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계리직 시험장에서 만난 수험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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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계리직 시험장에서 만난 수험생들
  • 이인아 기자
  • 승인 2016.07.28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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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이인아 기자] 기자가 물건을 사러 이따금씩 들리는 어느 상가 건물 관리사무소에서 얼마전 보안요원을 뽑는 채용공고를 냈다. 단골은 아니지만 한달에 한번이라도 가끔 들르면 아는체를 해주는 한 아주머니 덕분에 건물에 일어나는 일들을 본의아니게(?) 듣곤 한다.

보안요원은 주말, 주야교대 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고 고객민원대응 뿐 아니라 건물에 들어선 점주의 불편까지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도 좋아야 하고 뒷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서비스정신, 사람을 다루는 센스 또한 갖춰야 한다. 보안요원으로 있었던 20대 젊은청년이 힘이 들어 3달만에 그만두고 새롭게 채용공고를 냈는데 공고를 낸지 얼마되지 않아 수십개의 이력서가 몰렸단다. 그런데 이 채용에 은퇴한 공무원, 중간에 퇴직한 공무원들이 적잖게 몰려 새삼 깜짝 놀랐다는 설명이다. 기자는 취재 외 어디가서 신분을 밝히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입에서 공무원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것은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닌, 정말 있는 그대로의 팩트라 귀가 쫑긋해진다.

보안요원 하나 뽑는데 전직 경찰공무원, 어느 구청에서 일했던 공무원, 또 서울 어디서 일했던 공무원 등 공무원들이 많이 지원해 요즘 녹록한 직업이 없는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심지어 공무원으로 있다가 보안요원으로 지원한 한 전직 공무원은 현직에서 일할 시 받은 상까지 첨부할만큼 열의를 보였단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지원을 했구나 싶었다가도, 오히려 그 화려한 경력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경륜있는 전직 공무원을 뽑으면 언제 치고 올라와서 자기 자리를 탐낼지 모르고 상대방에게 자세를 낮추는 것이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큰 전문성을 요하지 않은 업무특성상 채용담당자는 조금 스펙이 떨어져도 말잘듣고, 순종적인 사람을 뽑을 것이라는 게 기자 생각인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공무원이 일반회사에 지원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일반회사에서 공무원으로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3일 실시된 계리직 시험에서 기자는 얼마나 많은 직장인들이 공무원으로 이직하고 싶어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앞서 몇차례 기사를 통해서도 기자는 이번 계리직 시험에 직장인, 주부, 중년남성 등 응시가 두드러질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그럴 것 같다 하는 추측과 막상 현장에서 확인하는 것은 그 느끼는 바가 천지차이다. 기자는 이번 계리직 시험 취재에서 시험에 대한 응시자 평가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왜 계리직 시험에 도전했는지 속내가 더 궁금해 공적 외 이야기도 제법 했던 것 같다. 기자가 만난 응시자들은 다소 예민한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꽤나 오랜시간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교육분야에서 일하다가 시험을 본 응시자, 해외에서 일하다가 한국으로 와 시험을 본 응시자,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중에 시험을 본 응시자, 공장사무업무를 하던 중 시험을 본 응시자, 전업주부, 백수탈출하고자 하는 청년, 예술계통에서 일하다 시험을 본 응시자 등 그 사정은 다양했다.

이 중 절반이상이 30대 후반 40대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이들은 국가직이나 지방직 9급 시험은 있는지도 몰랐는데 계리직시험은 신문이나 지인추천, 온라인업체에서 받은 메일 등의 경로를 통해 어떻게 알게 돼 한번 보게 됐다는 설명이다. 왜 공무원시험을 보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미소로 답했지만 그 미소가 주는 의미는 굳이 말안해도 알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공무원으로 이직하고 싶어서, 육아와 병행을 위해 등 이유는 예상대로였다.

이번 시험을 계기로 공무원시험에 대해 정보를 더 많이 얻어 다음에도 도전해보겠다는 응시자들이 많이 보였다는게 특징이었다. 한 응시자는 “시험도 망쳤고 내가 왜 공무원시험을 보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멋쩍어하면서도 “그래도 한번 봐 봤으니 다른 시험도 있으면 도전해볼 것 같다”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는 생애 처음 공무원시험을 보러왔고 시험장도 처음 와봤으니 기념사진이나 몇 컷 찍고 가야겠다며 학교건물을 배경으로 셀카모드에 들어갔다. 이번 계리직 시험장에서 기자는 공무원시험장 취재 사상 처음으로 취재원으로부터 명함을 달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두 명한테나. 혹시라도 나중에 공무원시험 정보를 얻고싶을 때 연락한다면서 말이다.

시험을 못봤다고 하지만 기자가 보기에는 분명 그들의 눈에는 총기가 있었다. 공부시간만 더 확보된다면 점수는 충분히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 계리직시험이 일단 성료됐고 주말에 벌어진 일을 뒤로 한 채 시험을 봤던 응시자들은 또 오늘은 일터에서 혹은 수험가에서 각자의 일상을 보내고 있을 듯 하다. 계리직시험 응시자 상당수가 내년 9급 공채까지 보게 된다면 아마도 공무원 경쟁은 더 치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어디서든 개미와 같이 열심히 삶을 사는 많은 사람들, 수험생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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