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의역 비극과 갈등관리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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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의역 비극과 갈등관리시스템
  • 문강분
  • 승인 2016.06.2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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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강분 행복한 일 연구소 대표(법학박사/공인노무사)

지난 5월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정비하던 열아홉 청년이 사망했다. 미래를 위해 월급 144만원 중 100만원을 저축하고 사고 당일 출근길에도 동생에게 용돈을 챙겨주던 성실한 청년의 죽음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스크린 도어 정비 중 사망한 사건은 2015년 8월 강남역과 2013년 1월 성수역에서도 일어난 바 있다. 결혼식 5개월 앞둔 28살 청년과 38세의 가장이 사망했다. 이들은 모두 안전수칙인 2인 1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사고의 희생자로 구의역 사건은 이들 사건의 복사판이다.  

애초 업체 선정이나 운영의 특혜에 연루된 듯한 미심쩍은 정황과 퇴직한 서울메트로 직원들이 낙하산으로 고위직을 맡고 있다는 사실들로 연일 보도되고 있는 이번 사건의 용역업체는 설립 5년 이후 상장, 상당한 수익률을 착실히 거두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사고가 발생하자 희생자의 안전수칙위반 책임을 물어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허둥지둥 사고를 수습했다. 그래도 비극에 대한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결국 사장 권한대행이 인터뷰를 자청해 눈물을 글썽이며 사건을 책임지고 사퇴한다는 발표를 했다. 

여느 재난에서도 볼 수 있는 익숙한 대처 방식들이다. 사고가 일어나면 책임을 전가하거나 ‘부인’하기, 사건 담당자를 ‘일벌백계’하기, 나아가 책임자의 ’사퇴‘라는 회피적 대응 말이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통해 재발방지라는 결과를 확보하는 데에까지는 나아가지 못하는 고질적 대응방식이다. 

작년에만 10만 여명이 직장에서 근무하던 중 재해를 당했고, 이중 2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산업안전지표를 가늠하는 사망사고만인율(0.71)에서 우리나라는 단연코 선진국을 능가하는 지표를 유지하고 있다. 산업안전 규제가 비교적 느슨한 국가로 인정되는 미국(0.37)의 두 배, 산업구조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으로 평가되는 일본(0.20)의 세 배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산업재해로 인한 근로손실일은 노사분규에 의한 근로손실일수의 약 83배에 해당하며, 경제적 손실 추정액도 18,977,170백만 원에 이르고 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5인 미만 사업장이 대규모 사업장에 비해 2?3배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비정규직 저임금 근로자이면서 근속년수가 짧은 노동자의 비중이 높은 것도 전형적 특성이다. 

구의역 사고는 예견된 비극이었다. 2인 1조 수칙의 부준수 모두 예산절감 과정에서 발생했을 것이며, 반복되었던 모든 위험의 징조는 사람보다 단기 성과지표를 우선하는 현장의 관행에 의해 모두 묵살되었을 것이다. 이뿐 아니라 투명하지 않은 기업지배구조, 단기성과에 몰두하는 경영진, 이해하기 어려운 평가지표, 일방적이고 편협한 리더십, 불신으로 얼룩진 직장 내 인간관계, 장시간 근로, 과중하게 부여되는 업무, 나아가 무시되고 지켜지지 않는 안전지침... 우리 모두의 직장에 공통적으로 만연한 문제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수차례 유사한 사망사고가 반복된 회사가 멀쩡히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면 현행 안전법규와 이행에 대한 감독 또한 적절히 규율되지 못했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 경제규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기업이 위험을 외주화하고, 살려고 일터에 나갔다가 죽어서 나오는 오늘을 방치해 온 국가, 산업안전에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모습, 모두에 대한 실망을 금할 길이 없다. 무엇보다 성실한 젊은 근로자를 보내고 남은 기성세대로서 나는 무엇을 했나 돌아보니 한없이 부끄러운 오늘이다. 

구의역 사고에 대한 비통함을 꾹 누른 채 감히 희망한다. 책임전가나 사퇴, 일벌백계만으로, 그리고 일회적이고 감정적인 대응만으로는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없다. 국가는 저성과자해고나 성과연봉제를 외치기 전에 ‘위험의 외주화’를 용인하지 않도록 법과 감독 시스템을 개선하는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 노동조합은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에서 벗어나 하청업체를 포함한 일터의 건강과 안전에 대안을 제시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 기업은 선진기업의 경쟁력이 사회구성원으로부터 나옴을 유념, 책임 있는 자세를 가지고 갈등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비극의 해결은 직장 내 갈등과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갈등관리시스템을 통한 해결들이 쌓여 온 신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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