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영 교수의 법률시론] 혼인빙자간음죄 위헌결정과 소급효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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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교수의 법률시론] 혼인빙자간음죄 위헌결정과 소급효 문제
  • 법률저널
  • 승인 2009.12.1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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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혼인빙자간음죄가 역사의 장으로 사라졌다. 형법 제정이후 56년(1953-2009)만에 일이다. 독일은 1969년 입법부가 나서‘혼인빙자간음죄’를 폐지했고, 우리는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으로 그 효력에 종지부를 찍었다.

 

형법 제304조 혼인빙자간음죄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하는 죄로서 친고죄이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형법학자들은 혼인빙자간음죄를 과도한 국친주의 사상과 봉건적 입법의 잔재라고 비판해 왔다.

 

제1차 논쟁은 2002년 10월 31일에 있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다. “남성이 오로지 여성의 성만을 한낱 쾌락의 성으로만 여기고 계획적으로 접근한 뒤, 가장된 결혼의 무기를 사용하여 성을 편취할 경우, 이는 이미 사생활 영역의 자유로운 성적결정의 문제가 아니고,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며,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명백하게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판시하였다.

 

제2차 논쟁 2009년 11월 26일 위헌결정이다. 혼인빙자간음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임모씨가 “혼인빙자간음죄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며 2008년 6월 19일에 낸 헌법소원(2008헌바58)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임모씨는 2006년 2~4월 혼인을 빙자해 피해자 A씨와 4회 간음한 혐의로 2008년 12월 징역 2년 6월의 형이 확정됐고, 헌법소원을 냈었다.

 

한편 양모씨도 혼인빙자간음죄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상소심 재판 계속 중에 1심 재판에서 위헌심판제청을 하였다가 기각당하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2009헌바191). 9월 10일 공개변론에서 법무부는 합헌의견을, 여성부는 위헌의견을 제시했다. 그 만큼 논쟁이 뜨거웠다.

 

통계를 보면 전국에서 2004년 193건, 2005년 149건, 2006년 150건, 2007년 134건, 2008년 128건이 고소되었고, 그중 공소가 제기된 사건은 2004년 27건, 2005년 27건, 2006년 41건, 2007년 33건, 2008년 25건이었다. 대부분  '혐의없음' '공소권없음'으로 불기소처분되었다. 확정판결은 매년 약 10명 정도로 대부분 사기죄와 경합된 사건들이다.
 
이번 청구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6 대 3의 의견으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남녀평등,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 국가의 과도한 간섭과 규제, 여성의 착오에 의한 혼전 성관계에 대한 형법 보호 필요성 미미, 과잉금지의 원칙”이 결정이유가 되었다. 결정문에서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을 1953년 형법과 1995년 개정 형법 제304조로 명시했다.

 

문제는 헌법재판소법 제47조의 해석에 있다. 제2항을 보면, “위헌으로 결정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은 그 결정이 있는 날로부터 효력을 상실한다. 다만 형벌에 관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은 소급하여 그 효력을 상실한다.” 제3항은 “위 법률과 그 조항에 근거하여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을 문언에 따라 해석하면, 56년 동안 선고된 확정판결에 대해서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하고, 또 소송 계속 중인 사건은 재판부에서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 형사보상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혼인빙자간음죄는 태생적 무효의 법률이 아니라, 사회적 변천에 따라 위헌결정이 난 법률이다. 이러한 법률까지 모두 소급효를 인정한다면, 법적 안정성 침해, 법원과 검찰의 업무량 폭주, 그리고 소송당사자들의 갈등은 증폭될 것이다. 사형제도 위헌결정과 향후 간통죄 위헌결정을 상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헌법재판소의 이번 단순 위헌결정을 ‘용감한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법률존폐의 문제는 입법부의 몫이다. 국회는 법률을 명확하게 만들고, 사회변천에 따라 신속하게 폐지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 경우 형법 제1조 제3항(형집행면제)과 형사소송법 제326 제4호(면소판결)로 해결하면 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태생적 위헌법률을 중심으로 제정된 헌법재판소법 제47조는 전면 개정해야 한다. 양벌규정 위헌제청사건과 의료법 위헌제청사건의 결정을 보면 그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삼권분립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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