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저널=이성진 기자] “실패의 아픔과 함께 나는 아직 포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강제적으로 멈춰야 된다는 상황에 더욱 극심한 자괴감과 박탈감이 나의 정신과 삶까지 흔들었습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습니다.” 변호사시험 오탈자(五脫者)가 된 A씨가 사랑샘재단(이사장 오윤덕)이 마련한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에 쓴 심정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영구적 응시 금지’란 현행법상 그렇다는 것이다. 변호사시험법 제7조 1항은 ‘법학전문대학원의 석사학위를 취득한 달의 말일부터 5년 내에 5회만 응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정 해석상 개인의 특별한 사정, 즉 시험 직전이나 중간에 팔이 부러지든, 배탈이 나든, 부모님이 돌아가시든, 지진이 나든, 전쟁이 일어나든, 5년 내 5회 응시에는 예외가 없다. 단지,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경우에만 그 이행기간을 예외로 인정해 줄 뿐이다.
취재 결과, 지난해 제12회 변호사시험까지 오탈자는 1,543명으로 확인됐다. 응시자 중 연평균 193명, 로스쿨 입학생 중 평균 9.2%가 영구응시금지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각종 청원, 민원, 소송이 불거지고 급기야 헌법재판소 판단까지 갔지만 ‘학습효과’ ‘제도안정’ 등의 이유로 헌법에 부합한다고 선언했다. 한술 더 떠 다시 로스쿨 들어가 졸업한다 해도 오탈은 유효하다고 못을 박았다.
이러한 제도를 둔 이유는 무엇일까? 사법시험의 문제점 하나였던 ‘고시낭인’의 부활을 애초부터 막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과거 사법시험에서도 4년 응시제한이 큰 논란 속에서 법시행 전에 폐기됐다는 점에서, 사법시험의 폐단을 등에 업고 로스쿨 제도가 새롭게 도입되는 과정에서 ‘고시낭인 방지’라는 하나의 대의명분을 억지로 꿰맞춘 결과물이라고 기자는 고집하고 싶다. 대의명분의 덫에 걸린 미완의 ‘변호사시험법’이 되고 나니, 부작용이 속출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라고 해야 할까.
휴식과 안정은 취해야 하는 암 환자, 출산을 앞두거나 출산 중인 임산부, 사경을 헤매는 자녀를 둔 경우 등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도 오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수년 전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법무부가 시험 직전 ‘확진자 응시 불가’ 방침을 내놓자, 일부 수험생들이 가처분 신청을 냈고 헌법재판소는 이를 받아들이는 촌극도 있었다. 당시 공무원시험, 자격시험 등에서는 응시금지가 가볍게 이뤄졌지만, 헌재는 ‘5년 내 5회’에 특히 주목했기 때문에 곧바로 가처분을 허용했던 셈이다.
소위 ‘빼도 박도 못하는’ 오탈규정에 대한 개선의 열기는 뜨겁지만 그리 녹록지 않다. 이해관계가 촘촘히 걸려있어서다. 그래서 기성 법조인, 로스쿨, 재학생 등의 셈법이 복잡하다. 또한 예외의 한계선 때문이기도 하다. 임신, 출산 외에도 불가항력적 중병에 대해 응시기간을 연장하는 법안이 계속 발의되지만, 진척이 없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8월 도종환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 역시 현재 국회 법사위에 머물러 있다. 국회 전문위원회 검토보고서는 중증 질병에 대해서는 치료방법, 치료시설, 개인회복력 등에 따른 치료기간, 임신·출산에 대해서는 유산·사산 등도 ‘출산’에 포함되는지, 다자녀 임신·출산자의 경우 연장될 수 있는 응시기간의 상한 여부 등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법무부도 이러한 점들을 고심하는 것으로 전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수험생 간 실질적 균등한 기회의 보장, 모성보호라는 헌법상의 의무 이행, 저출산 문제 해결 등을 고려할 때 개정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기에 현재 계류 중인 개정발의안들은 국회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될 게 뻔하다. 애초에 잘못 꿴 단추인데 고민한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다. 직업선택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 헌법이 부여한 인권론에 최대 접근해, 지금이라도 오탈제도를 폐지하면 될 일이다. 제·개정은 복잡하지만 제7조만 걷어내는 건 간단하다. 아울러, ‘고시낭인’은 국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