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경산(景山)이 담은 풍물- 백두산 등정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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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경산(景山)이 담은 풍물- 백두산 등정기(2)
  • 호문혁
  • 승인 2018.06.0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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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혁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前 사법정책연구원장
前 서울대 교수협의회 회장
제1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2012년 8월 27일. 백두산에서의 둘째 날로 본격적인 등산을 하는 날이다. 북파 쪽 버스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천지를 내려다보는 능선에 올라서서 서쪽 방향으로 걸어가 백운봉을 찍고 되돌아오는 산행이다. 본래 계획한 길은 백운봉에서 계속 전진해서 서파까지 가서 하산하는 길이었는데, 백운봉에서 서파 사이 등산로를 중국 당국이 폐쇄했다고 해서(- 이유는 그 길에서 누가 넘어졌다던가) 백운봉까지 왕복하는 길로 변경했다.

버스 주차장에서 멀리 쳐다보니 가운데가 오목 들어간 곳이 장백폭포라고 했다. 그 양쪽으로 가파른 경사가 보이는 것이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길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사진1). 올라가다 소천지라고도 불리는 은환호(銀環湖)를 둘러보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갔다. 길은 험하지 않았다. 간간이 비가 내려 비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면서 올라갔다. 어떤 곳은 등산이 아니라 광야를 걷는 것 같기도 한 것이 역시 큰 산은 다르다 싶었다(사진2). 별로 험하지 않은 길을 걸은 것 같았는데 해발 2600 미터가 넘는 산길이다 보니 산소 부족 때문인지 숨이 많이 차서 무척 힘들었다.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능선에 올라섰다. 일행 중 일부 여성분들이 더 이상 못 가겠다고 거기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나도 너무 힘들어서 거기서 주저앉을까 생각도 했는데, 언제 여기 또 오랴 싶어서 좀 쉬었다가 먼저 간 우리 일행을 뒤따라가기로 했다. 백운봉까지 갈 욕심은 버리고 백운봉에서 돌아오는 일행을 만나면 그냥 되돌아오기로 마음을 먹고.
 

▲ 사진 1
▲ 사진 2

능선에 올라 오르막 내리막 길을 걸으니 왼쪽으로는 천지가 온갖 모습으로 계속 눈에 들어왔다. 동쪽 북한 땅 아래 천지가 멋지게 펼쳐지고(사진3), 어떤 곳에서는 빼꼼이 조금만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사진4). 아무리 걸어도 되돌아오는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왜들 안 오는 거지? 어디까지 가야 하나?’ 생각하며 터덜터덜 걸어가다 보니 내 룸메이트인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님이 길가에 주저앉아 계셨다. 거기 앉아서 돌아오는 일행을 기다리겠다고. 계속 가다 보니 우리 일행은 마치 되돌아갈 생각이 없는 사람들인 양 백운봉 밑에서 사진 찍고, 웃고, 수다 떨고 있다가 허우적대며 걸어오는 나를 보고 박수를 쳐주었다. 덕분에 나도 백운봉에 다다를 수 있었고, 남파 쪽의 멋진 광경도 즐길 수 있었다(사진5).
 

▲ 사진 3
▲ 사진 4
▲ 사진 5

2012년 8월 28일. 본래 오늘 일정은 북파 천문봉 주차장까지 이른바 '찝차'를(– 사실은 봉고차 비슷한 승합차인데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타고 올라갔다가, 천지로 걸어 내려간 다음 장백폭포 쪽으로 계속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천지에서 폭포로 내려가는 길도 중국 당국이 폐쇄했다고(– 거기서도 누군가가 넘어졌다나) 해서 천지에서 다시 천문봉으로 올라오는 것으로 바꾸었다. 천문봉 주차장에서 천지까지는 고도 차이가 400m가 넘는다고 했다. 어제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았는데 그 가파른 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득했다. 일행 중에 천문봉에 남아 있겠다는 분들도 있어 나도 그럴까 하다가, 또다시 내가 이 때 아니면 언제 천지 물을 만져보겠나 싶어서 내려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 사진 6
▲ 사진 7

천문봉 아래에서 오른쪽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천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사진6). 왼쪽을 바라보니 최고봉인 장군봉은 구름 속에 살짝 숨었지만 그 산세의 위용은 압도적이었다(사진7). 천지로 내려가는 길은 몹시 가파른 돌밭이었다(사진8). 한 줄로 서서 스틱에 의지해 엉금엉금 내려갔다. 날씨는 흐렸고 바람이 제법 부니 마치 동해안에서 본 것 같은 힘찬 파도가 계속 밀려왔다(사진9). ‘아니, 호수에서 이런 파도라니~’. 역시 백두산은 백두산이었다. 우리 일행은 여기서도 감격의 탄성을 지르며 천지에 손을 담그고 물도 마셔보았다. 유황 냄새가 약간 났지만 물맛은 훌륭했다. 각자 사진 찍고 단체사진도 찍고 한 동안 법석을 떨었다.
 

▲ 사진 8

천지를 만져보고 마셔본 감격을 뒤로 하고 다시 가파른 돌밭 길을 힘들게 올라가 천문봉 주차장에서 찝차를 타고 하산했다. 그런데 이 곳 찝차를 타려면 척추와 허리가 여간 튼튼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 싶었다. 길도 험한데 운전도 F1 경주 수준이라서 계속 옆 사람과 충돌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머리와 엉덩이가 수시로 차에 부딪치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주차장까지 내려오니 내 허리가 무사한 것이 무척 고마웠다.
 

▲ 사진 9

주차장에서 우리 버스를 타고 연길시로 향했다. 연길에서 숙박하고 다음 날 아침에 귀국할 예정이었다. 연길로 가는 도중에 내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아무리 찾아도 여권이 온데간데 없었다. ‘어디서 빠졌지? 가파른 산길? 아니면 F1 경기 중?’ 어떻든 분실한 것은 확실했다. 그러면 우리 영사관에 가서 임시여권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알아보니 가장 가까운 영사관이 심양에 있었다. 연길과는 700km 이상 떨어져 있는 곳. 아찔했다. 단체비자로 중국에 들어갔기 때문에 잘못하면 일행 전체가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사태가 생긴다. 다행이 여권 복사한 것이 있어서 연길 공안에 가서 단체비자에서 나를 분리하는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행은 예정대로 귀국하고, 나는 기사 딸린 차를 한 대 빌려 여행사 직원과 같이 심양으로 장거리 드라이브를 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옥수수 밭이었다. 내 어릴 때 꿈이 고구려 무사처럼 만주벌판을 말 타고 달리는 거였는데, 생뚱맞게 늘그막에 자동차를 타고, 그것도 불안, 초조에 휩싸인 처량한 모습으로 만주를 횡단한다 생각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저녁에 심양에 도착해서 다음날 아침에 우리 영사관에 가서 임시여권(정확한 이름은 ‘대한민국 여행증명서’)을 발급받고 다시 연길로 냅다 달렸다. 기왕에 이렇게 된 김에 가는 길에 국내성 터와 광개토대왕비를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말을 꺼냈다가는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을까 눈치가 보여서 꾹 참았다. 무사히 절차를 밟아 다음날 아침에 연길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 번 볼 수 있다는 백두산 천지를 덕도 쌓은 적 없는 인간이 복 많이 지은 동료들에 빌붙어 한꺼번에 무려 네 번씩이나 보고 만끽했으니 그 정도 댓가를 치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였을 것이다. 그래도 중국 어디선가 호 아무개 아바타가 돌아다니겠다는 생각을 하니 찝찝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무사히 귀국하고 나니 국내성과 광개토대왕비를 그냥 지나친 것이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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