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고시 최고령 합격기-“중도 포기란 없다. 끝까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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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고시 최고령 합격기-“중도 포기란 없다. 끝까지 해보자”
  • 법률저널
  • 승인 2007.04.1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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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입법고시 최고령 합격 김형진 합격수기

I. 들어가며 
최고령으로 합격한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저의 합격수기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어떠한 도움이 될지 걱정부터 앞서네요. 무슨 내용을 적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해봤지만, 이런저런 꾸밈이 없이 저의 수험생활 그대로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오해 없이 제 뜻을 전달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이 글을 씁니다.

 

입법고시 법제직렬에 합격한 특성상 수험생활 자체가 사법고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대부분이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것이 주를 이룹니다.


우선 고시 입문시기에서 고시를 선택한 이유, 법과의 만남의 이야기이고, 1차 시험기는 가장 길고 고통스러웠던 3번의 사법시험에 대한 도전 실패에 대한 이야기, 2차 시험기는 4번째 1차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년간의 2차공부에 대한 이야기, 입법고시기는 가장 짧지만 큰 기쁨을 준 3개월간의 이야기입니다.


“한 고시생이 5년간 이렇게 고시 생활을 해서 합격했구나, 참 운 좋은 놈이야”라고 편안하고 부담 없이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II. 고시 입문기 : 2002. 3. ~ 2003. 2.

처음 고시를 생각하게 된 것은 군 전역(정확히는 소집해제)을 얼마 남지 않아서였다. 1999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에 군 생활을 했고, 대학 성적이 좋지 않았던 관계로 달리 취업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마침 고등학교 친구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부산지방법원에서 근무를 했던 터라 법원에서의 공직생활에 대한 동경과 업무접근성이 있었기 때문에 사법시험을 선택했고 소집해제 후인 3월에 바로 신림동에 들어왔다.

 

신림동에 첫 발을 들여놓고서는 많이 당황했다. 대학동안 법을 공부한 것이 “법학통론”이라는 교양과목과 4학년 때 어차피 가망 없는 학점, 막나가는 심정으로 법대 헌법을 수강한 것이 전부였다. 수험으로서 법을 공부한다는 자체가 흥분되고 두려운 일이었다.

 

주위의 도움을 받아 학원 강의를 중심으로 공부하기로 계획하고 모든 법학의 기본인 민법을 먼저 들었다. 본래 책 읽는 속도가 느린 편도 있었지만, 법률 용어 자체가 낯설어 한 시간에 5페이지도 읽기 어려웠다. 하루 종일 공부하면 기껏 50페이지 나갈까 말까했다. 그리고 무슨 추-로 시작하는 말이 많은지 추인, 추완, 추정력, 추심 어이없게도 추록까지...... 당시에는 이정도로 법을 알지 못하여 법률 용어사전을 마련하여 초기에는 도움을 많이 받았다. 민법기본강의를 듣고 여전히 법에 대한 문외한이라 다시 민법 집중강의를 들었다. 약 4개월에 걸쳐 민법만 듣다보니 약간은 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민법강의 막판에 월드컵이 열리게 되었고, 신촌이다, 광화문이다, 녹두거리다 쫓아다니고 그 여흥을 즐기다가 어느새 1차 시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 논다는 생각과 헌법과 형법에 대한 걱정에 두 과목을 동시에 수강하여 오후에는 헌법, 저녁에는 형법을 들었다. 수험생활에 있어서 첫 번째 실수로서, 결과적으로 보기 좋게 두 과목 모두 실패하게 되었다. 하지만 1차 시험에 대한 첫 경험이었고 착실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한 민법만은 합격권에 근접한 점수를 받아 스스로 만족한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III. 1차 시험기 : 2003. 3. ~ 2006. 1.
1차 결과를 받아 들고 겸허하게 공부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서부터 시작하여 저의 생활태도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을 해야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다시 두 번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2차 7법을 모두 수강한 것이다. 당시에는 법대출신도 아니어서 법을 모르기 때문에 법과 친숙해져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한 행동이었지만 결과론적으로 저의 수험기간을 1년 연장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헌법소송과 행정소송을 구별하지 못하면서 행정법을 듣고, 민법 체계도 잡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 민사소송법을 들으며, 무슨 범죄가 성립하는지도 모르면서 형사소송법을 들은 꼴이 되어 버렸다. 후사법 강의를 들으면서 다시 기본 3법의 내용을 배우는 완전히 주객이 전도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그 당시 열의 만은 있어서 잘 모르지만 7법의 기본서(상법 정찬형 교수님의 기본서까지)를 모두 통독하였고 끝나자마자 다시 1차 시험대비 진도별 모의고사를 수강하게 되었다.


진도별 모의고사의 경우 시간 안에 문제를 다 풀어야한다는 것과 이내 나오는 성적 때문에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헌법과 형법은 실력도 부족하고, 너무 세세하게 나와서 점수가 거의 50~60 점대를 유지하였고 민법은 그래도 자신이 있었던 과목이었는지 강사 장학금까지 받았다. 하지만 모의고사를 위주로만 공부를 하여 자기 공부를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고 다시 1차 시험에 실패하였다. 더군다나 민법의 점수가 가장 나쁘게 나와서 나름 충격적이었다.

 

2번의 1차 시험 실패 뒤에는 고민이 많아졌다. 나이도 이제 30살이 되었고, 시험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어진 상태였다.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을 하면서 3· 4월을 그냥 보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에 기본서를 잡았다. 학원 강의에 따라가지 말고 내 나름의 계획과 방식으로 공부를 하자는 생각에 기본서를 중심으로 시중에 있는 교수님 문제집과 대학모의고사 문제집을 참고 하였다. 3번 째 시험 결과 역시 실패였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3문제 차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저보다 더 아까운 분들도 계시고, 무엇보다도 드디어 제가 합격권에 들었다는 생각과 나름의 공부방법이 만들어져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실망을 뒤로 하게 했다.

 

3번의 실패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나만의 공부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원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학원 강의가 무조건 좋다는 말이 아니라 경쟁관계에 있는 수험생들의 모두 학원 모의고사문제를 접하고 시험장에 들어가는데 나만 모의고사문제를 도외시한다면 서로 출발점이 다르게 된다. 그래서 모의고사 강의가 마치는 대로 출간되는 문제집 모음을 선택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다 풀고 다시 나만의 공부시간에 집중했다.


4번째 시험에서는 헌법과 경제법 시간을 잘못 계산하여 70분에 푸는 큰 실수를 하였음에도 전 과목이 커트라인을 상회하는 점수로 1차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이때 입법고시 1차도 같이 봤는데 사법고시와 1개월 이상의 기간 차이가 있어 부담도 없었고, PSAT보다는 헌법실력을 시험한다는 차원에서 응시하여 만족할만한 점수를 얻어 사법시험에 더욱 자신감을 갖고 임할 수 있었다. PSAT는 겨우 면과락을 면하는 수준에서 합격권과는 평균 6점 정도 차이가 났었다.

 

Ⅳ. 2차 시험기 : 2006. 3. ~ 2007 현재

이제 나도 사법고시 2차생이구나 무척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지 못하면 다시 신림동 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불안감이 시일이 갈수록 엄습해왔다. 예비순환을 한 학원에 패키지로 하여 들었는데 후에 1순환 때의 강의를 돌이켜 보면 강사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 새삼 절감했다. 물론 확정적인 1차 합격자 명단이 뜬 시기도 아니어서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때이기도 하였지만, 예비순환에서 초시 때까지의 공부가 그 다음 해 재시 때까지의 공부에 튼튼한 초석이 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기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2차 준비생 분들도 최대한 주위의 정보를 많이 얻어 자신의 공부방법과 자신이 좋아하는 강의스타일 등을 모두 조합한 현명한 선택을 하시길 바랍니다. 저의 경우는 저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제 성향에 맞는 강사(1순환 이후 대체로 대세에 따랐습니다)를 선택했고, 학원관계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수 있으므로 더 이상의 말을 아끼겠습니다.

 

초시 때는 실력자들이 주위에서 시험을 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저를 위축되게 만들었고, 더군다나 타 학교에서 시험을 친 터라 학교 분위기도 맞지 않아 고전했다. 물론 내공도 없었다. 이틀 째 시험 치던 날 점심을 먹고 나서 시험장 내에 앉아 있다는 자체가 너무 고역이었고, 다시 2시간 시험을 법전만 구경하며 칠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뛰쳐나와 버렸다. 나중에 시험이 모두 끝난 후 주위 합격한 친구들과 2차 경험이 있는 수험생들의 말을 들어보면 참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2차 경험이 2번 밖에 없고, 합격 여부를 떠나 4일 간의 시험 경험은 후일의 시험을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시간임에도 순간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날려버리는 것은 안 된다.

 

초시가 끝난 후로는 1순환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입법고등고시 최종발표 이전까지 학원강의를 들었다. 2순환 때부터는 GS와 SW 또는 AP와 강의 등으로 나뉘어 지는데 보다 많은 모의고사를 통해서 실력을 쌓고 싶은 분들은 모의고사 반을 선택하고, 기본내용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들은 강의와 병행하는 모의고사 강의를 선택하면 된다. 저의 경우 기본실력이 미천하기는 하지만 강의보다는 저의 공부시간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모의고사반을 계속해서 들었다. 강의는 예비순환과 1순환의 강의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Ⅴ. 입법고시기 : 2007. 1. ~ 2007 현재

위의 내용이 너무 사법시험에 치우친 것이 아닌가라고 타박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저의 경우 법제직렬이고 대부분의 경우가 사법시험과 병행하여 시험을 치는 분들이기 때문에 사법시험 준비의 경험이 모두 입법고시에 녹아 있다고 보면 된다.

 

여담이지만 어제 국회에 임용신청을 하러 갔는데 법제직 최종합격자 5인 중에서 저를 포함한 세분이 올해 사법고시 재시생이었고, 한분은 작년에 아깝게 떨어져서 올해 삼시째 볼 분이었다.

 

입법고시를 응시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1차 PSAT에 대한 부담이 한국사 등이 있던 과거에 비해서 많이 완화되었다는 사실과 2차를 공부하는 기회를 최대한 살려야 되겠다는 생각, 그리고 제 전공과목이 법학이 아닌지라 나중에 법조계에서 일하게 될 경우의 어려움 등을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공직으로 진출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PSAT 준비는 거의 없었다. 2차 2순환 강의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라서 짬을 내어 PSAT를 공부한다는 자체가 사치였다. PSAT 강사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나마 1년 동안 차곡차곡 모아놓았던 신문에 기재된 PSAT 문제들도 두 어장 풀다가 2차 공부에 방해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법고시 1차 1주일 전에 모두 버렸다. 22회차에 PSAT를 친 경험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것만으로 PSAT을 준비했다고 하기에는 부족하고, 운이 좋아 제 23회 1차 시험에 합격한 것 같다. 다만 나름 판단으로는 PSAT 시험 자체가 지식을 요하는 시험은 아니기 때문에 집중하여 문제를 풀면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특히 귀마개를 시험장에서 처음 사용해 봤는데 제자리가 온풍기 바로 앞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집중해서 문제를 볼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잠시 잊고 있었던 입법고시 1차 결과가 발표되고 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는 무슨 행정착오가 발생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어 몇 번이고 국회사무처와 법률신문관련 사이트를 들락날락 거리며 확인을 했다. 사실 입법고시 1차를 친 날 바로 시험지를 버렸기 때문에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다행이다 싶어 2차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계획을 세웠는데 2차 기간이 20여일 밖에 되지 않아 순간 포기할 까라는 생각까지 하였다. 하지만 어차피 수험생간 주어진 조건이 동일한 상태에서 시험을 치르는 것이고 사시 초시 때 시험을 중도에 그만둔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끝까지 해보자는 각오로 열심히 준비했다. 기간의 제약 상 기본서를 모두 읽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 당시 2순환 기본 삼법 강의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부족한 행정법과 상법을 중심으로 공부했다. 그리고 입법고시의 특성상 사례보다는 단문위주로 공부하여 하나의 단문 내에서 문제되는 논점을 두 개 이상 부각시킬 수 있도록 준비했다. 사례는 그동안 2차를 준비하면서 모아둔 모의고사 자료를 중심으로 시간 제약상 글을 써보기 보다는 반복해서 보려고 하였다.

 

첫째 날 시험장에서 나누어 주던 법전과 답안지를 받아 들고는 흠칫 놀랐다. 행정고시 답안지를 친구 것을 빌려 보았는데 10페이지였는데 입법고시 답안지가 12페이지였다(참고로 사법고시는 줄 수는 다르지만 8페이지이다). 다 채울 수 있을까라는 걱정으로 문제를 보고 법전을 펼쳐 들었는데 사시용 법전이 아니었다. 아차 싶어 당황했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끝까지 한번 부딪쳐 보자는 생각에 시험에 임했다.


민법과 행정법을 첫 날에 보는데 모두 무난하게 나와서 그렇게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특히 행정법의 경우 아직 공부가 잘 되어 있지 않은 과목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출제가 될 것이라는 문제가 사례 50점으로 나와 부담 없이 쓸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동일한 사례문제를 2순환에서 다루었고 25점 단문 문제도 하나 준비해 갔던 것이 나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을 마치고 운동을 갔다가 다음다음날 치를 상법이 걱정되어서 새벽 1시정도까지 상법만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잠은 1시에 들어도 못자는 것은 다들 아시죠!!)

 

둘째 날에는 오전에 시험이 없어 9시 정도까지 자고 그날 치를 형법을 두어 시간 정도 보고 시험장에 갔다. 다행히 형법도 모의고사에서 눈에 익었던 문제들이 나와 단문 문제 하나를 제외하고는 큰 부담 없이 무난하게 치렀다.


집으로 오면서 생각해보니 합격에 대한 기대를 저도 모르게 가지게 되었고, 스스로 방심하면 안 된다는 생각과 내일만 잘 보면 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운동을 가서 러닝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집에 와 부족하다고 생각한 상법만 잠이 들 때까지 계속해서 공부했다.

 

셋째 날 헌법과 상법을 봐야하는데 헌법을 본지 너무 오래되어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5년 동안 본 과목이지 않느냐 라며 스스로를 달래서 시험 직전 대충 보고 시험에 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나와 있어 당황했다. 정신을 다시 가다듬고 보니 50점 문제가 조문을 나열하는 문제인 것 같아 열심히 법전을 뒤적이며 겨우 시험을 마쳤다. 헌법을 마친 점심시간에 시험을 망쳤다는 생각에 너무 걱정이 되어 상법 공부를 하기가 어려웠다. 글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그냥 기본서만 넘기다가 이미 시험시간이 다 되어 버렸다. 상법 역시 헌법과 마찬가지로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50점 짜리로 출제 되어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이제껏 공부한 것과 시험을 친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답안지를 무조건 다 채우자고 마음먹고 법전 여기저기를 뒤져가며 답안지를 채워 나갔는데 다 쓰고 나니 5분이나 남았다.

 

입법고시 2차를 발표하기 전까지 한 달 여 기간 동안 과연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라는 걱정에 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공부하는 도중에 시험에 출제된 문제가 나오면 잘 적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때문에 책을 보기가 두려웠다. 3순환 학원 강의도 수강하지 않은 채 모의고사 문제만 잠깐잠깐 보는 정도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입법고시에 실패하면 사법시험도 끝이구나 라는 불안감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2차에 합격하였고 3차 면접시험에도 합격하여 지금 이글을 쓰고 있다.


3차 면접에 대해서는 재경직렬이나 일반행정직렬에 응시한 분들에 비해 법제직의 경우 면접준비에 소홀한다. 시사문제에 대한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집단면접주제도 법과 관련된 것이 나오므로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면접내용보다는 사람의 인상이나 2차 성적이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기타 공부방법이나 공부장소, 식사장소, 필기구 등의 소소한 수험생활은 다른 분들이 이미 수기에서 밝히셨거나 다들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부가해서 할 말은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어디에서 공부하든, 무엇을 쓰든, 무엇을 먹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을 믿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수험생활을 하면 될 것 같다.

 

Ⅵ. 마치며

이제까지 두서없는 제 이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고령이라는 일면 부끄러운 타이틀을 가지기는 했지만, 여기서 자만하지 않고 조용조용히 제 삶의 목표를 향해 조금씩 전진하고 싶습니다. 계속해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운이 닿아 입법고시에 합격하여 국회의 문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고 사명감을 갖고 업무에 임할 생각입니다.


끝으로 못난 아들을 믿고 심적 ·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신 부모님과 곁에서 늘 함께 있어준 성깔 있는 여자친구, 힘들고 고통스러운 수험생활을 즐겁게 보내도록 해준 형들(C독서실 동네형아, 거성 형, 호랑이 보험 형들 등등)과 친구들(랑돼와 홍단 형제, 늙은 당동, 포정 등등), 그리고 이 글에 표현하지 못한 저를 성원해준 모든 분들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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