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저인터뷰]김형국 국선전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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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저인터뷰]김형국 국선전담변호사
  • 법률저널
  • 승인 2010.03.0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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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건 변호 시작은 ‘피고인 믿는 것’부터
국민의견 필요 사건, 의무적 국민참여재판 시행해야

 

“피고인의 진술에 대해 모순이 있더라도 이를 믿고 보완하는 것이 우리 국선전담변호사들의 역할입니다”


김형국(사법시험 45회) 변호사는 국선전담변호사 1기다. 고시생 시절,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돈 없어 소송을 진행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3년 이상 일하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수원을 졸업하고 국선전담변호사를 지원했다.


5년간 1400건의 사건을 진행한 그는 국민참여재판도 여러 차례 진행해 왔다. 김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국민의 관심이 높고 의사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사건은 의무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3일 김 변호사를 만나 그의 국선전담변호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선변호는 고시생 때 스스로와 한 약속
김 변호사는 연수원 졸업과 동시 국선전담변호사에 지원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가 국선전담변호사 길을 선택한 것은 고시생 시절 스스로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고시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고시생 시절 합격 후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며 “법조인이 된 후 적어도 3년은 국선변호를 통해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연수원 졸업하던 해 국선전담변호사 제도가 시범기간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시작돼 주저 없이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선변호사 업무가 생각만큼 녹록치는 않았다고 김 변호사는 술회했다. 시행 초기에는 월 40건 이상의 사건을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2개 재판부에 배정됐던 김 변호사는 일주일에 4일은 재판을 진행하고 남은 하루는 피고인을 접견해야 했다. 이렇다 보니 기록검토 등 재판준비는 당연 주말을 이용해야 했다. 하루에 23건을 기록한 날이 있을 정도였다. 제도가 정착되면서부터는 월 20~25건 내외로 줄었고 그 사이 사무실도 지원되는 등 처우가 개선됐다. 현재 그는 서울서부지법 합의부에 배정돼 5년째 국선전담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피고인 믿는 것부터 시작
김 변호사가 있는 합의부는 징역 3년 이상의 중대 사건을 관할한다. 그가 국선전담변호사로 처음 맡은 사건은 서울 용산구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던 남성이 여아를 유인해 성폭행을 시도하다 실패하자 흉기로 살해한 후 시신을 불태워 버린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었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의 소송기록을 처음 읽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는 “사법시험에 어렵게 통과해 법조인 되어서 억울한 사람을 돕고 싶었는데 이런 범죄자를 위해 법정에 서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고 당시를 소회했다. 그때 그의 대학 교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문명사회의 특징은 ‘약자에 대한 관용’이며, 이 사회에서 가장 약자는 가난한 자도 불쌍한 자도 아닌 단 한 사람의 동정도 받지 못하고 있는 형자재판의 피고인이라는 것. 그리고 그 일선에 국선전담변호사들이 있다는 말은 지금까지도 힘을 주고 있다고 김 변호사는 말했다. 이 사건은 결국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김 변호사가 국선전담변호사로 일하면서 가장 첫 째로 생각하는 원칙은 ‘피고인들의 말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는 “조리와 경험칙에서 맞지 않는 피고인의 진술에 대해 검사가 모순점을 발견하는 역할을 한다면 우리 변호사들은 이를 믿고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며 “설사 피고인의 말이 거짓일지라도 속는 것조차 변호사의 의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선전담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난관에 부딪힐 때도 많지만 힘든 점보다 보람이 더 크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책임주의가 형사재판에서 관철될 때 보람을 크게 느낀다”며 웃어보였다.

 

5년간 1400건 소송…끝내 안타까운 경우도
수많은 사건을 맡아 온 김 변호사에게 특별히 기억 남는 몇 사건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지난해 1월, 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키르기스스탄인 A씨 사건’이다. 외국인 피고인을 대상으로는 처음 열린 국민참여재판이다. 형사사건으로 입건된 외국인의 경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특히 불리하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전언이다. 자신이 진술한 내용 기록을 읽어보지 못할뿐더러 정확한 언어로 정황을 표현해 내지 못해 진실과 멀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


치열한 공방 끝에 결국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는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불충분 하다는 이유로 피고인에 무죄를 선고했다. 김 변호사는 “사건 진행 내내 안타까움이 컸던 만큼 고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고 소회했다.

반면, 끝내 아쉬운 채로 남은 사건도 있다. 이 사건 피고인은 우연히 길에서 주운 카드를 사용했다 강도상해죄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피고인의 주장대로라면 진범은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형사사건을 변호한다는 것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는 동시에 범죄자를 가려내 사회정의를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며 여전히 가시지 않은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국선전담변호사, 형사사건 전문성 경쟁력으로 
형사사건은 판,검사출신 변호사들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반 변호사들이 접하기 어렵다. 형사사건의 피고인 대부분은 수임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에 국선변호사를 통해 사건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변호사도 사건을 맡기 어렵다 보니 전문성 역시 다른 영역의 사건보다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선전담변호사제도가 시행된 후부터는 1년에 수백 건씩 형사재판을 진행하는 변호사군이 생기게 됐다. 김 변호사는 이를 “전통적인 분야를 새롭게 특화해 경쟁력을 갖춘 변호사들이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들이 국선전담 활동을 마치고 개업을 하면 ‘변호사 출신 형사전문 변호사’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국민 의사 반영 필요 사건, 국민참여재판 의무화해야
김 변호사는 ‘키르기스스탄인 A씨 사건’외에도 몇 차례 국민참여재판을 한 경험이 있다. 그는 재판을 진행하면서 참여재판제도의 의미 있는 효과를 느꼈다고 했다. 배심원들이 형사재판에 참여하면서 재판 과정에 관한 정보를 알게 된 다는 것이다. 그는 “배심제는 주민소환제와 같은 실질적 국민주권주의를 실현하는 제도”라며 “국민의 권익을 강화하는 측면에서도 참여재판이 더 많이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고인의 신청에 의해 재판이 열리게 되어있는 방식에 대해서는 “참여재판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며 비판했다. 피고인에 선택권을 줌으로 인해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할 중대 사안은 정작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뇌물죄, 환경범죄 등의 재판이다.


또한 김 변호사는 법원의 의지에 따라 피고인 선택권이 좌지우지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법원 사정에 따라 재판 신청을 기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용산참사 사건에서도 참여재판을 요구했지만 검찰이 증인을 40명 신청했다는 이유로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김 변호사는 “국민의 관심이 많은 사건, 국민의 의사를 받아들일 사건은 의무적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본분 잊지 않는 변호사 되라
김 변호사는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5년이라는 길지 않은 수험생활을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수험기간 동안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합격자 명단에 실린 자신의 이름을 보고 기쁘다는 생각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은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애초 3년을 기약하고 국선전담변호사 업무를 시작했지만 김 변호사가 이 일을 한 지 어느 덧 5년이 훌쩍 넘었다. 그는 “20년 동안 퍼블릭 디펜더(Public Defender) 활동을 해 온 미국 변호사를 보고 감화를 느낀 적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이러한 변호사가 나와 외국에 선례를 전해주면 좋겠다”며 앞으로의 포부를 넌지시 비췄다.


그는 끝으로 후배 법조인에 “스스로 변호사임을 잊지 않는 변호사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본분을 지키라는 말이다. 그는 “아무리 끔찍한 죄를 저질렀어도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변호사의 임무이므로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그들의 억울함 밝혀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윤정 기자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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