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헌법재판소 실무수습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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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헌법재판소 실무수습을 다녀와서
  • 법률저널
  • 승인 2010.02.2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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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호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

“다른 나라의 현실을 보려면, 가장 먼저 헌법을 공부하라”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의 환영사 중 일부이다. 본인이 해외에 유학을 갔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헌법에는 그 국가의 역사와 사회 구성원의 가치관이 담겨있고, 현재 정치의 작동원리 및 통치구조 등이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사회의 모습을 추측해 볼 수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도 헌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헌법의 최종적인 유권 해석 기관인 헌법재판소를 공부하는 것 역시 필요한 일임은 분명하다.

 

지난 2010년 1월 11일 부터 1월 22일 까지 2주간 헌법재판소에서는 법학전문대학원생을 상대로 실무수습을 진행하였다. 첫날은 환영식과 오리엔테이션이 있었고, 오후에는 헌법재판소 구석구석을 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헌법재판소 맨 위층에는 옥상공원이 있어 올라가 보니, 남쪽으로는 종로의 빌딩숲, 북쪽으로는 북악산과 북촌한옥마을, 경복궁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수도 서울의 가장 중심지에 위치했다는 점에서, 마치 현재 헌법재판소의 위치와 역할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그 후에는 헌법재판소 5층에 위치한 국내 최대의 공법도서관을 둘러보았고, 헌법재판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백송(白松)앞에 그리고 실제 변론과 결정이 이루어지는 대심판정에 섰을 때는 엄숙함과 경건한 느낌을 받았다.

 

첫 번째 주는 주로 강의 위주의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두 분의 헌법연구원이 각각 “독일공법학과 헌법재판”, “미국헌법개관” 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특히 미국 헌법 수업은 위헌법률심사의 출발이 된 1803년의 Mabury v. Madison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헌법재판의 정확한 유래와 의미에 대한 이해를 돕는 시간이었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대표적인 심판사항인 헌법소원의 적법요건과 규범통제론 그리고 헌법재판의 심사기준에 대해 세 분의 헌법연구관이 강의를 하였다.

 

헌법연구관의 수업을 들으면서 문득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 대통령 탄핵 사건이나 신행정수도 위헌 사건, 그리고 최근의 미디어법 사건 등등 나라의 중요한 관심사의 한가운데에는 헌법재판소가 있었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이 헌법재판과 헌법재판소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어쩌면 헌법재판이 개입하는 영역의 한가운데에는 단순히 당사자 간의 다툼이 아닌, 사회 가치관의 대립이나 정치적인 분쟁의 모습이 있기 때문은 아닐지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한 분의 헌법연구관은, 이런 정치적인 분쟁의 성격을 갖는 헌법재판이 보다 발전하고 활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리의 영역 뿐만 아니라, 정치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한다. 즉, 사회 공동체가 활발히 토론하고 의사교환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령 베트남을 예로 들면서, 베트남은 일당독재체제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의사를 형성하고 형성된 의사를 표출하는 힘이 약해, 헌법재판소가 있으나 우리만큼 발전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결국 우리 헌법재판소가 현재의 위치에 있기까지는 우리의 민주주의 정착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영역이 중요하다고 해서, 헌법재판의 본질이 정치재판이 될 수는 없다. 헌법재판의 본연의 임무는 헌법해석에 의한 법인식작용 및 분쟁해결, 즉 사법(司法)작용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헌법재판은 일반재판과 달리 강제집행력이 없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다른 국가기관이 이에 따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헌법재판은 법리가 정치(精緻)하고 논리적으로 타당해, 국민으로 하여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국민 만이 그 강제집행력을 지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헌법재판이 되기 위해서, 헌법연구관들은 헌법재판관의 평의와 결정에 기초가 되는 연구보고서 작성에 항상 매진한다고 한다. 출·퇴근 할 때며, 식사를 할 때나 자려고 누워있을 때 등등 언제나 그 논리를 생각하고 다듬으며, 또한 여러 명의 헌법연구관 사이에 하나의 연구보고서 주제를 가지고 선후배를 떠나 활발히 토론한다고 들었다. 나 자신도 실무수습 기간 동안 과제로 주어진 연구보고서를 작성해보면서, 지하철에서, 집에서, 그리고 쉬는 시간에 끊임없는 논리구성을 해보면서, 헌법재판이 얼마나 법리적으로 정교하고 치밀함을 요구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1주차 마지막 날에는 변론 방청물을 시청하였다. 우리 수습기간 동안에는 변론이 진행될 기회가 없어 녹화 방청물로 대체하게 되었다. 사건은 언론에도 많이 보도된, “군대내 반입금지서적 지정사건”이었다. 반입금지서적을 지정한 것과 관련해 군법무관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다가 파면당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가져온 사건인데, 3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헌법재판관의 날카로운 질문과 청구인-피청구인 사이에 구두변론이 오고갔다. 헌법재판 실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2주차에는 헌법연구관이 사건의 연구보고서를 작성하는 것과 동일하게 이루어진 과제작성과 그 발표 및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과제 주제는 현재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 된 위헌법률심판(‘헌가’ 사건)으로서, 아직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사건이었다. 이 점은 실무수습생으로 하여금 정답이 없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보라는 취지로 보였다. 다만 실무수습생 대부분 주어진 시간이 3~4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시간이 넉넉하지 못하여 어려움이 있었지만, 과제 발표 및 토론시간에 보니 58명의 실무수습생 모두가 주말을 반납하거나 밤을 새가면서 열심히 준비한 모습이었다.


과제는 ‘가·나·다’ 3가지 주제로 나뉘어, 각자 주제를 선정한 다음, 담당 헌법연구관이 주제 개관과 함께 연구보고서 작성방법에 대해 강의를 하였다. 각 주제별로 과제 작성방법도 달랐는데, ‘가’ 주제는 조별로 토론하여 연구보고서를 작성해보는 방법, ‘나’ 주제는 각자가 적법요건 및 본안사안에 대해 연구보고서를 작성하는 방법, ‘다’ 주제는 연구보고서를 전부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사건에 대한 부분주제별로 조사하여 연구보고서를 작성과 함께 사건을 개관하는 자신의 생각을 담은 Essay를 쓰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다’ 주제를 선택한 나로서는 Essay가 좀 생소하기도 하고 시간이 부족하여 연구보고서 보다 공을 들여 작성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강평시간에 담당 헌법연구관은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그 전에 주제에 대한 자기 마음속의 진정한 느낌을 생각해보고 전반적인 이해를 담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Essay를 작성하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좀 더 균형 있고 논리적인 연구보고서가 될 것이라고 조언하였다. 단순히 문제해결에만 집착하고, 그 사안에 대해 진심으로 심도 있게 생각해보려는 태도가 부족했던 내 모습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었다. 

 

실무수습기간 동안 헌법연구관과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식사를 같이 하게 되거나, 공식적인 회식 등을 통해 사적으로도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그 중에서 몇 가지 기억나는 말씀이 있었는데, 헌법재판의 소수자 보호와 관련된 것이었다. 헌법재판을 할 때는 어떠한 사안의 결정을 내릴 순간이 있다. 그런데 그 결정에 대해 광화문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을 때, 모두 ‘그렇다’라고 대답하더라도, 헌법의 기준으로 판단하여 헌법에 위반된다는 의심이 있다면 그것을 심판하는 입장에서는 ‘아니다’라고 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한 개인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개개인 한명 한명은 소중한 존재이고 헌법과 국가는 이러한 개개인의 인간존엄과 개성발현의 보장을 위해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의 진정한 의미는 다수의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차별받거나 억압받는 소수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로지 헌법의 심사기준에 비추어 국가 공권력이 위헌이라는 판단이 설 경우, 공익을 위한다는 다수의 의사를 거부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소수를 보호하기 위한 본래의 헌법재판이 될 수 있지는 아닐지 헌법연구관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한번 성찰해 보는 시간이었다.

 

실무수습 마지막 날에는 목영준 헌법재판관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재판관이 법조인으로 살아온 과거 경험담을 듣는 자리였는데, 이와 함께 재판관은 로스쿨 학생으로서의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하였다. 과거에는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 수료가 법조인의 완성을 의미했으나, 로스쿨 시대에는 변호사가 되는 것이 법조인으로 나아가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현재와 그리고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법학 분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고 충고하셨다. 희망은 가지되,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법조인이 되기를 주문하셨다.

 

수료식은 특이하게 ‘스티븐 잡스’의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시작했다. ‘스티븐 잡스’의 인생 3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중에서 다음의 일화가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완치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췌장암 진단을 받고, 3~6개월 정도 살 것이라던 ‘스티븐 잡스’, 그러나 정밀한 검사를 하던 도중 수술로 완치가 가능한 아주 특이한 체질의 암세포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검사하던 의사들이 기뻐 울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동영상이 끝난 후 사무처장은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실무수습생들도 의뢰인을 진정으로 위하여 함께 기뻐하고, 진심으로 같이 아파하며 울어줄 수 있는 따뜻한 변호사가 될 것을 법조선배로서 기원하였다. 사무처장의 말씀이 가슴 속의 큰 감동으로 밀려오면서, 헌법재판소 2010년 법학전문대학원 1기 실무수습 58명은 더없이 유익했던 실무수습기간을 마쳤다.

 

비록 2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성심성의껏 실무수습을 준비하여 헌법재판과 헌법재판소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게 애써주신, 헌법재판소 관계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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