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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국제정세와 한국이 나아갈 길(7)-국제법상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신희석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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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2  13: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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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석 박사
전환기정의워킹그룹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1938년 영국의 에벌린 워(Eveyln Waugh)가 쓴 풍자소설 ‘스쿠프’에서 신문사의 솔터 국제부장은 사주가 맞는 말을 하면 “물론이죠(Definitely)”, 틀린 말을 하면 “어느 정도는요(Up to a point)”라 답한다. “홍콩이 우리 땅이지?”라 물으면 “물론이죠”(1997년 중국 반환), “일본의 수도가 요코하마지?”라 물으면 “어느 정도는요”라 하는 식이다.

오늘날 “한국전쟁은 끝났나?”라 물어본다면 솔터 부장의 답은 “물론이죠”일까, “어느 정도는요”일까? “한국전쟁이 끝났으면 평화조약은 필요 없나?”라 후속 질문을 한다면?

전쟁과 무력사용 연구의 권위자인 딘스타인(Dinstein) 교수에 따르면 국제법상 전쟁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선전포고나 최후통첩에 따라 기술적 의미(technical sense)에서 전쟁상태(state of war)가 공식적으로 지속되는 경우이다. 또 하나는 실질적 의미(material sense)에서 교전국이 포괄적인(comprehensive) 무력을 사용하는 분쟁의 경우이다.

기술적 차원과 실질적 차원의 전쟁은 대체로 일치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1941년 진주만 공격 이후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의 요구로 일본에 형식적으로 선전을 포고했지만 실제 일본과 전투를 벌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정식 교전국이 되면 중립 의무에서 자유로운 동맹국 지원, 적국 국민 억류와 자산동결 등이 가능해진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중일전쟁은 1937년 발발했지만 중국은 1941년 진주만 공격 이후에야 미국, 영국과 함께 대일 선전포고를 했다. 정식 교전국이면 1930년대 미 의회가 제정했던 엄격한 중립법 때문에 미국의 무기금수 조치를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전포고가 없어도 이 정도의 전면전은 기술적 의미의 전쟁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

한편, 남녀 사이에 정을 끊는 것은 일방 통보로 가능하지만 정을 통하는 것은 쌍방 합의가 필요하듯이 국제관계에서 전쟁 개시는 일방의 선전포고나 포괄적 무력사용으로 가능하지만 평화관계 설정은 쌍방 합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한국전쟁의 경우, 실질적 의미의 전쟁은 1953년 끝났다고 할 수 있다. 1999년 제1연평해전, 2002년 제2연평해전, 2009년 대청해전, 2010년 천안함 피격 및 연평도 포격, 2015년 DMZ 목함지뢰 매설 및 서부전선 포격 등 북측 군사도발은 무력사용의 공간적 및 시간적 범위, 양적(작전규모와 화력동원) 및 질적(피해규모) 측면에서 포괄적이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의 도발행위는 ‘전쟁에 이르지 않는 무력사용’에 해당된다. 또한, 유엔헌장 제51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무력공격에 대한 정당방위/자위(légitime défense/self-defense)권의 행사로 보기 어려우므로 불법적 무력사용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기술적 의미에서는 어떨까?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선전포고 없이 전면전을 개시했지만 포괄적 무력사용으로 실질적 의미에서 전쟁은 시작되었다. 전쟁은 초반에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유엔군 참전, 미국 등과의 공식 전쟁을 피하기 위한 중국의 ‘인민지원군(人民志願軍)’ 파병으로 전선이 낙동강에서 압록강을 오갔다.

1951년 중반부터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져 참호전 양상으로 바뀌자 1951년 7월 10일 정전회담이 시작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조선인민군·중국인민지원군 사이에 합의로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렇다면 정전협정의 법적 효과는 적대행위를 일시적으로 멈추는 데 그치는 것일까? 과거 ‘정전(armistice)’은 그러한 제한된 의미로 사용되었다. 국제법의 대가 오펜하임 교수에 따르면 전쟁 종료를 위해서는 (1) 별도 조약 없는 교전국 사이의 평화관계 이행, (2) 정식 평화조약의 체결, (3) 적국의 예속(subjugation) 중 하나가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1907년 고종의 이준 특사가 참석을 거부당하고 병사한 헤이그 평화회담에서 채택된 육전규칙에서도 ‘정전’은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후 ‘정전’의 의미와 용례는 크게 바뀌었다. 제1차 세계대전 말 연합국은 1918년 11월 11일 독일과의 정전에서 라인강 서안의 독일군 철수와 연합군 점령 등을 관철시켜 적대행위 재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는 1943년 9월 연합국과의 정전에 이어 10월에 대독 선전포고를 했다. 1944년 루마니아, 1945년 헝가리와의 정전은 두 나라에 對연합국 전쟁 이탈과 대독 선전포고를 강제했다. 세 나라 모두 연합국과의 평화조약은 1947년에야 체결되었다. 정전은 적대행위의 유예(suspension)에서 정지(cessation)로 성격이 바뀐 것이다.

그래서 딘스타인 교수는 정전협정을 전쟁 종료의 한 방식으로 명시하며, 한국전쟁도 정전협정 前文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 규정, 제62항의 쌍방 합의나 정치 지도자들간 평화협정 부재시 정전협정 조항들의 유효성 규정을 근거로 종료되었다고 단언한다. 솔터 부장이 한국전쟁은 ‘물론’ 끝났다고 할만하다.

물론 전쟁이 종료되었어도 평화선언이나 평화조약은 ‘어느 정도’ 필요할 수 있다. 정계, 외교계뿐만 아니라 학계에도 여전히 평화조약을 통하여만 정식으로 전쟁상태가 종료된다는 견해가 있다. 또한, 딘스타인 교수도 지적하듯이 ‘무력’ 분쟁이 끝나도 정상적 평화관계가 수립될 때까지는 모든 분쟁이 끝났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전쟁이나 무력분쟁의 부재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평화관계 수립이라는 적극적 의미가 중요하다. 사실 관계정상화만 달성된다면 평화선언이나 평화조약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 북한은 이미 16개 유엔군 참전국 중 미국과 프랑스를 제외한 14개국과 조용히 수교했다.

반대로 경우에 따라서는 서독의 브란트 총리가 데탕트의 성과를 문서화하기 위하여 추진했던 1975년 헬싱키 안보협력협정, 베트남-캄보디아 전쟁을 끝낸 1991년 파리 평화협정처럼 국제적 합의가 평화보장에 효과적일 수 있다.

결국 관계 정상화를 가로막았던 근본 요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위급 정치회담을 권고한 정전협정 제60항에 따라 열린 1954년 제네바회담이 아무 성과 없이 끝난 것은 당시 최고조에 달했던 국제적 차원의 미소 냉전과 한반도 차원의 남북한 대립 때문이었다.

1990년대 초까지 공산권의 공중분해로 끝난 냉전대립이 평화관계 수립의 장애물이었다면 그 이후로는 NPT 탈퇴 선언에서 시작된 북핵 위기가 근본 문제다. 한국이 소련, 중국과 수교하고, 남북관계 개선에도 나섰지만 전세계 160여 개국과 수교한 북한이 북핵 위협에 노출된 한국, 미국, 일본과 갈등을 계속하며 관계정상화를 못하고 있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

실제 북한은 경제규모가 아프간, 네팔, 가봉만도 못 하지만 장거리 미사일까지 갖춘 핵보유국이 될 경우, 이스라엘이나 파키스탄과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된다. 미국의 불가침조약에 만족할 합리적 이유가 없으며,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평화까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각의 지적대로 한국은 그동안 쌓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핵물질·핵시설·핵무기·핵기술의 공개·신고·사찰·검증 이행을 통한 비핵평화로 북한을 유도해야 한다. 어차피 북한의 비핵화 없는 평화조약이나 제재조치 해제는 미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

그리고 북한 비핵화가 실현되면 한국전쟁의 주요 참전국인 미국, 중국뿐만 아니라 2002년 정상회담에서 청구권자금 100억불 제공에 거의 합의했던 일본, ‘북조선 국가’의 산모 내지 산파라 할 러시아까지 참여하는 동북아 평화회담에서 북한의 안보, 경제지원을 보장하는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국제법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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