아이들, 독서실 식구들, 돌봐주신 변리사님들께도 고맙다 말하고 싶습니다. 그 외에도 저와 함께 수험했던 모든 분들 함께해서 행복했고 감사하다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