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변호사 김지영의 책 속을 거닐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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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변호사 김지영의 책 속을 거닐다 (4)
  • 김지영
  • 승인 2018.10.02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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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변호사
서울지방변호사회 이사,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2006) / 김용규 / 웅진지식하우스

운명보다 위대한 시지프스들을 위하여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나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 오르텅스 블루 <사막>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뒷걸음질을 친다.” 저는 이 시가 제 마음 같아 코끝이 찡하더군요. 특히나, 변호사를 하면서 저는 저의 어려움을, 속마음을 부모님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습니다. 어차피 제가 모두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고, 누구에게 털어놓는다한들 해결되지 않는 것이니까요.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면 이렇듯, 가족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혼자 외로움을 견뎌야 하더군요. 여자변호사들끼리 그런 농담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앵벌이야. 가족들 부양하느냐고 막상 우리는 돌볼 틈도 없잖아.” 누군가 그런 말을 하는데, 다들 무릎을 치며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지요.

“만일 지옥이 있다면, 그것은 타인이다”
- 장 폴 사르트르

사람들 사이의 고독한 섬에 갇혀 외로워 하면서도, 우리는 또한 그 사람들의 시선에 갇혀 있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기준이 무엇이고,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우리는 늘 생각하지요. 그리고 그 기준에 우리를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타인의 시선에 우리를 맞추고 우리의 팔다리를 잘라버립니다. 작년에 베스트셀러였던 <19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도 저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물론, 여자라서 사회, 직장, 학교, 가족으로부터 차별을 당하고, 그들이 제시하는 기준에 맞추어 살려고 발버둥치는 내용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 본질은 결국 타인의 시선에 나를 끼워 맞추는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쯤 되니, 타인은 나의 지옥인 것이죠.
사람 속에서도 외롭고, 타인이 나의 지옥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스의 신화> 중에서

사람들은 말하죠. 매일 매일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뻔하고 지루하다고요. 주말만을 기다리며 힘겹게 출근하고 일합니다. 이른 아침, 지하철 속.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후덥지근하고 좁은 공간 속에서 내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로 수십 분을 버티고 출근합니다. 그리고는 누군가에게 욕을 먹으며 일합니다. 변호사들은 의뢰인, 판사, 검사에게 욕을 먹으며 일하죠. 힘겹게 일해도 패소하거나, 승소해도 성공보수 떼이기 일쑤입니다. 카뮈의 말대로 ‘무용하고 희망없는 노동’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매달 대출이자, 가족들 생활비, 각종 공과금을 결제하고 나면, 제 통장은 텅장이 되어버립니다(사실은 마이너스가 됩니다만). 다음 달 다시 시작합니다. 정말 시지프스의 형벌이 따로 없습니다. 카뮈는 21세기의 시지프스들에게 말합니다.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는 고통을 향하여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내쉬는 숨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오는 이 시간은 곧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꼭대기를 떠나 신의 소굴을 향하여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순간 시지프스는 자신의 운명보다 더 우월하다(p199).”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중에서

저는 이 구절을 소리 내어 읽으며 울컥했습니다. 운명에 반항하는 인간이 운명보다 강한 것처럼, 돈 키호테도 운명보다 강한 인간이 아니었을까요. 꼬꼬마 시절, 아침에 이유 없이 가슴이 뛰고 설레던 순간이 우리에게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 코끝이 찡해지며 가슴이 설렙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을지도 모르지요.

“나의 사고는 혈거인의 그것보다 더 빈약하다. 그러나 이러한 때, 기억-지난 날 내가 산 적이 있는 곳, 또는 가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두세 곳의 기억-이 천상의 구원처럼 내게 내려와,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없는 허무로부터 나를 건져 준다(p 314).”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에서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만 같았던 유년시절의 기억. 어느 날, 우연히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베어 물며 어린 시절 ‘콩브레’에서 보냈던 어린아이의 시절이 떠오릅니다. 존재조차 하지 않은 것처럼 잊혀졌던 과거의 기억들이 어느 순간, 우리에게 찾아와 잃어버린 우리 자신을 일깨워 준다고 프루스트는 말합니다.

“여름날의 황혼이나, 겨울의 때 이른 밤에는 평화나 기쁨이 언제까지 깃들여 있을 것같이 생각되는 시간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다. 미구에 다시 새로운 쾌락의 순간이 노래할 때면, 그 순간 또한 마찬가지로 가느다란 선이 되어 사라지겠지만, 미완성의 시간은 거기에 풍요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근거를 가져다 준다(p 333).”

매일 무용한 노동을 하며,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때로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좌절하는 삶. 그렇게 켜켜이 쌓인 우리의 과거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고 우리를 운명보다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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