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역사의 승자가 된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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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역사의 승자가 된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 오시영
  • 승인 2015.07.10 14:2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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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벌떼들의 떼죽음을 지난 8일 새누리당의원총회에서 보았다. 환영처럼, 국회의원 한 명의 당내보직을 억지로 박탈, 축출하는 승리의 미소 뒤에 민주주의를 말살한 정치적 패배자로 역사에 기록될 박근혜 대통령의 초라한 뒷모습이 오버랩되어 왔다.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총무는 그 날의 전투에서 졌지만, 역사는 승자로 기록할 것이다. 있지도 않은 역린을 건드린 죄(?)치고는 그가 잃은 것은 적고, 얻은 것은 크다. 의총 직후 리얼미터의 긴급여론조사결과 그의 차기여권대선주자 지지율이 16.8%로 높게 수직상승하는 이상현상이 나타났다. 이번 사태에 대해 그가 옳았다는 국민의 무언의 응원이 아닐까 싶다. 김대중 대통령을 유력한 대통령후보자로 키운 이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대중씨를 정치적으로 죽이려고 탄압하면 할수록 그는 인동초처럼, 오뚜기처럼 되살아나 유신독재 시절 국민들에게 민주주의 실현의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승민 원내대표 찍어내기 상황을 지켜보며, 40년 전 당시의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상관관계가 연상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유승민 대표의 사표연설은 명연설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필자와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은 두 미국대통령의 유명한 연설을 배우며 성장하였다. 그 중 하나가 미국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11월 19일 펜실버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전사한 병사들과 국민들을 향해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라고 연설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소위 게티즈버그 연설이고, 다른 하나가 1961년 1월 20일 제33대 미국대통령으로 취임한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라는 취임연설이라 하겠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구상에서 영원할 것입니다.”로 번역될 수 있는 링컨 대통령의 연설은 이 땅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정체(政體)인지를 밝혀주고 있다. 게티즈버그 연설 후 98년의 세월이 지난 뒤 젊은 케네디 대통령은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가 국민 여러분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국민 여러분이 국가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기 바랍니다.”라는 명연설을 통해 민주주의국가에서 국민의 역할을 새삼스레 강조하고 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사퇴의 변을 통해 몇 가지를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였다. 그의 연설은 첫째, 고된 삶을 살아가는 국민에게 새누리당이 희망을 주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대한 자성, 둘째, 아무리 정치가 잘못 하더라도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정치일 수밖에 없다는 정치에 대한 자신의 인식, 셋째,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 제1조 제1항의 헌법가치를 지킴으로써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를 지키고자 원내대표직을 사퇴할 수 없었다는 사퇴거부의 소신, 넷째, 취임하면서 고통 받는 국민께 약속한 당의 변화와 혁신을 달성하지 못한 채 물러나는 것에 대한 자성의 회한, 다섯째,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 평소 꿈꿔왔던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을 계속 걸어가겠다는 정치인으로서의 다짐 등으로 요약될 수 있을 듯하다.

위 연설을 통해 유승민 의원은 새누리당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새누리당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 원내대표가 스스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정당이 바로 새누리당이라고 지적하고 있을 정도니, 얼마나 새누리당이 엉터리 정당인지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을 지경이라고 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라는 한 마디 진노(?)에 초주검이 되어 사시나무 떨 듯 벌벌 기며 의회민주주의를 말살하는데 앞장선 정치모리배 같은 국회의원들이 넘쳐나는 새누리당을 과연 민주정당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둘째, 박근혜 대통령의 자신에 대한 원내대표축출시도는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민주적 행위라는 강력한 반발이자 비난이다. 직접적인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위 말을 뒤집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독재자라고 우회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니고 전제주의나 독재주의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은 헌법 제1조 2항이 밝히고 있는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말이다. 반대로 전제주의나 독재주의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이 아닌 전제군주나 독재자 1인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런 정치후진국이 되어가고 있는지 참으로 한심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유승민 의원은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실현하는데 앞으로 남은 정치생명을 걸겠다며, 보수가 따뜻함과 정의로움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재 대한민국의 보수를 주도하는 지도층을 보면 일반적으로 친일이나 반민족 또는 부정 및 부패에 연루된 전력을 가진 이들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상당수가 군대를 미필했거나 면제를 받고, 재산축적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끼리끼리 떼거리문화를 이루는 경향이 짙은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는 약자를 보듬는 따뜻함이나 정의가 메말라 있는 경우가 많고, 자기들만의 리그에서 자기들끼리만 호의호식하며 살아가겠다는 아집의 독선이 횡행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국가안보를 핑계 삼아 반대파를 탄압하거나 소수의 강자가 결합하여 다수의 약자를 핍박하는 경우 또한 비일비재하다. 그러한 경향이 점차 짙어지고 있고, 최근 들어 국민의 공정한 심판자여야 할 사법부마저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최근 대법원에서 수없이 파기환송되는 고용관련 사건에 대한 친기업적 판결이나 반노동조합적 판결들이 그러하다. 이런 보수의 극단화현상을 경계하며 조금은 좌클릭할 필요를 2015년 4월 8일에 국회 원내 교섭단체 대표연설한 유승민 원내대표를 못 마땅해 하다가 이번 개정국회법 통과에 이르자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 극단주의적 보수주의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만든 희극적인 삼권분립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사태가 바로 유승민 원내대표축출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현재까지의 시나리오는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국무회의에서 내지른 “배신의 정치에 대한 응징”이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필자는 이러한 행위가 국무회의석상이 아닌 새누리당의원들과의 여당 내 모임에서 정치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는 당내 정치에 관한 것이므로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역사는 그날에 멈추지 않고 미래로 흐른다. 미래로 흐르는 시간은 앞으로 닥쳐올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할 유승민 의원에게는 모진 시련의 기간이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만료일인 2018년 2월 24일 24:00시를 향해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는 역사적 진실이다. 아마도 그날까지 유승민 원내대표는 살아 있을 것이고, 그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인 법과 원칙, 정의 역시 계속 추구되어질 것이다. 침묵의 많은 국민이 그러한 가치를 지지했고, 갑자기 그를 여권대선주자 2위 자리로 올려놓았다. 여든 야든 따뜻한 정치를 해야 한다. 따뜻한 보수, 따뜻한 진보가 어우러져야 하고,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어깨동무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주권자인 국민을 사람답게 대우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종차별주의자인 백인청년의 총기난사로 인해 지난 달 17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흑인교회에서 예배 중에 살해당한 9명의 흑인신자들을 위한 추모식에 직접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은 살해당한 핀크니 목사를 추모하며 “What a good man.  Sometimes I think that's the best thing to hope for when you're eulogized after all the words and recitations and resumes are read, to just say someone was a good man. You don’t have to be of high station to be a good man. Preacher by 13.  Pastor by 18.  Public servant by 23.  What a life Clementa Pinckney lived.  What an example he set. What a model for his faith. And then to lose him at 41 slain in his sanctuary with eight wonderful members of his flock, each at different stages in life but bound together by a common commitment to God.”라는 명연설을 하였다. “그는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가!  추모식에서 고인이 칭송받을 때 가장 좋은 말은 모든 추도와 경력에 대한 언급 뒤에, ‘그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라고 말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높은 지위에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13살에 설교자였고, 18살에 목사가 되었고, 23살에 공직자가 된  핀크니 목사님의 삶! 모범이 된 그의 삶! 본보기가 된 그의 신앙! 그런데 우리는 그를 마흔 한 살의 나이에 잃었습니다. 그는 그의 성스런 교회에서 8명의 훌륭한 성도들과 함께 희생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공통된 신념으로 결속되어 있었습니다.”라는 내용의 연설문 중 죽은 후 “그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라는 칭송을 들을 수 있는 삶이 가장 훌륭한 인생이 아니겠느냐는 부분에서 잠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높은 지위에 있을 필요도 없다.”는 부분도 필자를 먹먹하게 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에 빗대어 질문해 보자, 이번 유승민 축출사태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원내대표 중 누가 더 좋은 사람이었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를 축출하는데 앞장서서 침 튀겨가며 핏대 올려 열변을 토하던 친박계 국회의원들과 반대토론에 나섰던 이들 중 누가 더 좋은 사람이었어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뭐 결론은 같이 사퇴권고에 동의하고 말았으니 도긴개긴 인 건가?)

어린 시절, 부모님 따라 성묫길에 나섰다가 벌떼에게 쏘여 죽으려다 살아난 경험이 있다. 민간요법이라며 벌 쐰 자국마다 된장을 찍어 발라 주시며 “너를 쏜 벌들은 다 죽었단다.”라고 말씀하시며 엉엉 우는 막내아들을 달래 주시던 어머니(55년전 쯤이니 어머니의 민간요법을 너무 비웃지 말기 바란다, 실재 된장의 짠 발효소금기에 의한 소독기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말씀이 문득 생각난다. 어머니께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셨지만, 나를 쏘았던 벌들은 나를 쏜 대가로 모두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쏘여 고통당한 너에 대한 복수는 하나님이 이미 벌의 죽음으로 응징하셨으니 더 이상 울지 말라며 나를 달래셨던 것이다. 꿀벌의 침에는 갈고리가 있어 일단 침을 쏘게 되면 그 갈고리가 포식자의 피부에 걸려 빠지지 않기 때문에 침을 뽑으려고 힘을 쓰다보면 꿀벌은 복부 일부를 떼어내어야 되고, 결국 내장손상으로 침을 쏜 꿀벌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과학시간에 배워 알게 되었다. 그 일을 경험한 후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해 가해하는 자는 결국 죽는다는 작은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

같은 날 2016년 적용 최저임금이 시간당 6,030원으로 결정되었다. 지난해보다 450원 인상되었다지만, 여전히 낮은 금액이다. 저 임금을 받아 어떻게 따뜻한 국민의 삶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인가? 여전히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정치적 민주주의, 경제적 민주주의의 길은 멀기만 하다. 저 멀리 발칸반도에서 재정적자로 인한 경제적 디폴트상태에 빠져 있는 그리스가 힘들게 걸어가고 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로 상징되는, 희랍문명의 발상지로, 직접민주주의의 발현국으로 자랑스러운 문화와 역사를 가진 그리스라는 나라가, 경제적 빈곤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민투표를 통해 과감하게 채권국가들을 향해 그들의 지나치게 부당한 재정간섭에 대해 “No”라고 말하며 국민의 힘을 결집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그리스가 왜 이렇게 위대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라는 칭송을 들을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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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쥐박쥐무현 2015-07-18 14:45:38
청와대 비서실장과 거짓말 논란 및 거짓말까지 하면서 위헌적 법률을 새벽에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쿠데타를 벌인 게 역사의 승자인가요? 역사의 승자가 되려면 거짓말을 잘하고 국헌질서를 문란하게 만들면서 조직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하극상을 벌여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검색을 해보니까 유승민의 부친은 전두환 독재정권에 부역했던 인간이더군요. 역시 전두환 독재정권에 부역한 인간의 핏줄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노쥐박쥐무현 2015-07-18 14:45:38
청와대 비서실장과 거짓말 논란 및 거짓말까지 하면서 위헌적 법률을 새벽에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쿠데타를 벌인 게 역사의 승자인가요? 역사의 승자가 되려면 거짓말을 잘하고 국헌질서를 문란하게 만들면서 조직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하극상을 벌여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검색을 해보니까 유승민의 부친은 전두환 독재정권에 부역했던 인간이더군요. 역시 전두환 독재정권에 부역한 인간의 핏줄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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