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 교수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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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교수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11.01.0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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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토끼해, 거북이도 함께 사는 세상이 되길

토끼해가 밝았다. 사주팔자를 보거나 육갑을 집는 사람들은 토끼띠 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육갑은 육십갑자의 줄임말이다. 올해 신묘년은 육십갑자 중 스물여덟 번째에 해당하는 갑자로, 사주팔자를 보는 이들의 말에 의하면 토끼해는 천파살이 끼어 있어, 사주팔자에 토끼사주가 끼어 있으면 사업이 잘 되지 않거나 빚을 많이 지는 등 재물운이 없다고 한다. 사주팔자를 믿기보다 노력하고 성실하게 생활하는 사람이 제 앞가림할 수 있음을 믿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그런 속설이 전해져 내려오니 그것도 완전 무시하기에는 뭔가 께름칙함 있음 또한 사실이다. 속말에 “육갑하고 있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얼굴만 보고서도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의 좋은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지만, 비속한 말이나 행동을 하여 남으로부터 조롱거리가 된다는 의미도 있다. 또 한 해가 새롭게 시작하는 첫날, 다른 사람들로부터 “올 한 해 동안 육갑하고 있네.”라는 말을 가능한 한 안 듣고 사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피력해 본다. 남의 평가보다는 내 자신 스스로 양심에 거리낌 없으면 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남으로부터도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약이 몸에 나쁘고, 쓴 약이 몸에 좋다는 것은 알고 있는지라, 쓰디쓴 충고를 해주는 친구가 옆에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해본다. 


토끼라는 동물은, 치밀하고 명석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유난히 큰 귀를 가지고 있는지라 남의 말을 잘 듣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즉 소통을 누구보다도 잘 할 것이라는 선입감을 갖게 하는 동물이다. 지난 해 가장 국민들이 부르짖었던 것이 소통부재였음에 비추어 올 한 해 어쩌면 소통이 잘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가져본다. 그렇지만 토끼라는 짐승은 뒷다리가 유난히 길어 높은 곳으로 오를 때는 아주 민첩하지만, 반대로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는 아주 힘든 신체적 구조 때문에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의욕과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뛰지만 과분한 욕심을 잘 내어 제때 내려오지 못해 순식간에 덫에 갇혀 꼼짝없이 당하기도 하는 어리숙한 탐욕의 동물로도 인식되고 있다. 그런 속성 때문인지 앞서 말한 사주팔자 중에서 천파살에 해당되어 사업이 순조롭지 못할 때도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사태를 관망할 줄 몰라 계속 투자에 열을 올리다가 쫄딱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연말 주가지수 2050선을 돌파한 주식시장이 올해 3000고지를 향해 줄달음을 칠지, 아니면 쫄딱 망하게 될지, 신묘년 토끼띠 해에 두고 볼 일이다. 제발 잘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토끼눈은 빨갛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토끼가 눈이 빨갛기 때문에 모든 사물을 빨갛게 볼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한다. 하지만 토끼는 눈동자가 빨갛게 보일 뿐이지 우리가 인식하는 것처럼 역시 모든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다양한 인종이 살다보니 갈색 눈동자를 가진 인종도 있고 푸른색 눈동자를 가진 인종도 있는바, 갈색 눈동자 인종이라 해서 사물이 갈색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고 푸른색 눈동자 인종이라고 해서 사물이 푸른색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치와 같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우리는 레드콤플렉스가 있어서인지 왠지 모르게 토끼눈이 빨가니 모든 것을 빨갛게 보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에 사로잡히기 쉽다. 올 한 해는 우리 모두가 이런 잘못된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사상의 시장이 열리는 한 해이기를 바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옛말에 묘신원진(卯申怨嗔)이라고 하여 토끼와 원숭이는 서로 원수지간이 되어 지낸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붉은 눈을 가진 토끼가 붉은 엉덩이를 가진 원숭이를 가장 싫어하는 것을 빗대 나온 말이다.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않을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원숭이가 사는 곳에 토끼가 같이 사는 법이 거의 없어, 묘신원진이라는 말이 들어맞고 있으니 자연의 이치가 참으로 묘한 것이다. 토끼는 예부터 여자를 대표하는 陰의 신으로 알려져 있으니, 올 한 해 여성의 권익이 많이 신장되기를 바란다.


지금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기술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는 모두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에 대한 잘못된 교훈을 귀가 닳도록 배우고 자랐다. 게으른 토끼가 자기 빠름만 믿고 낮잠을 자다가 부지런한 거북이와의 달리기 경주에서 졌다는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 말이다. 물론 그 동화 속에서 어린이들에게 성실을 가르치고, 교만과 게으름의 해악을 가르치기 위한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찌 거북이가 토끼에게 이길 수 있겠는가? 이처럼 어린이 동화는 우리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농부와 흥부의 이야기가 그렇고, 신데렐라 이야기가 그렇다. 어찌 게으른 흥부 같은 이가 하루아침에 박씨 하나 때문에 벼락부자가 될 수 있으며, 가난한 신데렐라가 있지도 않은 요정의 도움으로 유리구두를 얻어 신고 궁중연회에 참석하여 왕자와 사랑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흥부는, 거북이는, 신데렐라는 기죽을 필요 또한 전혀 없다. 놀부가, 토끼가, 왕자가 아무리 힘이 센들 무어 걱정이냐. 내가 땀 흘려 벌어먹고 살면 되지 않는가 말이다.


새해 첫날부터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파더”를 놓고 충무로가 시끄럽다. 충무로의 내노라 하는 비평가들이 “이것도 영화냐?”라거나 “불후의 명작 대부”를 이렇게 폄훼해도 되느냐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조롱성 비판(내가 보기에 비판의 정도를 넘어선 아예 비난인 듯 들린다)을 퍼부어 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수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며 끼득끼득 웃어재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비평가들의 비평을 역으로 조롱하고 있다. 아니 웃기려고 만든 영화, 보면서 웃으면 되지 거기서 무슨 심오한 철학을 찾고 영화의 격을 찾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 말도 맞는 말이다. 노는 물이 다르니 그냥 다르게 놀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심형래의 갓파더만 웃으랴, 아니면 토끼의 빨간 눈이 웃으랴?


지난 연말, 네 개의 종합편성방송국과 뉴스종합채널이 하나 선정되었다. 대한민국 개국 이래 지난 60년에 걸쳐 케이비에스, 엠비스, 에스비에스 등 세 개의 종합편성방송국이 있었을 뿐인데 한꺼번에 그보다 더 많게 조선, 중앙, 동아, 매일경제 등 네 개의 메이저 신문사에게 무더기로 종합편성방송국을 허가해 주는 것을 보면, 정말 노는 물이 다른 정부인 것은 틀림 없어 보인다. 진짜 대부 갓파더가 노는 세상과 심형래의 가짜 라스트갓파더가 노는 세상이 다르듯, 토끼가 노는 물과 거북이가 노는 물이 다르듯 역시 이명박정부는 노는 물이 달라도 단단히 다른 모양이다. 처음 신청을 받을 때는 하나를 할지 아니면 둘을 할지 정도로 고민하는 줄 알았더니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모조리 하나씩 나누어주는 선심(?)을 베푸는 것을 보면서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광고 시장이 도대체 얼마나 크길래 이렇게 하루아침에 133%의 시장개방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오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금도 티브이체널을 틀면, 이곳에서 상조회 광고, 저곳에서 고리대업자들의 대출광고, 저어쪽에서 묻지마자동차보험광고, 저어어쪽에서 무조건암보험광고를 보고 사는 우리가 얼마나 비극적인지, 아니 희극적인지 알지 못하는가 말이다. 저 춤추는 네 광고를 보고 있으면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 다른 사람을 다치거나 죽게 해도 모든 것을 책임져주겠다는 자동차보험광고가 얼마나 우리에게 책임의식을 상실시키고 타인의 생명을 경시하게 만들고 있는지, 빨리 암에 걸려 고통받거나 죽으면 곧바로 돈을 줄 테니 빨리 암에 걸리라는 것을 독촉하는 듯한 광고가 우리 자신의 고귀한 인격을 얼마나 좀먹고 있는지, 언제든지 돈을 빌려주겠다는 대부광고가 우리의 근면절약 정신을 송두리째 빼앗고 돈빌려 흥청망청 쓰라고 유혹하고 있는지, 상조회에 가입하기만 하면 당신의 부모가 죽든 사랑하는 배우자가 죽든 우리들이 시신을 처리해 주겠으니 아무 염려하지 말고 있으라는 인간애정신의 말살을 가져오는 광고인지, 나는 저 네 광고를 겹쳐서 보다보면 말 그대로 머리에서 쥐가 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케이블티브가 저 네 가지 해악성 광고를 끊임없이 해대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 광고시장의 현주소라고 할 것인데, 이제 네 군데 종편이 방송을 시작하게 되면 대한민국은 저질스럽고 조잡한 광고폭탄을 맞게 될 것이고, 왜곡된 정보의 편식현상으로 건전한 가치관 전도 내지는 몰도상황이 오지 않을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하여튼 거북아, 거북아, 그래도 기고 기고 기어보자. 그 수밖에 다른 수가 없지 않느냐? 노는 물이 다르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 그래도 나는 어제 티브이 동물의 세계에서 어미 거북이 한 마리가 수백 개의 알을 낳는 것을, 그 알들이 부화되어 수백 마리의 아기 거북이가 열심히, 열심히 바다로 향해 가는 경이로움을 보았단다. 토끼야, 토끼야 너 혼자라도 빨리 빨리 뛰어가거라. 먼저 가서 백두산이 되었든 한라산이 되었든 깃발을, 네가 원하는 깃발을 꼿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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