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고시 수석 합격수기] “고시는 정석은 없고 정도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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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고시 수석 합격수기] “고시는 정석은 없고 정도만 있다”
  • 법률저널
  • 승인 2012.06.2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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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근왕 외무고시 수석·서울대 외교학과 4년 재학

 

Ⅰ. 들어가며
 
“그냥 공부해.”

외무고시 준비를 시작하고 2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산더미 같은 질문을 들고 찾아간 합격생 선배께서 저에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모자라기만 한 제가 수기를 쓰기에 앞서 조심스러운 마음에 한참을 망설이다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말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다소 무심해 보이기도 할 수 있었던 선배의 저 짧은 말이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결국, 수험과정이 무조건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제 스스로 제 몸에 맞는 지식의 습득방법을 익히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의 작은 경험이 수험생 여러분들에게 하나의 지침이라기보다는 참고 정도로 쓰일 수 있길 바라고, 제가 그랬던 것처럼 수기를 읽으며 제가 했던 고민을 통해 공부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Ⅱ. 수험생활
 
0. 사전준비기간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저의 마음을 굳히기 전에 외교관 선배들 만나 뵙고 외교관에 대한 환상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외교관의 현실과 고충을 접하고 나서라도 외무고시에 뛰어들 마음이 생겨야 길고 힘든 고시생활을 버텨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실제로 얼마나 제가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애초에 스스로 감수하고 선택한 일이었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막연했던 준비방법에 대한 조언도 얻을 수 있었고, 정말 마음을 다해 신경 써 주시는 일생의 멘토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전준비기간동안 다음으로 한 일은 프랑스어 기초 쌓기였습니다. 이전에 해왔던 외국어에 크게 애착을 갖지 못한 이유도 있고, 외교가에서 영어 다음의 공용어로 쓰인다는 프랑스어를 언젠가는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서 돌이켜보면 다소 무모한 선택을 내렸습니다. Podcast와 인터넷을 통해 초보자수업을 듣고 나서 Alliance francaise에 다니면서 기초를 익혔습니다. 학원이 강남에 있던 관계로 친한 친구들을 만나 고시시작을 알리면서 앞으로 자주 보지 못해도 이해해 달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1. 초보수험생 시절 - 2009년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한 2009년부터는 학원 순환을 따라갔습니다. 영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학원을 다니며 전체적인 상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전공과목이 아니었던 경제학과 국제법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학원에서 고수들을 만나 주눅이 들어 심적으로도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학원 진도에 끌려 다니면서 정작 자기공부시간을 많이 확보하지 못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1차 시험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준비를 소홀히 하다 결국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1년 더 차분히 준비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생각에 한 숨이 놓이기도 했습니다. 불합격 통보 후 가장 어려워했던 경제학 교과서를 노트에 꼼꼼히 옮기면서 그래프, 수식, 문장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2. 기대가 부풀어 올랐던 2년차 - 2010년

 

2010년 여름부터 2순환 전까지는 스터디를 통해 공부를 해나갔습니다. 혼자 학원을 따라갈 때보다 스터디원들이 같은 학생의 입장에서 논문과목을 이해하는 방식을 보고, 듣고, 배우면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가을 이후로는 2, 3순환 수업을 따라갔습니다. 스터디를 통해 자신감도 생겼고 학원에서 모범답안도 가끔 쓰면서 스스로 어느 정도 실력이 갖춰졌다고 자만했던 던 것 같습니다. 시험 날이 가까워오면서 학원을 다니며 자기만족에 빠져 스스로 정리할 시간을 갖지 않았던 게 후회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2011년 시험장을 나오면서 이미 불합격을 예감했고, 작은 점수 차이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실망감은 컸고 마음의 짐도 무거웠습니다. 저 자신보다 저의 불합격에 가슴아파하는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한없이 미안함을 느꼈고, 다음 해에는 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가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합격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3. 팀플레이가 빛났던 3년차 - 2011년

 

2011년 마지막 수험기간이 성공으로 끝을 맺을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팀플레이 덕이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저와 공부햇수도 비슷하고 가장 가깝기도 한 친구 두 명과 함께 ‘공동운명체’가 되어 스터디 뿐 아니라 생활 전반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두 친구가 모두 실력이 상당했고 같은 제 2외국어를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터디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공부가 어느 정도 쌓인 시기였기 때문에, 이틀에 한번 씩 과목을 바꾸어가며 100점 답안을 작성하고(월화-경제학, 수목-국제법, 금토-국제정치학 식) 서로 첨삭 및 코멘트 후 토론을 통해 공부해나갔습니다. 때로는 몇 시간 씩 설전을 벌이고 집에 가서도 인터넷 카페에 논의를 이어갈 정도로 열띤 논의를 가졌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의 논리를 보다 치밀하게 가다듬을 수 있었고, 압축적이고 간결한 문장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셋이 함께 공부에 빠져서 1년을 보냈기 때문에 고되기만 했을 수도 있을 시간이 재밌게 빨리 흘러갈 수 있었던 듯합니다. 학습 측면 외에 정서적 측면에서도 함께 고민을 나누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었기에 수험기간을 지치지 않고 보낼 수 있었습니다.
 
Ⅲ. 공부 방법
 
1. 1차 시험(PSAT)

 

기출문제를 중심으로 공부했습니다. 학원 모의고사 성적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어떠한 오답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연구하면서 준비했습니다. 가장 큰 난관이었던 자료해석영역과 상황판단영역 내 법률문제 준비에는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여름에 한 달여 기간을 할애하여 자료해석 심화강의를 들었고, 자료해석과 법률문제 대비 스터디를 했습니다. 이렇게 집중적인 공부를 통해 한 번 노하우가 쌓이고 나니 다음 시험에서는 공부량을 크게 늘리지 않고도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외 제반영역에서는 오답정리에 초점을 두고 PSAT이 요구하는 사고체계를 갖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준비를 하면서 쌓인 문제풀이자료 및 오답노트를 정리해서 저만의 비법노트를 만드는 방식으로 이러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노트를 만들면서 제가 자주 틀리는 유형의 문제가 무엇이고, 오답패턴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지를 적고 반복해서 되새겨봄으로써 이른바 ‘PSAT형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험 당일 컨디션과 마음가짐인 듯합니다. ‘준비는 소심하게, 시험은 대담하게’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2. 2차 시험

 

1)영어: 영어와 한글의 문형 상 차이를 항상 염두에 두고 공부했습니다. 스터디를 할 때에도 이 같은 차이에 신경을 쓰면서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스터디원들과 함께 텍스트를 골라 번역하고 상호 코멘트를 하며 단순한 반복연습이 아닌 좋은 번역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텍스트는 주로 뉴스위크나 이코노미스트를 이용했습니다.


많은 어휘나 숙어를 외우는 것보다 어떤 문장이 더 좋은 문장인가, 어떤 번역이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저만의 번역노하우를 쌓아갔습니다. 한 선배께서 ‘직역도 없고, 의역도 없다. 다만 좋은 번역과 나쁜 번역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씀해주셨던 게 생각납니다. 각각의 번역문이 독립된 글로 접해도 손색이 없는 글이 될 수 있도록 신경 썼습니다. 에세이 또한 형식만 갖춘 피상적인 글보다는 논리적으로도 튼튼한 글이 될 수 있도록 연습했고, 영어식으로 짧은 분량 내에 효과적으로 논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이렇게 영어를 시험과목으로서가 아니라 소통수단으로서 진지하게 접근하다 보니 작년에는 80점이 넘는 고득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수험효율을 따져야한다는 고시세계의 격언도 있지만 멀리 돌아가는 것 같아도 한 과목 한 과목 진지하게 접근하고 깊이 고민해 보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국제정치학: 국제정치학은 가장 재밌는 과목이기도 했지만, 가장 어려운 과목이기도 했습니다. 전공과목이기 때문에 고시 이전부터 흥미를 가지고 접해오던 분야였지만, 수험 국제정치학에서는 한 편의 완성도 있는 글을 쓰면서도 압축적으로 내용을 담아내야 하기에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특히, 국제정치학은 ‘위험한’ 공부를 하게 되기 가장 쉬운 과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과목보다 스스로가 국제정치학을 잘한다는 착각에 빠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논리적 전개가 자연스럽고 몇몇 사례가 적절히 들어가기만 하면 겉보기에는 좋은 답안처럼 보일 수 있으나, 정작 적용해야할 이론을 제 주관에 따라 곡해하고 잘못 적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력이 조금 쌓였다고 자만하게 된 2년차 때 이러한 문제가 가장 심각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3년차 때에는 이러한 문제점을 깨닫고 스터디를 통해 친구들과 서로 답안지를 채점해주면서 논쟁을 벌이고, 관련 논문을 찾아보며 제가 객관적으로 타당한 이론의 해석과 적용을 하고 있는지, 논리구조 상 오류는 없는지 신경을 썼습니다. 이를 위해 『변환의 세계정치』『현대국제관계이론과 한국』『국제정치 패러다임』을 해당 내용이 나올 때마다 반복해서 읽으며 검토했습니다.


2차 시험이 임박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튼튼한 답안을 만들기 위한 담금질에 매진했습니다. 이후에는 이렇게 쌓아온 내용을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서술할 수 있게 주요 이론의 키워드를 암기하고, 연결 지을 관련 사례들을 모아 정리해 답안작성에 대비하였습니다.

 

3)국제법: 국제법은 어려움을 넘어서 공포로 다가온 과목이었습니다. 방대한 분량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처음엔 세세한 법리와 케이스까지 완벽히 외우려 무작정 달려들었지만 실력도 늘지 않고 무력감만 쌓였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어 먼저 국제법의 전체적인 체계에 대해 뼈대부터 잡고 흐름을 부여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김대순 저 일반국제법보다는 정인섭 저 신국제법강의를 교과서로 활용했고, 김대순 저는 레퍼런스용으로 활용했습니다.


교과서 공부 뒤에는 일반국제법과 국제통상법 모두 가장 축소된 요약집을 활용해 숙지해야할 내용을 최소한으로 줄여 암기했습니다. 어느 정도 암기가 된 이후에는 실제 판례들과 학원모의고사를 풀어보면서 케이스풀이 형식으로 디테일을 쌓아갔습니다. 이렇게 공부하다보니 관습법과 조약, 판례 등을 실제 사례를 풀어내는 데 활용하는 방식을 익히면서 흥미도 보다 높아졌고, 세세한 내용도 억지로 암기하지 않아도 사건의 흐름을 상기하며 쉽게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가끔 현안이 되고 있는 국제법 문제에 대한 논문을 찾아보면서, 현실문제가 어떻게 국제법적으로 해석될 수 있고 그 접근방법은 무엇인지 엿보면서 공부에 재미를 붙이려 애썼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그토록 싫어했던 국제법도 흥미롭게 느껴졌고  이해가 가능해지면서 답안지 구성 면에서도 향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답안지를 쓸 때에는 어떤 한 법리를 자세히 암기하고 있느냐보다는, 사안 안에 숨겨져 있는 많은 국제법적 논점들을 잘 뽑아내었느냐, 그리고 그러한 논점들을 유기적으로 논리적인 흐름에 따라 잘 배치하였느냐, 많은 논점들을 다루기 위해 얼마나 잘 압축적으로 관련 법리를 서술하였느냐에 초점을 두고 작성하고 스스로 평가하는 작업을 가졌습니다.
 
4)경제학: 처음에는 생소한 경제학을 잘하게 될 자신이 없어서 방어적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고시촌 유명 강사들의 요약집과 문제모음집을 활용해서 공부를 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암기를 통해 극복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충분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고득점이 불가능했고, 공부 과정에서도 흥미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리더라도 정공법으로 접근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공부하는 마음으로 교과서를 노트에 옮겨 담으면서 수식, 그래프, 서술을 모두 꼼꼼하게 한 줄 한 줄 뜯어보며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여 시간을 쏟고 나니 경제학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문제풀이에 집중해서 적용능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문제풀이 후에는 오답노트를 만들어서 풀지 못했던 문제들을 어떤 식으로 접근해 나가야 하는지 풀이 노하우를 모아 두었습니다. 어느 정도 경제학 실력이 올라왔다고 생각이 되었을 때는 시험 전날에 볼 한 권의 마스터노트를 만드는 데 주력했습니다. 주요 모델의 핵심가정과 기본개념정의, 논의전개순서, 그래프 등을 간단히 요약하여 키워드들과 함께 한 권의 노트에 옮겨 담았습니다. 이영환의 해설미시와 정김 저 거시경제학, 김인준 국제경제학, 김진욱 미거시 zip, 유창석 국제경제학, 이상근 거시경제학을 보고 취합하였습니다. 이렇게 요약본을 만들고 나니 기억하기도 좋고, 전체 챕터를 전반적으로 검토하기가 용이해져서 주어진 현상을 다양한 모델을 통해 적용해 보는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후반부에는 실전연습을 위해 정해진 시간 내에 답안을 쓰면서도 수식, 서술, 그래프가 모두 균형적으로 답안에 드러날 수 있도록 연습하고 개선점 및 유의점을 미리 만들어 놓은 마스터노트에 메모해 나갔습니다. 그 동안 공부해 놓았던 것을 한 눈에 들여다보기 좋게 자료를 미리 가공해 두었던 것이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시험이 다가올수록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5)프랑스어: 다른 친구들과 달리 외국어를 새로 시작했기 때문에 항상 위기감을 갖고 꾸준히 공부했습니다. 첫 기초는 각종 인터넷 사이트 및 Podcast의 무료방송을 통해 쌓았습니다. 그 뒤에 진도가 빠른 학교 수업을 들었습니다. 마침 수업에서 열정적인 스승을 만나서 정규 수업 이후에도 오후에 학교에 남아 나머지 수업을 받으면서 프랑스어를 공부했습니다. 스승의 열의와 기대에 부응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어떤 과목보다 열심히 프랑스어를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수업이 끝나고서는 친구들과 매일 단어 및 주요어휘 시험을 보았고 학원 수업 및 첨삭과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어에 대한 익숙함을 키우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해서 시간이 남을 때마다 스마트폰 앱에서 le monde나 la liberation, Project Syndicate 불어버젼에 접속해서 프랑스어텍스트를 접하고, 매일 학교를 오갈 때 Rfi와 같은 사이트에서 리스닝도 했습니다. 프랑스어는 모르는 단어와 표현을 모아놓은 단어노트와, 작문 및 에세이 때 활용할 표현노트를 두 권 만들어 공부했습니다. 단어노트는 매일 반복해서 보고, 표현노트는 번역 연습 시에 활용했습니다. 시험대비용으로 연습했습니다. 일상에서 프랑스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었던 것이 짧은 공부기간이라는 약점을 극복하려는 제 나름의 전략이었습니다.
 
3. 3차 시험
 
 3차 스터디를 직접 구성해서 스터디원들과 스터디를 했습니다. 총 29명의 인원을 6조로 나눠 매주 조의 조합을 바꿔가며 집단토론, 개인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습니다. 영어토론의 경우 언어교육원에서 원어민에게 토론 맞춤형 수업을 신청하여 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수업을 들은 스터디원들과 수업시간 이후에 추가적으로 연습 시간을 가졌습니다. 집단토론에서는 서로 다른 생각과 화법을 가진 사람들과 하나의 주제에 대해 토론하면서 어떻게 하면 시험 당일 좋은 팀플레이를 이룰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연습했습니다. 집단토론은 개인역량의 과시보다는 낯선 사람들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협동할 수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평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인 프레젠테이션 때에는 발표문 작성을 연습하고, 발표 시 효과적으로 내용이 전달되기 위해 어떠한 표정과 어조, 제스처로 설명해 나가야 할지를 생각하며 연습했습니다. 조원들끼리 서로의 발표와 태도에 대해 코멘트를 해주며 장점은 공유하고 약점은 채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면접만큼 스스로가 의식하지 못하는 단점이 부각되는 시험도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지적을 받아보는 게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2차 시험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는 39명의 합격자들 전원이 함께 모여 같은 방식으로 조를 나누어 스터디를 진행했습니다. 시험을 보기에 앞서 모두 얼굴을 익히고 연습을 해보았기 때문에, 시험장에서는 오히려 연습 때보다 더 편한 기분으로 면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성면접 대비를 위해서는 그 동안 기출문제를 보고 답을 작성해보았습니다. 그 뒤에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경험을 차분하게 되돌아보면서 갈등경험, 협력경험과 같이 제가 가진 경험을 크게 분류해 두어 시험장에 쓰려 준비했습니다.
 
Ⅳ. 기타 수험생활
 
1. 답안 작성에 관하여
 
논문과목의 경우 모두 체계와 접근방식은 다르지만 답안은 유기성을 갖춘 한 편의 글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설계를 할 때부터 답안을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논리와 논리전개방향을 설정하는 데 중점을 두고 연습했습니다. 시험장에서는 저만의 논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두고 크게 적어놓아서 답안 서술과정에서 완결성과 연결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했습니다.


다음으로 신경을 쓴 부분은 시간 관리였습니다. 처음에 목차가 잘 짜여있어야 서술과정에서도 망설임이 생기지 않아 시간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앞서 말씀드린 문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10분에 1페이지라는 저만의 룰을 만들고 그 룰에 따라 답안지를 완성하는 훈련을 계속했습니다. 2시간에 10페이지를 쓰는 것은 힘들었지만 10분에 1페이지를 작성하는 것은 더 쉽게 느껴졌습니다. 한 문제에만 올인하기보다는 모든 문제를 균형 있게 작성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어느 정도 자신만의 인위적인 장치를 설정해 두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2. 하루 일과에 대하여

 

마지막 해의 스케줄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침 8시까지 학교에 가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영어기사 및 프랑스어 기사를 읽고 들었습니다. 9시부터 11시까지는 답안지작성 스터디를 했습니다. 그 뒤 30분가량 같은 스터디원과 외국어 단어시험을 보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스터디 시 이야기하지 못한 부분을 추가로 논의하거나 바로 각자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5시에서 5시 반 사이에 저녁을 먹었고 8월 까지는 9시 정도에 운동을 다녀왔습니다. 9월부터는 밤 11시까지 공부를 하다 셔틀버스를 타고 귀가했고 귀가를 해서는 다음날 볼 논문이나 자료를 출력하면서 짧은 미드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잠을 청했습니다. 12월부터는 1차 시험준비 때문에 모자랐던 2차 시험을 위해 12시까지 공부를 하다 걸어서 귀가했습니다. 2월에 들어서부터는 컨디션 관리를 위해 9시에서 10시 사이에 귀가해서 휴식을 가졌습니다. 1차 시험이 끝나고 나서는 오전 오후 일과는 같으나 몸 상태와 공부계획에 따라 밤 11시에서 12시 반 사이에 귀가했습니다.

 

3. 스트레스관리 및 마인드컨트롤

 

자취방에서 집이 멀지 않은 관계로 주말마다 집으로 가서 어머니가 해주신 따뜻한 밥을 먹고 아버지와 함께 사우나도 다녀오고 하면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토요일 밤에 집에 가서 일요일에는 고시생임을 망각한 채로 보고 싶은 TV프로그램을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주중에는 공부를 끝내고 귀가할 때 이성친구, 가까운 친구 및 선배와 통화를 하면서 일상과 고민을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하지만 잠깐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것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불안감과 마음의 혼란은 휴식을 갖는다고 쉽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면, 스스로를 객관화시켜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위로를 해줄까 생각하면서 마음을 달랬습니다. 혼자서 도저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 때에는 함께 고시를 하는 친구나 고시를 끝낸 선배들을 만나서 고민 상담을 했습니다. 그렇게 고시 생활이 삶의 정체기가 아니라 가장 치열하게 성숙해 나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반복되는 일상에 매일 나름의 다른 의미를 부여해 이 고된 시간이 스스로에게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고 설득시켜나갔습니다.

 

Ⅴ. 나가며

 

모자라기만 한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릴 수 있길 바라며 수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만 많이 느껴져서 송구스럽습니다. 어떠한 책과 문제집을 몇 번 몇 페이지 정도 풀었다는 식의 구체적인 수치를 말씀드리기 보다는, 제가 봉착했던 한계와 난관을 넘어설 때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고자 노력했습니다. 제가 조심스럽게나마 가장 말씀드리고 싶은 말은 ‘정석은 없고 정도만 있다’는 것입니다. 합격이라는 성취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남들이 하는 방법을 추종하면서 안심하고 결과가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스스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더 나은 학습방법을 고민하며 결과를 쟁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He who has why to live can bear almost any how."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중한 꿈을 간직하고 계신 여러분들이니만큼, 이 고된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 헤쳐나가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불확실성, 스스로에 대한 회의와 싸워 나가고 계신 수험생 여러분들에게 저의 변변치 않은 경험이 정말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목표를 이루실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이 기회를 통해 감사를 드리고 싶은 분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사랑으로 길러주신 부모님, 부모님만큼이나 헌신적으로 저를 위해 살아온 형님,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어릴적부터 친자식처럼 아끼고 챙겨주신 큰고모, 다른 친가외가 여러분, 어려운 시간을 함께 보내준 친구들, 일생의 멘토이자 삶의 은인이 되어주신 형님누님들, 항상 모자란 저에게 신뢰를 보내준 동생들, 싸코패밀리, 외교학과, 일치반, 도모지, BI 식구들, 한없이 애틋하기 그지없는 엘바킹스터디친구들, 모두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통해 보답해 나가겠습니다. 언제나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저를 응원하고 지켜봐주신 여러분들을 위해서라도 성장을 멈추지 않는 외교관이 되겠습니다. 사람을 아낄 줄 아는 따뜻한 외교관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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