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통과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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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소통과 판결
  • 이제정
  • 승인 2016.02.2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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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정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들 중 한 가지를 꼽는다면 아마도 소통이 아닐까. 매스컴에는 정치, 경제, 사회 분야는 물론이고 지역, 계층, 세대 간에 제대로 소통하지 못해 일어나는 뉴스들로 넘쳐난다.

법원에서도 부모와 자식 간, 형제 간, 이웃 간에 사소한 언쟁이나 갈등이 발단이 되어 법정에 서게 되는 사건을 자주 볼 수 있다.

소통(疏通)이라는 말은 본래 중국의 고서인 예기(禮記)에서 유래하는데, 막힌 부분을 뚫어 물이 잘 흐르게 한다는 뜻이다.

조선 선조 때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중봉 조헌은 도끼를 들고 궁궐에 나아가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이른바 지부상소(持斧上疏)라는 것으로, 소통시켜 주지 않으려거든 자신을 베어달라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당시로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에 맞서 상소를 올리는 일처럼 큰 소통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주교를 비롯한 성직자들을 타고난 갈등해결의 중재자로 여겼다. 그들이 갖고 있던 세력이나 교육수준 외에도 사건을 조정하는 역량과 신뢰감을 주는 능력으로 인해 특별히 중재자로 선택을 받았던 것 같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마을의 현자나 존경받는 학자가 공동체의 규범이나 사회적 가치를 기반으로 갈등을 해결하는데 기여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분쟁해결의 역할을 주로 법원이 담당하고 있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까지도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소송에 의지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분쟁해결의 최종 수단으로 소송을 선택한 당사자들은 법원이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려 공정한 판단을 해 주길 바란다. 이처럼 법원의 분쟁해결기능이 커질수록 법원의 소통기능 또한 중요해진다.

법원에서의 소통은 크게 법정에서의 소통과 판결서를 통한 소통으로 나눌 수 있다.

법정에서 소통의 핵심은 듣기와 말하기에 있다.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듣기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힘도 상대방의 말에 공감하고 집중해서 듣는 경청에서 나온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준다.

그 동안 법정에서 원활한 소통을 위해 법원에서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의 시행과 더불어 법정모니터링, 법관 상호간 교차방청을 실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처럼 법정에서의 소통이 강조되어 온 데 반해 판결서를 통한 소통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이 의미하듯이, 판결서는 법관이 당사자와 소통하는 중요한 통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건에서 판결서는 법 해석에 관한 법원의 판단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기능뿐만 아니라 무엇이 법인지 선언함으로써 사회적인 가치척도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2013년부터 형사판결서가, 2015년부터는 민사·행정·특허사건의 판결서가 전면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법관은 자신의 판결서에 대하여 보다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되었다.

그 동안 판결서는 난해한 용어와 지나치게 길고 복잡한 문장으로 인해 당사자들은 물론 법률전문가들조차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판결서를 통한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새로 쓰는 형사판결서」와 「새로 쓰는 민사판결서」를 각각 발간하였다. 앞으로 쉬운 낱말과 정확하고 명료한 문장을 사용하여 판결서를 통한 소통이 더욱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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