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고시 합격수기] “안 하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헝거게임’에서 이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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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고시 합격수기] “안 하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헝거게임’에서 이겨야”
  • 법률저널
  • 승인 2013.06.2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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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선
제47회 외무고시 최연소/ 러시아어 능통분야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및 스크랜튼 학부 4학년 재학


I.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2013년 마지막 제47회 외무고시 러시아어 능통직렬에 합격한 윤홍선입니다. 처음 합격 수기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에는 순간 많이 망설였습니다. 다른 수험생들보다 공부기간도 짧았고 저 자신이 많은 면에서 부족하다고 느껴 과연 저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 지에 대해서 큰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무고시가 이번을 마지막으로 앞으로 국립외교원으로 외교관을 채용하는 시험방식이 바뀌고, 이에 따라 지역전형 즉, 저처럼 외국어능통직렬 분야가 더 많아져서 관심을 가지는 수험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겨 이 글을 씁니다.

 

II. 외무고시를 시작한 계기


외교관의 꿈은 어렸을 때 외국생활을 할 때부터 어렴풋이 가져 점점 그 꿈의 크기를 키워간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카자흐스탄에 살게 되었고, 그곳에서 아버지가 일을 하시면서 어려움을 겪으실 때마다 카자흐스탄 대사관의 도움을 많인 얻는 것을 보고 ‘나도 커서 외국에 거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꿈을 갖게 되었고, 이에 적합한 직업으로 외교관을 꼽은 것입니다. 카자흐스탄 시골 러시아학교를 다녔었는데, 지금까지 인상적으로 남는 학교경험을 하나 이야기해드리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지리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세계지도와 지구본을 들고 오셔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위치, 지리적 특성 등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던 때에, 반 친구 한 명이 홍선이는 그러면 어디에서 왔는지 지도에 표시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당하게 한반도를 지목했습니다. 모두 어떻게 그렇게 작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냐면서 이상하다고 놀렸습니다. 그 때 얼마나 그곳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서 모르는지 알게 되었고, 나중에 커서 전 세계인이 한국이 어떤 나라이고 어디 있는지 다 알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포부를 실현시킬 수 있는 직업으로 외교관이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꿈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제 목표를 “2013년 마지막 외무고시와 첫 국립외교원 시험 한번”, 이렇게 두 번을 넘기지 않기로 자신과 약속하였습니다. 두 번 안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과감히 마음을 접고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생활에 책임을 지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이런 저의 절실한 마음가짐이 수험기간을 단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수험 첫 회부터 합격을 목표로 무모하게 뛰어들었고, 수험기간 동안 끊임없이 제 공부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습니다. 저는 또한 일반직렬과 다른 외국어능통직렬이었으므로 다른 수험생들에게 휩쓸려 따라가기 보다는 나만의 공부방법을 세우고, 상황에 따라 철저히 독자적으로 수정해나갔습니다. 앞으로 국립외교원의 지역분야/전문분야에 지원하는 분들에게 이러한 전략적 공부방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III. 1차 PSAT 시험 준비


제가 이번에 본 외무고시 러시아능통직렬과 비슷하게 앞으로 실행되는 국립외교원 시험 지역분야에 지원하는 것에는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차 PSAT의 경우 한 두 문제로 당락이 결정되는 일반직렬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고 합격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2,3차 시험의 경우에는 일정 수준 이상이면 합격을 어느 정도 자신할 수 있는 일반 직렬과 달리 자신보다 잘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불합격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시험입니다. 왜냐하면 지역분야는 각 언어마다 1명 많으면 2명을 뽑기 때문입니다.


다시 저의 외무고시 1차 시험준비시절로 돌아가 말씀을 드리면 PSAT에 대한 부담감이 아무리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하더라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자만하지 말아야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6월 초부터 자료해석-상황판단-언어논리 순으로 PSAT 기본강의를 들으면서 PSAT의 전반적인 개념과 문제풀이 방식을 공부했습니다. 처음에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자료해석이었습니다. 그래프와 표를 처음 접하였고 간단한 수학도 해야 했기 때문에 고등학교시절에도 수학을 매우 싫어했던 저로서는 자료해석을 간파하기가 제일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자료해석은 석치수선생님의 스터디에 또한 참여하여 시간 안배를 자료해석에 맞추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료해석은 점점 나아지고 있는데 오히려 상황판단이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상황판단은 시간만 자유롭게 주어진다면 모두 풀 수 있는 문제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빠듯하게 정해진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문제를 맞추느냐가 합격의 관건이었습니다. 상황판단이 가장 취약한 과목이 되자 어떻게 하면 상황판단을 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풀 수 있을 까 고민했습니다. 고민한 결과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이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40문제 중에서 어려워 보이는 10문제를 과감히 버리고 넉넉한 시간 안에 나머지 문제를 다 맞자는 식으로 풀었더니 전보다 많은 점수가 올랐습니다.


마무리 한 달부터는 혼자 마무리하는 것이 불안하여 세 영역 모두 파이널 모강을 들었습니다. 거의 매일 모의고사를 하나씩 풀면서 어떤 문제를 풀고 어떤 문제를 버릴지 연습을 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침 9시~1시까지는 모강수업을 듣고 점심 후에는 혼자 06년도~12년도 기출문제를 계속 하루에 한 두세트씩 풀어나갔습니다.


마지막 1주일 동안에는 기출문제에만 주력했습니다. 기출문제를 낸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연습을 다시 한번 했고, 여러 번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틀렸던 문제들, 그리고 수업에서 중요하다고 했었던 문제들을 중심으로 계속 반복하여 보면서 제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IV. 2차 시험준비


시험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시험을 홀로 준비하였던 저는 어떤 전략을 써야 하는지 고민하였습니다. 다른 수험생들처럼 혼자 교과서를 여러 번 정독하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학원에 가서 수업을 열심히 따라가고 선생님들을 ‘괴롭히는’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국제법


국제법은 세 과목 중에서 제일 자신 있는 과목이었습니다. 고시를 시작하기 전 대학교에서 국제법 수업을 들었었고,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갔었을 때에도 국제법 수업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고시를 시작하고부터는 안진우 선생님의 강의를 계속 따라갔습니다. 반드시 강의 후 기본 개념 확인 및 강의에서 나갔던 부분을 교과서(국제법론)로 복습하자는 공부법칙을 세워서 스스로 체크하고 이어갔습니다. 국제경제법의 경우에는 조문과 판례에 보다 더 초점을 맞춰서 공부하였습니다.


마지막 3순환 때에는 조문암기와 답안지 구성, 목차잡기를 연습하였습니다. 3순환 강의와 더불어 답안지 특강도 수강하여 보다 더 매끈한 답안지를 쓰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답안지를 쓸 때에 가장 중요한 점으로 자신이 문제에 나온 주제에 대해서 아는 것을 다 쓰는 것이 아니라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왜 이 시점에서 이 사안에 관해 질문을 할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답안지를 작성하여 “내가 이 문제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다”라는 것을 답안지에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특별히 시험 전에는 북한 사태, 독도 분쟁 등 최근 이슈들을 챙기려 노력하였습니다.
  
2. 국제정치학


제 학부 주전공이 정치외교학과였기 때문에 대학교에서 남궁곤, 민병원 교수님들로부터 들었던 수업들이 답안지 작성을 함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제가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처음에 대학교를 입학할 때 과를 정치외교학과로 지원한 것입니다. 만일 다른 과로 지원을 하여 외무고시를 준비했었더라면 보다 더 긴 수험기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국제정치학은 다른 논문과목과 비교하여 범위의 제한이 없는 과목입니다. 깊이 뿐만 아니라 넓이도 중요한 과목이기 때문에 ‘이론’뿐만 아니라 ‘사실’, 즉 과거이슈들, 최근 이슈들을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을 달달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실시간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것이 외교관이 가져야할 중요한 자질 중 하나이기 때문에 매일 신문을 읽는 노력도 빠트리면 안됩니다.


마지막 시험 한두달전부터는 학원 3순환과 답안지 특강을 들었습니다. 해마다 출제위원의 성향에 따라 이론중심적인 문제들이 출제되기도 하고, 이슈중심적인 문제들이 출제되기도 합니다. 해마다 바뀌는 문제성향에 대비하여 이론과 사실을 모두 꼼꼼히 챙기셔야 합니다. 답안지 특강에서 문제의 ‘의의’를 반드시 쓰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국제법과 마찬가지로 왜 이 문제가 작년도 제작년도 아닌 올해에 나왔을 까? 그리고 이 문제가 현 한국상황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라는 문제의식을 잃지 않고 답안지를 작성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3. 경제학


경제학은 저에게 공포의 과목이었습니다. 따라서 다른 과목에 비하여 보다 더 구체적으로 쓰겠습니다. 경제학은 학교에서도 한번도 수강하지 않았던 과목이었고, 워낙 수학 같은 이과성향의 과목들은 멀리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경제학에 대한 배경지식 전무하여 상당한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초반에는 제가 혼자 공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였고, 학원 실강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속도 면에서 힘들다고 판단하여 그 당시 휴학도 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인터넷동영상을 여러 번 반복하여 듣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문제풀이는 하나도 하지 않고 이론만 배우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시험이 두달정도 남았을 때에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보았는데 20점도 나오지 않았었습니다. 처음부터 이론과 문제풀이를 병행했어야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큰 절망을 하였습니다. 1차 시험을 직후 50일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어떻게 경제학을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였습니다. 일단 목표를 과락, 즉 40점을 넘기는 것으로 정하고, 나에게 가장 맞는 선생님을 선택해 그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것을 전략으로 세웠습니다. 많은 수험생들이 적극적으로 추천한 선생님의 강의를 들어보았지만, 다른 수험생들과 다르게 저에게는 그분의 수업이 맞지 않아서 빨리 다른 선생님으로 바꾸지 않으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타 학원의 윤지훈선생님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 국제경제학 특강 3순환을 들었는데, 너무나도 쉽게 설명해주셔서 귀에 쏙 쏙 잘 들어왔고, 수업 후 질문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아 선생님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경제학에 대한 공포감을 점차 떨쳐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처음 목표했던 점수보다 훨씬 더 높은 점수를 얻어서 기뻤습니다.


보다 더 구체적인 공부방법으로는 처음에 경제학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 경제학의 이론목차를 모조리 다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예컨대 거시경제학이라고 치면 AD-AS-소비와 투자-실업과 인플레이션-노동시장과 실업 등으로 외우는 거죠. 이렇게 큰 목차를 다 외우면 세부목차도 외웠습니다. 즉, ‘소비와 투자’에서 절대소득가설-항상 소득가설-시점간 자원배분과 관련된 소비이론(시점간 자원배분, 랜덤워크가설, 예비적 저축가설…)-전통적투자이론 등 세세한 목차까지 외우는 겁니다. 이렇게 목차외우기가 중요한 이유는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에도 목차를 떠올려보면 이 문제가 어디에 있는 지 알게 되고 나아가 어떤 것을 써야 할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문제를 전혀 풀지 못했을 때에는 1차적으로 미시, 거시, 국경 당 100문제 씩 뽑아내 “적어도 이 200문제만은 다 보고 간다” 심정으로 문제를 보고 이 문제가 어느 목차에 해당되는지만 알아내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 다음 2차적으로는 그 같은 문제 하나를 꼼꼼히 풀어 정답을 도출해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고 마지막 시험이 일주일정도 남았을 때에는 문제집을 딱 열었을 때 보이는 문제가 어떤 목차이고 어떤 그래프와 식을 요하는 지 바로 자동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연습하였습니다. 처음에는 5시간 동안 15문제밖에 뭇 풀었지만, 계속 같은 문제를 반복하다 보니 답안지를 시간 안에 작성할 수 있을 정도로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많은 문제를 다양하게 풀려고 하는 것보다 같은 문제를 여러 번 푸는 것입니다. 똑 같은 문제를 여러 번 보아서 단순히 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유형은 이렇게 푸는 거구나” 라는 의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외시의 경우(국립외교원도 그럴거라 생각됩니다), 행시, 입시와는 달리 어렵고 생소한 문제보다는 기본개념에 충실한 문제들을 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에 연연하기 보다는 기출문제를 충실이 검토하고 이론들을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4. 영어와 러시아어


대학교에서 복수전공으로 스크랜튼 학부(일종의 국제학부)에도 다녔고, 그리고 교환학생을 미국으로 다녀온 직후 외무고시를 시작했기 때문에 영어는 비교적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전반적인 영어말하기와 쓰기를 배웠다면,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는 김선재 선생님으로부터 보다 더 구체적으로 글을 깔끔하고 매끄럽게 쓰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러시아어는 누구보다도 자신있는 과목이었으므로 러시아 원어민 선생님들과 꾸준히 만나면서 글쓰기 실력을 다듬었습니다.
 
 
V. 3차 면접


1. 준비


3차면접 준비는 총 6명으로 구성된 스터디를 조직하여 2주간 약 8번에 걸쳐 스터디를 했습니다. 개인발표, 인성면접, 한국어 토론 모두 조원들이 돌아가며 자료를 준비하였습니다. 3차 면접은 1,2,차 시험과 달리 사람의 태도와 인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에 스터디 조원들과 서로 잘못된 태도 또는 말투 등을 고쳐주고 잘 한점도 얘기해주는 피드백 시간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장점과 부족한 점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어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스터디 외에 모의면접 컨설팅 등을 통해 면접의 맥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반직렬은 영어토론을 한다면 러시아어능통은 러시아어토론을 합니다. 러시아어토론은 원어민 선생님과 함께 일주일에 3~5번 정도 만나서 스터디 때 한국어 토론으로 공부했던 내용을 그대로 러시아어로 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2. 면접


3차면접은 한국어토론-러시아어토론-개인PT-인성면접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첫 한국어 토론의 주제는 ODA(공적개발원조)였습니다. 20분간 자료들을 읽고 40분동안 토론을 벌이게 됩니다. 스터디와 면점컨설팅 때 연습했던 주제여서 좋은 분위기 속에서 적절한 합의를 보았습니다. 두번째 러시아어 토론의 주제는 FTA와 관련하여 현재 농업국가인 A국의 상공업국가인 B국과의 FTA체결 여부였던 것 습니다. 10분동안 한 페이지로 된 러시아어 제시문을 읽고 입장을 정리한 후 20분간 찬반토론을 벌이게 됩니다. 다소 시간이 짧아 제 주장과 근거를 모두 다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발언횟수나 발언시간이 서로 적절하게 배분되어 균형적인 토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세번째 개인PT주제는 한국이 북극이사회의 정식옵서버 국가가 되어야 하는지의 여부였습니다. 한국이 정식옵서버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저는 설득과 함께 만일 한국이 정식옵서버 국가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의 예상되는 질문에 대한 답도 마련하여 한국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들을 다양하게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마지막 인성면접은 사전에 작성했던 사전조사서를 바탕으로 보았고, 그 후 왜 외교관이 되려 하는지, 어떤 외교관이 되고 싶은지, 저의 경험과 그 경험에서 배운 교훈들을 솔직하게 대답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면접에서 생각하는 중요한 포인트로 ‘미소와 자신감’을 들고 싶습니다. 토론을 할 때 자신이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자신의 근거가 빈약하다고 생각될때에도 위축되지 말고 자심감을 갖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 그리고 토론의 분위기를 심각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미소를 지으면서 밝게 이끌어나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면접을 보는 취지가 수험생들의 지식을 보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그 사람의 면접을 보는 태도와 외교관으로서 가져야할 자질, 즉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인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VI. 나가며: 수험생들에게.


제가 일반직렬이 아닌 단 1명만 뽑는 러시아어 능통직렬에 지원했기 때문에 국립외교원의 지역분야 그리고 전문분야에 지원하는 분들을 중점으로 현재 공부하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이 시험은 ‘헝거게임’이라는 것입니다.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로도 나온 이 ‘헝거게임’에서 아이들은 1명의 생존자가 되기 위해서 다른 게임참여자들을 죽여야 합니다. 그 정도로 이 시험은 매우 잔인하고 고독한 시험입니다. 지역분야/전문분야에 지원하는 분들도 아시겠지만 뽑는 인원이 거의 1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일반직렬보다 더 피말리는 경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경쟁적인 ‘헝거게임’속에서 마지막 최후의 단 1명이 되기 위해서는 독한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이 시험을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독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며 멋도 부리고 싶었지만 과감히 접고 ‘이것을 안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마음을 독하게 먹고 꾸준하게 최소 10시간 동안 매일매일 공부한 것이 짧은 수험생활에도 불구하고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들과의 연락을 끊고, 저만의 시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물론 세상과 단절된 것 같고 견디기 괴롭지만, 이렇게 해서 단기간에 합격할 수 있다면 오히려 빨리 붙고 그 후에 친구들과 다시 연락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내가 과연될까? 라는 생을 할 시간에, 불안해할 마음을 가질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하십시오. 그러면 오히려 이러한 불안함과 외로움이 사라지고 공부에 집중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아니면 누가되나? 라는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그러면서도 독하게! 공부를 한다면 합격의 꿈이 현실로 눈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수험생들 분들 두려움, 외로움, 불안감, 공포의 ‘항거게임’에서 승리하시길 빌어봅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고시촌음식이 맞지 않아 매일 도시락을 싸주셨던 엄마, 꼭 자신이 시험 보는 것처럼 더 마음 졸이고 기도해주셨던 아빠. 그리고 항상 누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던 동생, 그리고 항상 옆에서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신 가족들과 친구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를 도와주신 선생님들이 없으셨다면 저는 지금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여러 가지 지원을 해주신 이화여대 김선옥 총장님, 남궁곤, 민병원, 윤지환, 유성진, 김세화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고시촌의 윤지훈, 안진우, 김선재, 이민수, 이진우, 성종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낮고 낮은 자세로 국민과 나라에게 봉사하는 외교관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능통으로 뽑힌 만큼 미래 러시아전문가로서 보다 한국과 러시아 그리고 CIS지역권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비록 최연소로 합격하였지만 이제부터는 최연소라는 타이틀이 아닌 최고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도록 좋은 외교관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부족한 제 수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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