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저 인터뷰] 늦깎이 로스쿨생에서 형사소송 전문 로펌 취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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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저 인터뷰] 늦깎이 로스쿨생에서 형사소송 전문 로펌 취업까지
  • 이아름 기자
  • 승인 2014.05.09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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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보다 실무에 잘 적응할 인재가 우선!
형사소송 전문 로펌 임병후 변호사

10년 꿈 로스쿨로 풀다!

형사소송 전문 법무법인 일호 1년차 새내기 임병후 변호사는 늦깎이 로스쿨생이었다. 대학에서 생명과학부를 전공한 그가 대학을 졸업한지 10년이나 지나 학생으로 돌아갔던 이유는 무엇일까.

1998년 그가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하던 동기가 수감생활을 하게 됐다. 친구를 도와주고 싶은데 접견을 가서 얼굴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아무런 도움을 못 준다는 생각에 자신의 무력함은 커져갔다.

그가 대학 졸업 후 뛰어들었던 곳은 통신사업이었다. 7년여간 통신업체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조세법, 특허, 상표와 관련된 지식재산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행정규정들을 보면서 자신이 하는 사업의 방향이 법적으로 잘못된 것은 없는지, 자신이 하는 광고가 정보통신법에 저촉되지 않는지 등에 대해 관련 서적을 사서 나름 독학을 하기도 했다. 정보통신에 관한 전문지식에 관심을 가지고, 지식을 쌓아갔던 것이다.

그러던 중 로스쿨 도입 소식을 듣고 평소 꿈꿔 왔던 것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법적지식을 쌓고 나면 아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무색해 버릴 만도 한데, 대학시절 수감생활을 하던 동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전공과는 상관없었지만 꾸준히 법 지식을 쌓는데 관심을 보여 왔던 그는 그렇게 로스쿨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고 합격 통지서를 받게 됐다.

“운이 좋게 로스쿨에 합격할 수 있었어요”

사법고시를 치르기 위해서는 법학이수학점이 필요했고 준비를 한다고 해도 된다는 보장이 없지만 로스쿨을 나오면 그래도 변호사가 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에 차 있었다.
 

고독한 홀로서기 공부 ‘NO’
비교 멈추고 자신이 가진 것 빛내야

로스쿨에 입학할 당시, 임병후 변호사의 나이는 33살이었고, 이미 가정도 있었다. 사립대 보다는 등록금이 저렴한 국립대 쪽을 알아보는 것이 여러모로 가계에 부담을 줄이는 선택이었다.

전국 로스쿨들은 초기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장학금 지원 등의 혜택을 내세웠고, 그 중 강원대로스쿨은 전액장학금 제도를 내걸었다. 또한 소수의 인원으로 교육을 한다는 점이 그가 생각하는 조건과 꼭 맞아 들어갔다.

임병후 변호사가 생각하는 로스쿨이란 법조문이나 판례를 앵무새처럼 외우는 과정이 아닌, 다양한 실제 사건들을 어떻게 실정법에 적용시켜야 되는가를 배워나가는 과정이다. 3년이라는 로스쿨 생활이 법학을 공부하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지만 법학을 배울 자세를 익히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로스쿨은 도입 취지에 걸맞게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선발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전공지식과 상관없이 같은 선상에서 경쟁을 하게 된다. 법학사나 사법시험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의 초반 경쟁에서 비법학사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공부시간을 확보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학생들도 상당하다. 그러나 임병후 변호사는 동기들과 대화마저 단절하고 변호사시험 공부에만 매진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조언했다.

그역시, 비법학사 출신으로 남들과 비교하는데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허비한 과오를 범한 적이 있다. ‘자신은 모르는데 저 친구는 어떻게 잘 아는지’ 남들과 비교하게 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해 간 적이 있었다. 때론 ‘자신도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의미 없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원어민처럼 영어도 잘하고 싶고, 회계에 대한 지식도 갖추고 싶고, 건설에 관한 지식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남들과 비교당하고, 비교하는 삶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또 그것이 극에 달하면 스트레스로 인해 공부마저 포기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로스쿨에 모인 모든 동기들은 ‘변호사자격’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3년 이상을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상기해야”

임병후 변호사는 동기들도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진 공동체로 여기고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것을 찬란한 보석처럼 빛나게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때 초조한 마음에 고독한 홀로서기 공부를 했던 그가 스스로 그러한 방식을 버리고 나니 자신을 좀 먹는 생활을 극복하게 됐다. 법학이란 것은 실용학문이며 변호사는 평생 남들의 얘기를 듣고 그들의 고민을 대변해주는 직업인만큼, 고독한 공부보다 동기들과 대화를 통해 지식을 함께 나누길 바랐다.
 

동기들의 힘 ‘스스로 특강’

임병후 변호사의 로스쿨 생활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학생들 스스로가 필요한 법률지식을 구한데 있다. 40명으로 이뤄진 소규모 로스쿨이라 대규모 로스쿨보다 동기들 간에 교류가 잦았다.

그만큼 서로 간의 소통이 잘 이뤄졌고, 대화를 통해 공부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던 것이 강원대로스쿨만의 큰 강점이 됐다.

“다시금 강조하고 싶어요. 고독 보다는 대화를 통해서 함께 공부를 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로스쿨 생활이고, 3년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후배들에게 꼭 말하고 싶어요”

동기들끼리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고, 발표를 하면서 법학적 소양을 쌓아 갔다. 자연스럽게 공부에 대한 자신감도 쌓아 갈 수 있었던 발판이 됐다.

수업시간 강의를 듣더라도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이해를 많이 한 동기가 먼저 나서 한 시간 정도 특강을 열고, 강의가 끝난 후에는 동기들끼리 대화하면서 피드백이 이뤄졌다. 누구 하나 빠트리지 않고 이해를 하고 넘어가는 시스템이 구축된 것.

소수의 인원이기에 거의 한 번씩 돌아가면서 특강을 했고, 반응은 너나할 것이 좋았다. 임병후 변호사는 민사소송법 강의와 지식재산권 상표에 관한 특강을 주로 했다.

또한 스스로 특강 시스템은 처음 법학을 접하게 되는 비법학사들을 위해 동기인 법학사 출신이 나서 기초법률지식을 강의하는데도 이용됐다.

“입학 후 초기에 비법학사들을 위해 법학사 출신이 특강을 하는 방식으로 기초 법률지식을 익히고, 법학에 대한 막연한 어려움을 극복했죠”

일부 로스쿨에서 석사 또는 박사 과정의 학생들이 비법학사 로스쿨생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멘토링 제도가 있긴 하다. 강원대로스쿨은 학교 측의 주도가 아닌 학생들이 주최가 돼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로스쿨이란 곳은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미리 법학공부를 한 법학사와 법학적 지식이 전무 한 비법학사가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함께 경쟁한다면 당장 비법학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이에 대해 임병후 변호사는 법학사와 비법학사의 경우, 1학년 때 만이라도 서로 구분해서 다른 과정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처음 법학을 접하는 사람을 위한 과정이 필요로 해 보인다”

그는 “일본 로스쿨에서 법학사와 비법학사를 나눠 교육을 다르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느 정도 비법학사들이 지식을 쌓을 수 있을 때까지 커리큘럼을 달리해야 한다”며 “적어도 1년 정도는 예비적인 단계를 뒀으면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그는 로스쿨 생활 3년 동안 그룹 스터디를 운영해 매일 1~2시간씩 동기들과 함께 공부했다. 민사판례연구회, 지식재산권협회에 가입해서 정기적인 활동도 했다.

임병후 변호사는 수석 졸업생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면, 타인과 지식을 나누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남들과 지식을 나누는 만큼, 자신의 지식도 더욱 쌓인다고 믿었다. 실제로 자신이 아는 것을 남에게 얘기해 줄 정도의 실력을 갖추려면 더 외우고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된다.

학생들 스스로가 강의하고 동기들끼리 대화를 통해 공부하는 시스템이 스스로들을 구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시작됐지만, 임병후 변호사뿐 아니라 다른 동기들도 그 덕을 톡톡히 봤고, 이러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후배들 역시, 선배들이 공부한 시스템을 이어오고 있다.

로펌취업
스펙 아닌 성실한 적응력으로

변호사가 된지 이제 1년이 갓지나 ‘영역의 전문화’를 논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임병후 변호사는 앞으로 변호사 수의 급증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무기로서 전문분야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로스쿨생 시절 임병후 변호사의 당시 고민은 특성화였다. ‘내가 과연 어떤 전문분야를 개척해서 무기로 삼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실생활에서 많이 접하는 상표가 가장 강력한 재산권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형사소송 분야도 특화를 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다.
 

 
로스쿨에서는 지식재산연구회에 가입해서 상표에 관한 지식을 갖추는데 노력했다. 특허청이 주최하는 국제지식재산연수실무과정에 참석해 변리사들과 특허법원 판사들의 생생한 강의도 들었다.

“실제사례를 통해서 공부를 했기에 훨씬 더 머리에 잘 들어왔던 것 같아요”

다행히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기 전, 임병후 변호사는 취업에 성공해 취업의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가 취업한 곳은 형사소송이 전체 60%이상을 차지하는 로펌이다.

임병후 변호사가 소속돼 있는 법무법인 일호는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만든 곳으로 형사소송을 특화했다. 당시, 임 변호사는 면접 겸 이론 시험을 거쳤는데 부장검사 출신인 김용남 대표변호사가 직접 문제를 내주고,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고 한다.

김 대표변호사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어디 로스쿨을 나왔는지가 아니라, 실무에 와서 힘든 트레이닝 과정을 견뎌낸 후 보통변호사로 남을지, 훌륭한 변호사가 될지 자질이었다.

나이도 많고 비법학사 출신에 지방대 로스쿨이라는 조건이 자칫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었지만 스펙보다는 실무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변호사를 찾겠다는 로펌의 인재상 덕이 컸다.

“형사전문 로펌이라 무엇보다 체력과 성실을 기본으로 본 것 같아요”

형사사건이 많기 때문에 새벽까지 일하는 경우도 많고, 갑작스럽게 영장이 청구돼 구치소에 접견을 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변호사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체력인데, 형사사건을 주로 하는 로펌이기 때문에 체력과 성실함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법을 우선 알아야 한다

통상 변호사가 되더라도 형사사건을 접하기는 쉽지는 않다. 형사사건을 전문적으로 하는 로펌에 들어와서 다양한 사건과 범죄를 다루다 보니, 형사소송 특화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임병후 변호사는 ‘의사는 사람의 신체를 치료하지만 변호사는 사람의 마음을 치료한다’라는 마음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의뢰인들의 마음까지 보듬는 것이야 말로 변호사로의 진정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형사사건의 경우, 따뜻한 마음과 차가운 머리로 의뢰인을 대해야 하는데 실제로 로펌을 찾아오는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음 아픈 사건들이 많다.

“정말 억울한 일을 겪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여기에 와서 처음 알게 됐다”

피고인이라고 하면 판결이 나기도 전에 이미 죄인으로 낙인이 찍힌다. 그런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의뢰인을 보호하는 것도 변호사로서 의무라고 그는 강조했다.

최근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에 대해 묻자, ‘준강간’으로 기소된 피고인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피해자 말만으로도 기소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 공안사범처럼 마녀사냥으로 몰아가는 경향도 있다는 것. 성폭력 범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은 맞지만, 이 속에서 악의의 피해자가 선의의 피의자를 만들기도 한다.

한마디로 꽃뱀사건인 경우다. 죄가 없다고 끝까지 무죄를 다투는 것 보다, 변호사가 합의를 유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임 변호사는 안타까워했다. 피의자 신분의 의뢰인도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피해자와 합의를 봐서 집행유예 선고로 그칠 수 있지만 끝까지 재판을 할 경우 징역이 선고될 수 있는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임 변호사는 평소 김용남 대표변호사가 자주 말해 주는 것을 상기한다. ‘법을 우선 알아야 한다’는 말이 그도 정답이라 생각했다.
 

 
의뢰인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감정이나 실제 사실관계와 다른 내용에 휩싸일 수 있기 마련인데, 이럴 땐 법에 기초해서 생각해 나가는 습관이 중요하다. 그리고 법조문을 찾아보는 습관 역시, 변호사가 아무리 특성화를 잘 하더라도 법을 모르면 안 된다는 ‘기본에 충실하라’는 의미로 합쳐진다.
 

20년 후엔 모교로스쿨 돌아가고파

지금은 1년차 변호사로, 매일 9시에 출근해 자정이 되기 전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주말뿐이다. 아무래도 가정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가족들은 불평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를 지지해 준다.

“가족들이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겨줘요”

아빠와의 시간이 그리운 12살 딸과 10살 아들은 아빠가 변호사로서 남을 돕는 일에 바쁘다는 것을 이해해준다. 그의 자녀들은 주말에만 놀아줘도 된다며 대견스런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는 두 자녀에게 자신처럼 변호사의 길을 걸으라고 조언한다. 변호사라는 자격증을 갖춘다면, 지식만으로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좋은 직업이 된다며 또 그런 직업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가족과 함께 사무실 직원들도 그에게는 소중하다. 진짜 가족과 함께 사무실 직원들은 제2의 가족이라고 여긴다. 직장동료들과는 시간상 가족보다 더 많이 지내고 어려운 것을 같이 토론하기 때문이다.

임병후 변호사는 다른 로펌과 차별화 된 점으로 점심은 소속 변호사들끼리 함께 하면서 그 시간을 이용해 서로 자문을 구하는 것을 높이 샀다. 주니어 변호사들과는 저녁도 함께 먹으면서 서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또한 ‘다단계 결재시스템’이 있어서 잘못된 점, 부족한 점을 보충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실수를 줄일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필부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충성한다’라는 말처럼, 임 변호사는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 준 대표변호사를 닮고 싶어 했다.

재판에서든 의뢰인을 대할 때, 구치소에 접견 때에도, 그리고 높은 사람을 만날 때도 항상 당당한 모습을 유지하고 자신의 할 말을 주저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비범함을 본받고 싶어 했다.

지금으로부터 3년 후에는 4년차 변호사가 되는 임병후 변호사. 그때는 자신만의 전문분야가 개발이 된 상태일 것이고, 논문을 작성하고 저서도 한 편정도 낼 생각을 하고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혼자 알고 있지 말고 남들과 나누고 싶은 맘에서다.

“1년에 논문 한 편만 써도 10년 후에는 최고의 전문가가 돼 있을 것이다”

로스쿨 지도교수였던 육태우 교수가 그에게 해 준 말이다. 로스쿨에는 나이 많은 학생과 교수 중에는 젊은 층도 있다. 나이 차가 적다 보니 세대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보다는 친근감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교수와 학생이라는 신분을 떠나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선배 같은 입장에서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그에게 그런 존재가 바로 육 교수였다. 대화를 통해 수업을 진행했던 것이 학문적인 도움뿐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렇게 도움 받았던 것을 20년 후에는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어 했다. 기회가 된다면 모교 로스쿨로 돌아가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꿈이다.

이아름 기자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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