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판사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5년, 2025년부터는 7년의 법조 경력이 요구된다. 변호사나 검사로서 오랜 기간 일해야만 법관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 셈이다. 이는 법조일원화 정책에 따라 법관이 되기 위해 충분한 실무 경험과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높은 진입 장벽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법원이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과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이 필요하다. 현재의 경력 요건은 이러한 다양성 확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경력 요건을 대폭 완화하여 법조계 내외의 우수 인재들이 법관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더욱 넓혀야 한다.
법조일원화에 따라 과거 경력 요건이 3년에서 5년으로 상향된 직후 신규 임용 인원이 급감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높은 기준은 능력 있는 젊은 법조인의 법원 유입을 가로막는다. 게다가 법조계에서 충분한 경력을 쌓은 이들에게 판사직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이미 전문 분야에서 역량을 인정받은 변호사가 다시 법원 문턱을 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법조일원화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이상적인 제도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법조계의 다양한 현실과 인재들의 경력 경로를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법조인을 일률적인 기준으로 재단하려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사법부는 우수한 인재 유입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특히 7년이라는 지나치게 높은 경력 요건은 법조일원화의 근시안적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급변하는 사회 현실 속에서 7년이라는 긴 시간은 개인의 경력 개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인재들에게 이는 사법부로의 진입을 가로막는 높은 벽으로 기능한다.
물론 법관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기에 앞서 일정 기간의 수습은 필요하다. 하지만 5~7년은 지나치게 길다.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후 변호사 시험을 통과한 인재들은 이미 상당 수준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3년 정도 실무를 경험한다면 법관으로서 충분히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사법연수원 시절에는 2년간의 연수 후 곧바로 판사에 임용되었지만, 그 누구도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또한 현행 제도는 경직되어 있어 다양한 인재 영입에 한계가 있다. 판사 임용의 문호를 획일적인 기준으로만 좁혀놓을 게 아니라, 경력 단계별로 유연하게 열어둘 필요가 있다. 검찰의 경우 최근 선발 기준을 낮추고 무시험 전형을 도입해 인력 수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처럼 경력 구간별 차등 선발, 시험 외 심사 방식 도입 등 혁신적 변화가 필요한 때다.
무엇보다 사법 인력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법원에 들어오는 사건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이를 감당할 판사 수는 정체되어 있다. 이로 인해 재판은 지연되고, 국민의 불편은 가중된다. 나아가 투자 및 경제 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져 국가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현 단계에서 판사 수를 대폭 늘리는 것이 급선무인 만큼, 임용 요건 완화는 필연적 선택이다. 반대로 경력 기준 완화 시 판사의 전문성과 자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생들은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역량을 갖추고 있다. 변호사 자격 취득 후 3년간 실무를 하며 전문성은 더욱 갈고 닦을 수 있다. 경력과 자질의 연관성을 과도하게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사법부가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경력 요건 완화에 속도를 내는 것은 법원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국회는 조속히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최소한 2025년으로 예정된 7년 요건 적용은 피해야 한다. 그래야 내년 신규 판사 임용에 혼선이 없을 것이다.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은 국민의 기본권이자 사법부의 의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건 오직 ‘사람’이다. 능력과 열정을 갖춘 인재가 법원에 더 많이, 더 일찍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판사 임용 문턱을 시대 흐름에 맞게 개선하는 일, 더는 미룰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