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다른 사람의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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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른 사람의 신발
  • 허문희
  • 승인 2015.04.1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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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희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수년간 계속해서 소송을 제기해온 당사자가 있었다. 물론 매번 패소 판결을 선고받았고, 청구원인을 조금씩 바꾸어 소송을 계속 제기해 온 것이다. 법정에 와서도 한 시간 넘게 변론을 하곤 하였다.

이전의 판결들에 법리적으로 틀린 부분이 없어 보였다. 소송이 아닌 다른 일에 매진했으면 주장하는 손해만큼의 돈을 벌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왜 아직도 현실에 승복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연해 보이는 결론인데 무엇이 억울하다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매번 긴 변론에 지쳐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오랜 기간, 오랜 시간 과거의 일을 놓지 못하는 것이냐고 되묻고 싶기도 했다.

당연한 결론. 맞는 결론. 그러나 승복할 수 없는 마음.

나는 무난하게 살아왔다. 당시에 나는 승복할 수 없는 마음을 알지 못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있다고 생각했고, 잘못된 선택을 한 당사자에게 불행한 결론이 따르는 것(예를 들어 지나치게 고수익을 바라고 투자를 하였다가 투자금을 날린 경우 등)은 당사자가 승복해야 할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1년이 지나 서울 근무가 끝나기 전에 아이를 갖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두어 달 만에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우리 부부에게 문제가 있었다. 자연임신이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몇 안 되는 확률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낙관적으로 시작한 인공수정과 체외수정. 그러나 연이은 실패.

나는 생각했다. 우리한테 영영 아이가 없을 수도 있다. 몇 년간 수차례 체외수정을 하면서 힘겹게 아이를 기다리는 부부들의 일이 우리 일이 아닐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불임은 확률적으로 누군가에게는 일어나는 일이고, 그게 내가 될 수 있음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였다.

그때 문득 그 당사자가 떠올랐다. 맞는 결론이지만 도저히 승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랬을까. 그래서 승복하지 못했던 것일까. 나는 그를 떠올리며 현실과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스렸다. 아니면 수년간 생업을 내던지고 소송에 매달리느라 자신과 가족들까지 불행해진 그처럼 내가 더 불행해지는 거니까. 나는 천주교 신자지만 주님께 아이를 달라고 기도할 수 없었다. 그건 승복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누군가에게 아무 잘못 없이 일어나는 일을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주님을 설득할 근거도 없었다.

다행히 지금 뱃속에는 아가들이 자라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노력하면 이루어진다거나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하고 안달복달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다만 우리는 매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과 노력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노력은 하되 그 결과에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상황에 놓이고 나서야 그때 오랜 동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든 마음으로 우리 법정에 왔었을 그 당사자에게 깔끔하게 법리로만 쓰인 판결문을 드린 것이 못내 미안했다. 늦었지만 그에게, 그리고 앞으로 살면서 승복하기 싫은 일들,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 그냥 불운하여 생긴 일들을 수없이 겪게 될 나에게 얘기하고 싶다. 우리 그런 일들에 너무 애쓰지 맙시다. 결과는 내려놓읍시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뿐이잖아요.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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