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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시-최고령합격기]효율적 시간관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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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시-최고령합격기]효율적 시간관리가 필요하다
  • 법률저널
  • 승인 2002.07.1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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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배진
고려대 영문학과졸, 32세
제36회 외무고시 최고령합격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표류하지 않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4년간의 수험생활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불안한 여정이었고 수험생활에 쏟을 기력이 더 이상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수험생활 내내 곁에서 지켜봐 주셨던 아버지께서도 합격 소식을 들으시고는 축하한다는 말보다는 정말 다행이라는 말씀을 먼저 하셨다. 

 고시생활은 내게 두렵지만 피하기 싫은 이방인처럼 다가왔다.  원래 문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미국에 있는 Western Illinois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1995년 5월에 귀국한 나는 그 해 8월에 입대하여 1997년 9월에 2년여간의 현역병생활을 마치고 제대했다.  

 제대 후 한 동안 Kotech International이라는 번역회사에서 번역 작업을 하면서 문학 공부를 계속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학교 선배의 소개로 아내를 만나 사랑하게 됐고 곧 결혼을 했다.  나이도 먹고 결혼까지 하고 나니 문학 공부를 계속하기보다는 적성도 살리면서 가정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할 거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생각해낸 대안이 외교관이었다.  외교관이 되면 여러 나라의 문화를 접하고 배우면서 우리 나라의 문화도 알릴 수 있어 많은 보람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방향은 잡았지만 실행에 옮기려니 막막하기만 했다.  외무고시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고 신혼 초의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내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격려해 줬고 양가 부모님들을 비롯한 가족들도 일견 무모해 보이는 내 제안을 수용하고 지지해 주었다.  막내동생과 아내는 당시 곤란을 겪고 있었던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 재기시키면서 수험생활을 경제적으로 지탱해주었고 처가 어른들께서도 격려와 원조를 아끼지 않으셨다.  이렇게 가족들의 성원을 등에 업고 수험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내에게 한 약속은 2년 안에 이 생활을 끝내겠다는 것이었다.

 98년 여름, 나는 신림동에 있는 서점에서 주인 아저씨의 도움을 받으며 1차 시험 과목 교재들을 구입했다.  헌법은 허영 교수의 「한국 헌법론」과 김학성 교수의 「객관식 헌법」을 택했고 국사 교재로는 변태섭 교수의 「한국사 통론」과 「수험 한국사」를 택했다.  영어의 경우는 기출문제 및 모의고사 문제만 구했고 국제정치학 교재로는 이철형씨의 「객관식 국제정치학」과 박재영 교수의 「국제정치패러다임」을, 국제법 교재로는 이병조/이중범 교수의 「국제법 신강」 및 정영진씨의 「국제법[요점정리 및 문제해설]」을 구입했다.  그리고 과목별 모의고사 문제와 기출 문제를 구할 수 있는 만큼 구입했는데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공부장소로는 집을 택했다.

 먼저 시험의 난이도를 파악해 보려고 기출문제와 모의고사 문제를 구해 풀어 보았는데 감조차 잡히지 않는 문제가 대부분이어서 난이도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과목별로 기본서를 1회독씩 한 후 문제를 다시 풀어 보았지만 여전히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후 수시로 문제를 풀어가며 스스로의 실력을 평가해 보려고 노력했는데 실력이 쉽게 향상되지는 않았다.  연말이 되면서 마음이 급해져서 기본서에 더 이상 매달릴 수 없었다.  이 때부터는 주로 문제를 풀면서 미흡한 부분을 보충하는 식으로 공부했다.  시험 전 두 달 동안은 날마다 오전에 모의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99년 3월에 치른 1차 시험에 낙방했다.  합격점은 84점이었고 내 평균점수는 81.5점이었다.

 첫 시험에서 쓴맛을 경험한 후 공부방법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서를 2∼3 회독한 후 가을에 임신 중인 아내를 남겨 두고 신림동의 한 고시원에 들어갔다.   고시원에선 학습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고 생활을 규칙적으로 할 수 있었지만 외로움을 자주 느껴 주말마다 집에 가지 않을 수 없었고 아내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고시원으로 찾아오곤 했다.  고시원에서의 생활은 한 마디로 외로움과의 투쟁이었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 아침 산책을 했다.  마침 관악산 줄기가 가까이 있어서 날마다 산에 오르며 맑은 기운도 마시고 한적한 곳에서 명상도 할 수 있었다.  또 얼마 후엔 고시원 사람들도 좀 사귀게 되고 학교 후배도 알게 돼서 고시원 생활의 외로움을 완화시킬 수 있었다.

 고시원 생활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외로움에 익숙해질 만 하자 단조로움과 답답함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 무렵 내 필요에 부응해서 아내뿐만 아니라 동생들과  친구들의 방문이 잦아졌다.  아내와는 주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고 동생이나 친구들과는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거나 PC방에 가곤 했다.  결국 4개월만에 고시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시험 전 3개월 정도는 집 근처 독서실에서 마무리 정리를 했다.  고시원보다 주위 환경이 산만하긴 했지만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어 집중력은 높아졌던 것 같다.  2000년에 치른 1차 시험에선 평균 86점으로 합격했다.  당시 합격점은 82.5점이었다.  

 이 해에 연습 삼아 치른 2차 시험 평균점수는 46.44였다.  (영어: 81.66, 국제정치학: 41.66, 국제법: 36.66, 경제학: 30.00, 스페인어: 44.66, 정보체계론: 44점)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20점 정도를 올려야 안정권에 들어설 수 있는 점수였다.  하지만 낙심하지 않고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다.  기본서로는 많은 수험생들이 택하는 교재들을 선택했다. (미시는 이준구 선생님, 거시는 정운찬 선생님, 국제경제학은 김인준 선생님의 책을 선택했다.)

 고시원 생활을 오래 견딜 자신이 없었으므로 먼저 독서실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기본서를 2∼3회 독파한 후 그 해 8월에 다시 고시원에 들어갔다.  경제학과 스페인어를 위주로 11월까지 공부한 후 학습 장소를 학교 고시실로 옮겼다.  후배들과 어울려 토론도 하고 특강도 들으면서 2월까지는 순조롭게 보냈지만 마무리 정리가 쉽게 되지 않았다.  모여서 공부하는 것이 여러모로 장점이 많기는 하지만 정리하는데는 불리한 점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집 근처 독서실로 옮겨 마무리 정리를 했다.  날마다 혼자 모의 시험을 치며 답안 작성 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2001년 2차 시험 성적은 평균 58.94점이었고 합격점은 61.55였다.  영어를 제외한 전 과목에서 50점대 초반 또는 중반 정도의 평범한 점수를 얻어서 전략과목의 필요성을 통감했다.
 
 2차 시험에 실패한 충격은 1차에 실패했을 때보다 훨씬 컸다.  한 동안 공부를 다시 시작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해 여름, 동차 합격을 목표로 고시원에 들어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먼저 8월에는 고시글씨체 강의를 들으며 글씨연습을 했다.  연습을 통해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점을 고칠 수 있었고 글씨를 가지런히 모아쓸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부터는 필기에 조금씩 자신감이 생겨서 그 동안 소홀히 했던 서브노트 작성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10월까지는 경제학과 스페인어 공부에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  이 두 과목이 받쳐줘야 동차합격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스페인어와 경제학은 이후에도 꾸준히 공부했다.  11월과 12월에는 국제법과 국제정치학 및 정보체계론을 공부했고 정보체계론의 경우엔 12월 중순경에 강의도 들었다. 

 고시원 생활의 단조로움에서 오는 권태감이 최고조에 이른 연말에 거처를 다시 집으로 옮겼다.  수험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 무렵에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내 경우엔 산만한 주변 환경이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다.  태생적으로 나태해지기 쉬운 성향을 갖고 있는 내게 학업에 집중할 동기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다른 일로 한 시간을 빼앗기면 두 시간을 더 공부하려고 노력한 덕에 집중력을 높일 수 있었다.  12월 중순부터 1차 시험 전까지는 헌법과 국사를 위주로 1차 과목 공부에 매진했으며 1차 시험을 치르고 3일 정도의 휴식을 취한 후 바로 2차 시험을 준비했다.  날마다 모의 시험을 치거나 목차 잡는 연습을 하면서 답안 작성 감각을 유지하려 노력했고 식후에 늘 산책을 했는데 이 시간을 이용해 전날이나 그날 공부한 내용을 떠올려 보거나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 

 비록 동차 합격을 목표로 공부해오긴 했지만 실패하더라도 다음해에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는 생각에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2002년 2차 성적은 영어 91.33, 국제정치 55.66, 국제법 54.66, 경제학 65, 스페인어 66, 정보체계론 50점으로 평균 63.77점이었고 합격점은 60.33이었다.  계획했던 대로 영어와 경제학 그리고 스페인어에서 점수를 올릴 수 있었고 정보체계론의 경우엔 많이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점수가 떨어졌다.

 3차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2차 시험 결과가 발표된 후에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2차 합격생들 몇몇과 함께 3차 대비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토론 연습을 했다.  그리고 6월 28일 오전에 법률저널 기자로부터 최고령으로 합격했다는 전화연락을 받으며 수험생활을 마무리했다.

 수험생은 자신에게 맞는 공부방법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나는 수험 기간의 대부분을 혼자 공부했다.  하지만 외부세계와 단절된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나 서점 등을 둘러보며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고 학교 후배를 통해 수험자료를 얻기도 했다.  혼자 공부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불리할 수 있다.  시간 관리를 잘못 하면 나태해지기 쉽고 필요한 정보를 공유할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2차 답안 작성 연습을 혼자 하는 경우 스스로의 단점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내 경우는 시간 관리를 위해 월간 및 주간 학습목표를 설정한 후 학습계획표를 작성하고 과목별 진도를 날마다 기록함으로써 스스로를 견제할 수 있었으며, 여러 경로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려고 노력했고, 각 과목에 적합한 논술방식을 익히기 위해 관련 논문들을 많이 읽었다.  산책 시간에도 그날 학습한 내용을 떠올리며 머릿속에 정리하는 등 시간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어떤 공부방법을 택하든 수험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수험생활에 관한 내 작은 견해가 수험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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