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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국문학과 국사의 입맞춤'(36)-6.15 남북 정상회담 - 고은, <대동강 앞에 서서>
이유진  |  gosilec@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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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31  1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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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남부고시학원 국어

국사전공지식 : 이재혁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6.25는 우리에게 ‘통일’이라는 숙제를 남겼습니다.(31화 참조) 해방 직후부터 남과 북의 관계는 서로에 대한 반목과 대립의 연속이었죠. 우리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이용한 분열주의자들의 득세로 결국 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경험했습니다.

이후 남한과 북한 모두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분단은 고착화되었죠. 서로의 반목을 명분으로 대치하면서 소모적인 군사적, 경제적 경쟁을 벌였습니다. 김구가 ‘나의 소원’(30화 참조)에서 그토록 원했던 ‘문화 민족’을 향해 나아갈 민족의 저력이 분단국가로서 서로를 경계하고 휴전을 유지하는 데 모두 소진되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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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계정세가 급변하고 민족 내부의 역량도 성장하면서 냉전 체제는 점차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1900년대 소련이 해체되었고, 미국 중심의 경제 체제는 유럽 통합이라는 새로운 시장의 등장과 제3 세계의 성장으로 도전에 직면하였습니다. 동남아시아나 동아시아, 아프리카의 각 지역 사이에도 경제 협력 기구가 등장했다는 점은, 세계의 모든 힘이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구심점을 중심으로 모여 대립했던 시대가 지나고, 민족적이고 지역적으로 힘이 모이기 시작했다는 방증입니다.
 
이러한 세계적 ‘통합’의 흐름은 남한과 북한에도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2000년 6월 15일 분단 후 최초로 남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모여 통일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남북은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고, 남측의 연합제 방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여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나가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로 인해 1985년 이래 처음으로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이 성사되었고, 남북 경제협력 추진위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또한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의 유치가 시작되면서 남북 민간의 사회적, 경제적 접촉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경의선이 복원되어, 국민들은 남북이 다시 철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설렜습니다.

이런 큰 변화에는 ‘민간’의 적극적인 노력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현대 그룹 총수 정주영은 1989년 북한과 이미 금강산 개발 의정서를 체결했지만, 임수경 방북사건으로 ‘공안정국’이 조성되면서 일이 성사되지 못했었습니다. 다시 남북 관계가 원활해지자, 정주영은 1998년 6월에 500마리의 소를 이끌고, 또 10월에는 501마리의 소와 현대 자동차를 가지고 판문점을 넘어 입북하였습니다.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해 민간인이 합법적으로 북한을 방문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습니다.1)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영국의 런던대학교에서 통일에 관한 의미 있는 연설을 했습니다. “겨울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게 만드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다.”는 이솝우화의 내용으로 ‘햇볕정책’이 새로운 정부의 통일 정책이라는 것을 알린 것이죠. 이처럼 취임 초부터 김대중 대통령은 북과의 관계 개선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처음에 북한은 김대중 정부에 냉정한 태도를 고수하며, 동해 북한잠수정사건이나 서해(연평)교전 등으로 관계 개선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남한 정부는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 결국 2000년 4월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를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김 대통령은 2000년 8월 13일 오전 10시 20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북의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공항까지 나와 김 대통령을 영접했죠.2)  지금도 사진으로 남아있는 이 순간은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되었던 남북관계의 기본 틀을 화해와 협력으로 전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정상 회담에 동행했던 고은 시인이 만찬에서 낭송한 ‘대동강 앞에서’의 말미처럼, 이 순간을 진정 우리 현대사 백년 중 ‘최고의 얼굴’로 만드는 것은 이제 우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무엇 하러 여기 와 있는가 / 우리가 이루어야 할 / 하나의 민족이란 / 지난날의 향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 지난날의 온갖 오류 / 온갖 야만 / 온갖 치욕을 다 파묻고 / 전혀 새로 민족의 세상을 우러러보며 세우는 것이다 / 그리하여 통일은 재통일이 아닌 것 / 새로운 통일인 것 / 통일은 이전이 아니라 / 이후의 눈 시린 창조이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 하러 여기에 와 있는가 / 무엇 하러 여기 왔다 돌아가는가 / 민족에게는 기필코 내일이 있다 / 아침 대동강 앞에 서서 / 나와 내 자손 대대의 내일을 바라본다 / 아 이 만남이야말로 / 이 만남을 위해 여기까지 온 / 우리 현대사 백년 최고의 얼굴 아니냐 / 이제 돌아간다 / 한 송이 꽃 들고 돌아간다. - 고은, <대동강 앞에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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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웅진 지식하우스
2)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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