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경력직 뽑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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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경력직 뽑나요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8.06.07 19:1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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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한동안 SNL이 기자의 관심을 끌었었다. 몇 시즌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개그맨도 연기자도 아니라 SNL의 작가 중 한 명이었던 유병재가 직접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며 활약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유병재의 다양한 활약상 중 특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것은 ‘취업전쟁’이라고까지 표현될 정도로 심각한 청년 취업난을 다룬 콩트였다. 수없이 많은 이력서를 쓰고 또 쓰지만 좀처럼 면접기회 조차 잡기도 힘든 현실. 간신히 서류심사를 통과해 면접을 보게 됐는데 면접관은 “우리는 경력직만 뽑는다”고 한다.

‘을’의 입장에 있는 보통의 취업준비생이라면 속에서는 천불이 나더라도 어떻게든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없는 경력도 쥐어짜고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려고 할 것이다. 현실이 아닌 콩트 속 인물인 유병재는 현실 속 취준생들이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내신 시원하게 날렸다.

“아니 무슨 다 경력직만 뽑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 어? 내말이 틀려? 이 XX들아!!!!!”라고 면접관들을 향해 일갈을 날리며 끌려 나가는 유병재는 ‘웃프다’라는 표현에 딱 맞는 모습을 보여줬다.

기자가 잊고 있던 이 콩트를 떠올린 것은 최근 업계와 수험생들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내년부터 변리사 2차시험의 특허법과 상표법에 명세서 작성 등 실무형 문제가 출제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다. 변리사 2차시험에 실무형 문제를 출제하는 개편안이 처음 수면 위에 올라온 것은 지난 2014년이었다. 특허청은 실무에 바로 투입이 가능한 실무역량을 갖춘 변리사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지만 공감을 얻지는 못했다.

당시 대한변리사회가 주최한 토론회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반대 입장을 보였다. 서울시립대 로스쿨 구대환 교수는 “실무자에게 유리한 이번 제도 개편은 특허청 행정직 직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라며 “만약 실무형 과목을 채택하려면 실무수습을 원하는 일반수험생이 실무수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특허청이 보장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험생 대표로 토론회에 참여한 한광현씨는 “이미 종합적 법률지식을 요구하는 실무형 문제가 출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뭘 어떻게 더 바꾸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실무역량을 강화하려면 실효성이 분명치 않고 수험생의 부담을 늘리는 실무형 문제 도입에 앞서 수습교육을 강화하는 등 시스템 개선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자격시험의 본질을 벗어났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광출 변리사는 “본질적으로 자격시험은 해당 분야의 업무처리를 위한 최소한의 자질검증이지 완성된 지재권 전문가를 뽑는 시험이 아니다”라며 “변리사시험은 특허는 물론 상표와 디자인보호 등 3대산업재산권의 문제해결능력을 검정할 수 있는 시험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규환 변리사는 20년간의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실무능력자를 시험을 통해 뽑는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당장 몇 달 쓰기에는 실무경험자가 좋지만 6개월도 못간다”며 “오히려 탄탄한 이론을 갖춘 사람이 현장에서 실무경험을 쌓으면 더 나은 변리사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여러 전문가들이 실효성이 없다고 하는데도 특허청은 꿋꿋이 실무형 문제 출제를 추진하고 있다. 필드에서 진짜 실무 역량을 쌓을 수 있는 실무수습 기간은 1년에서 4개월이나 줄여 8개월로 만들고는 말이다.

특허청의 주장대로 2차시험에서 실무형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실무형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사교육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단순히 공부해야 하는 분량이 느는 문제가 아니라 시간적·경제적 부담까지 늘어난다는 말이다. 이 시점에서 유병재의 대사를 조금 바꿔서 특허청 관계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실무를 경험할 기회가 없는 수험생들에게 실무형 문제를 풀라고 하면 대체 어디에서 배워 오라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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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청 2018-07-11 00:08:34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꼴

공무원 2018-06-09 23:56:55
공무원들 현장감 떨어지는 탁상행정이 나라망친다. 누가 저런 발상을 했을지 궁금하다.

따라빠 2018-06-08 10:32:04
명쾌한 비유네요, 전쟁을 해 본 사람만 군인이 되고, 국회의원이었던 사람만 선거에 나가고, 대통령 해본 사람만 대통령 후보가 되고, 물고기를 잡아본 사람만 어부가 되고, 농사를 지어본 사람만 농부가 되고,, 지금 뭐하는거죠? 변리사 시험이 변리사 될 수 없게 하는 시험인가요? 진입장벽을 치는 건가요? 도대체 지금 뭐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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