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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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초심
  • 최용성
  • 승인 2021.04.0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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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최용성</strong> 변호사·법무법인 공유<br>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사람은 자기가 처한 위치와 다른 사람들과 맺은 관계망에 따라 세상을 보고 이해한다. 만원 버스에 시달리는 사람과 고급 승용차를 가진 사람, 건물 임대인과 임차인, 고용주와 피용인,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서로가 마주하는 상황을 같은 관점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사람의 지위와 관계망은 극적으로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 변화가 생기면 대다수 사람의 관점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선거에 출마해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사회적 약자의 편이기를 자처하던 사람들, 특히 초선에 도전하던 사람들이 막상 그 지위를 얻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곤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사기꾼이거나 악해서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으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적어도 최소한 잘 해보겠다는 초심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지는 순간 전에는 몰랐던 새 세상이 펼쳐진다. 기득권에 편입되면서 갑자기 많은 사람이 자신을 떠받드는 것 같고 여러 가지 특혜도 누리니 온 세상의 주인이 된 것만 같이 느낄 것이다.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하였다면 ‘감히’ 만나지도 못했을 사람들과 새로이 관계망을 형성하고, 이들 관계망을 통하여 나오는 ‘고급’ 정보들은 나의 초심이 편협하고 어리숙하였다고 몰아세운다. 다음 선거를 위하여 사회의 약자들을 만나고 대화하기는 하지만, 이미 접한 ‘고급’ 정보들이 흘려들으라고 ‘지도’해준다. 정치의 대의명분을 제공했던 보통 시민들과의 만남은 어느 순간부터 선거공학을 위한 행사로 전락하고 만다. 이것을 뛰어넘어 초심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법률가도 다르지 않다. 법률가가 된 동기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정의를 실현하는 데 보탬이 되리라는 마음 한 자락은 다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법률가가 되면 새롭게 재편된 관계망에 소외된 이웃이 몇 명이나 존재할까? 변호사가 만나는 의뢰인은 보수를 지급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 상대적으로 약자도 있겠지만, 공익 전담변호사가 아닌 한, 대체로 소외된 이웃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관이나 검사, 대학교수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법률가가 된 직후부터 자주 만나는 인간관계가 달라지고, 취득하는 정보도 달라진다. 그것도 한 방향으로 말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법률가들이 생각하는 약자나 공정의 개념이 알게 모르게 왜곡될 수도 있다. 좀 거칠게 예를 들자면, 어느 법률가가 혼인하여 그 관계망 속에 대기업 임원, 고위 공무원, 고소득 전문직, 고가 부동산 소유자 등과 같은 사람들이 자리 잡게 되면, 법률가의 위치와 관계망은 재편되고, 특정한 그룹의 욕망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명제가 그 법률가의 생각 속에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이 정의, 공정, 인권을 바라보는 그 법률가의 시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기득권 또는 경제적 강자들을 위한 법 해석과 법 적용으로 나타나게 되면, 결국 소외된 이웃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초심은 어디론가 증발하고 만다. 물론 이것은 엄격한 논증이 아니라 소박한 단순화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위치와 관계망을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도 사실이다. 지식사회학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인간은 자신이 이러한 관계망 속에서 형성한 편파적인 관점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법률가들은 그것을 정의나 자유, 공평 등의 이름으로 포장하려고 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법률가들은, 자신의 의식/무의식 형성 뒤에 있는 사회적 조건들을 비판적으로 음미하고 이런 것들이 자신이 법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에,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는 것의 결정 과정에 편향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되새겨보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소박하고 보잘 것 없던 시절의 초심이야말로 법률가가 자신을 돌아보고 비판하는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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