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국문학과 국사의 입맞춤'(2)- 불교로 ‘삼한일통(三韓一統)’을 이룬 신라 - 향가의 ‘彌陀刹(미타찰)’
상태바
이유진의 '국문학과 국사의 입맞춤'(2)- 불교로 ‘삼한일통(三韓一統)’을 이룬 신라 - 향가의 ‘彌陀刹(미타찰)’
  • 이유진
  • 승인 2017.02.21 14: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유진 남부고시학원 국어

국사전공지식 : 이재혁

신라는 삼국 중에서 불교를 가장 늦게 받아들인 국가입니다. 그래서 비교적 토속 신앙이 오래 유지되었고, 가장 ‘한국적’인 불교 문화를 이룰 수 있었죠. 삼국이 통일된 뒤, 삼한(三韓)인을 정신적으로 통합하기 위해 신라가 가장 고심했던 것은 통일된 종교적 체계를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이 ‘원효’와 ‘의상’입니다.
 

▲이유진 강사와 공무원국어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하고 싶다면 이유진 강사 카페:http://cafe.daum.net/naraeyoujin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세요^^

원효는 불교 종파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모든 것이 오직 한마음에서 비롯된다는 ‘一心(일심)’ 사상을 바탕으로 더 높은 차원의 통합을 원했습니다. 의상은 화엄학을 바탕으로 하나가 전체이며 전체가 하나라는 ‘一卽多 多一卽(일즉다 다즉일)’의 교리를 펼쳤는데, 이는 대립하는 다양한 종파가 결국 하나의 진리로 통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원효와 의상의 이러한 노력으로 고구려, 백제, 나아가 중국에서 들어온 다양한 종파가 ‘신라 불교’라는 하나의 그릇에 담길 수 있었습니다.1)

통일이 되기 전, 신라의 왕은 ‘삼국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진흥왕은 자기 자신을 ‘전륜성왕(속세를 통일하여 불법으로 통치할 이상적 왕자)’으로 칭하고 화랑도를 정비하여 그들을 ‘미륵불’의 화신이라 하였으며, 자신의 아들들을 금륜(후에 진지왕), 동륜(후에 진평왕)으로 불렀습니다.2) 불교는 이런 왕을 보필하여 삼한일통(三韓一統)을 이루기 위한 정신적 토대로 기능했습니다.

하지만 통일 이후에 신라 불교는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도구’에서 ‘민심을 다스기 위한 도구’로 변했습니다. 귀천이나 신분을 떠나 누구든 접근하기 쉬워야 하고, 믿기만 하면 내세의 유토피아가 보장되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불교 아래 모두 정신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에 따라 과거 ‘전륜성왕’과 ‘미륵불’처럼 선택받은 특권층을 높여주던 불교적 이미지는, 누구나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염불만 외우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판타지의 ‘아미타불’로 변화하게 됩니다. 내세관 또한 미륵의 선택을 받은 이만이 갈 수 있는 ‘도솔정토’에서 아미타불을 믿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극락정토’로 변화했습니다.3)

이러한 경향은 승려들이 지은 ‘향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향가는 백성들에게도 친숙한 문학 형식이었습니다. 승려들은 향가에 불교적 가르침을 담아 백성들에게 이를 전파하려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월명사는 누이동생이 일찍 죽자 재를 올리며 ‘재망매가(祭亡妹歌)’라는 향가를 지어 불렀는데, 한 가지(한 부모)에서 태어나고도 죽으면 서로 가는 곳을 모르는 잎들과 같다고 슬퍼하다가 이내 그 슬픔을 ‘彌陀刹(미타찰)’에서 만나기 위해 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다고 종교적으로 승화합니다. 불교적 윤회 사상을 바탕으로 누이에게 내세인 ‘미타찰’에서 만나자며 슬픔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 준 거죠. 여기서 ‘미타찰’은 ‘아미타불의 국토’, 즉 극락세계를 말합니다.4)[본문 국어 기출 문항 참고]

원효는 직접 민중 속으로 들어가 ‘나무아미타불’을 퍼뜨렸고, 혜숙, 혜공, 대안 등의 승려들도 교화승으로서 불교 대중화 운동을 펼쳤습니다.5) 이들의 종파 통합과 대중화의 노력으로 신라 불교는 사회 통합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 중학교 역사 p.93, 천재 교과서, 2012, 김덕수 외 공저
2) 구한국사특강 p.345. 서울대학교 출판부, 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
3) 위의 책 p.356.
4) 삼국육사 p.532. 주6) 을유문화사, 2002,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2010년 5월22일 시행 지방직 9급 국어
※ 다음 시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生死 길은 /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는 말도 / 못다 이르고 어찌 갑니까.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 가는 곳 모르온저.
아아, 彌陀刹에서 만날 나 / 道 닦아 기다리겠노라.
                                                                                       - 월명사(月明師), ‘제망매가(祭亡妹歌)’

①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은 누이의 요절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② 화자는 삶의 허무함을 종교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③ 마지막 두 행에 삶의 무상함이 잘 표현되어 있다.
④ 향가의 10구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정답 ③
‘아아, 彌陀刹에서 만날 나 道 닦아 기다리겠노라.’라는 부분은 삶의 무상함을 표현했다기보다는 누이를 잃은 슬픔을 종교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제망매가 현대어 풀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 여기(이승)에 있음에 두려워하고
‘나는 갑니다.’라는 말도 / 다 말하지 못하고 갔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같은 가지에 나고도 /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아아 극락 세계에서 만나 볼 나는 / 불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다.

형 식▶10구체 향가, 9구 첫 어절이 감탄구로 이루어짐.
주 제▶죽은 누이의 극락 왕생을 기원함.

2015년 6월27일 시행 지방직 9급 한국사

※ 다음에서 설명하는 인물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성은 김씨이다. 29세에 황복사에서 머리를 깍고 승려가 되었다. 얼마 후 중국으로 가서 부처의 교화를 보고자 하여 원효(元曉)와 함께 구도의 길을 떠났다. … 처음 양주에 머무를 주장(州將) 유지인이 초청하여 그을 관아에 머물게 하고 성대하게 대접하였다. 얼마 후 종남산 지상사에 가서 지엄(智儼)을 뵈었다.

                                                                                                                                -삼국유사-

① 『화엄일승법계도』를 저술하여 화엄사상을 정리하였다.
② 중국에서 풍수지리설을 들여와 지세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③ 『십문화쟁론』을 지어 종파 간의 대립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④ 인도와 중앙아시아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와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하였다.

정답 ① 의상
[오답해설]
② 도선 / ③ 원효 / ④ 혜초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5) 구한국사특강 p.357. 서울대학교출판부, 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