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저인터뷰]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주장하는 황병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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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저인터뷰]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주장하는 황병일 변호사
  • 법률저널
  • 승인 2009.10.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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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자기결정권 침해하는 혼인빙자간음죄 폐지해야
가부장적 가치 답습…평등 원칙에 반해"

 

지난 달 10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는 형법 제304조 위헌소원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이 열렸다. 이 사건은 “부모님께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이라고 소개하겠다”고 거짓말을 한 뒤 수차례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임모(33)씨가 지난 6월 낸 헌법소원이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 형법 제304조가 남녀 사이의 자유로운 성행위를 규제함으로써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하여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 성적 자기결정권 및 제17조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헌법 제11조의 평등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놓고 양측간 팽팽한 이견이 오갔다.


이 사건 청구인측 대리인으로 나선 황병일 변호사(사법시험 23회)를 20일 본지가 만났다. 그는 “진실을 전제로 한 혼전 성교의 강제는 도덕과 윤리 문제에 불과할 뿐 아니라 형법이 개인의 사생활 영역까지 직접 규제해서는 안된다”며 혼인빙자간음죄 폐지 주장을 이어 나갔다.

 

성적 자기결정권, 형벌로 간섭해선 안 돼


황 변호사는 헌법재판소 국선대리인으로 본 사건의 청구인측을 대리하게 됐다. 현재 변론을 모두 마치고 선고를 남겨둔 상태다. 헌재는 지난 2002년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여부를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7대2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본격적 논의는 다시 검토할 필요 있다”고 논란의 여지를 남겨뒀다. 황 변호사는 “이번에는 반드시 위헌 판결이 날 것이다”고 전망했다. 시대적 상황을 볼 때 최소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혼인빙자간음죄(혼빙간)가 왜 폐지되어야 하는지 조목조목 설명해 나갔다.


황 변호사가 내 놓은 첫 번째 이유는 남녀간의 성적결정권은 국가가 형벌로 간섭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된다는 말이 있듯, 우리가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사랑하고 표현하는가는 각자의 고유권한이자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며 “개인의 사적인 부분까지 관여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형법 304조에서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로 대상을 한정하고 있는 것 또한 문제가 된다고 주장했다. 혼빙간 폐지의 두 번째 이유, 즉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황 변호사는 “여성이나 남성이나 인격을 똑같이 존중받아야 마땅함에도 이 규정의 표현을 보면 여성은 스스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며 “이에 대해 국가가 후견 업무를 한다는 것은 여성의 능력을 평가절하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대 변화 따라 법도 변해야


황 변호사에게 여성은 아직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존치를 주장하는 피청구인측 의견을 되물어 봤다. 그는 “오늘날 여성의 지위는 법이 제정됐던 195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장됐다”며 과연 보호해야 할 법익이 어떤 부분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여성이 스스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고 그로 인해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 예컨대 미혼모 문제 등에 국가가 개입을 하는 것이 오히려 진정한 보호가 아니냐는 원론적 의견이었다.

 

그는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명분을 더 이상 찾기 힘들뿐 아니라 법 제정 당시에는 예상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며 “최근 전자기기의 발달로 몰래카메라 촬영 범죄가 무수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나 성폭행 범죄자 처벌에 더욱 힘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성적 자기결정권을 들어 폐지를 주장하는 간통죄는 가정의 파괴를 막는다는 보호법익 이 존재한다고 그는 부연했다.

 

실효성도 낮아


혼인방자간음죄 실효성 문제도 중요한 쟁점으로 거론됐다. 황 변호사는 “한 해 혼인빙자간음죄 고소건수는 500건 정도지만 이중 실제 기소건수는 40건 정도”라며 “이들 중에서도 혼인빙자간음죄로만 기소되는 경우는 60~70%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나머지는 사기, 폭행과 병합해 기소되는 상황이다.


또 재판과정에서도 피고가 재판도중 말을 바꿔 “이 여자와 결혼 하겠다”고 하면 무죄가 선고된다고 그는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혼인빙자간음죄가 있는 나라는 극히 일부나라뿐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쿠바, 루마이아, 터키 등 4개 국가다. 황 변호사는 “우리나라 형법은 일본 형법 초안을 가져온 것인데, 일본은 초안에 혼인빙자간음죄가 규정돼 있었지만 결국 최종안에서는 채택되지 않았다”며 “전근대적 발상이 담긴 시대착오적 규정을 아직도 답습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교수재임용거부결정 무효확인 소송, 분수령 될 것


황 변호사는 다양한 사건을 수임해 오면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는 오랜 시간 외롭게 법정 투쟁을 하는 사람들을 대리한 일을 꼽는다.


그는 2006년 7월 24일 접수돼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교수재임용거부결정 무효확인 소송(2006다 46131)을 맡고 있다. 다수의 하급 법원 재판부에서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선고가 난 후 심리를 속행하기로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만큼 모델케이스로 꼽힌다. 관련 사건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 사건은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한 교수들이 기간제 임용제도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 2003년 2월 27일 기간제 교수 임용 관련 규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자 소를 제기하기 시작했는데 황 변호사가 맡은 이 사건이 가장 먼저 대법원에서 가장 먼저 심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황 변호사는 패소 확정 후 제기한 소송을 승소로 이끈 일도 유의미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모 기업 직원 40명이 회사에 명예퇴직을 신청하자 회사측은 일반퇴직으로 처리, 이와 관련 소송을 제기한 직원 원고측은 2001년 8월 면직처분 받았다. 황 변호사는 패소 확정된 이 사건을 면직무효확인소송을 다시 시작 1,2심에서 패소했으나 3심에서 뒤엎는 결과를 냈다. 그는 “패소 후 6년 후인 원고 40명이 사실상 구제를 받았다”며 스스로에게 있어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전했다.

 

끝없는 공부 통해 즐거움 찾을 것


황 변호사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9시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다. 불면증에 시달릴 만큼 예민한 성격 탓에 그야말로 “고군분투한 시간이었다”고 그는 수험생 시절 회상했다. 무엇보다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발목을 잡았다고 그는 전했다.


그러나 뒤늦게 온 합격이 변호사가 된 후에도 끊임없이 공부를 하게 하는 자극제가 됐다. 요즘도 퇴근 후나 휴일을 막론하고 영어공부 삼매경 빠져있다는 황 변호사는 외국인 사건도 많이 수임해 왔다.


인터뷰 당일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발표가 있었던 만큼 그는 2차 시험에서 낙방한 수험생들에게 “‘아직도 내가 해야 할 공부가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라”면서 “이렇게까지 공부했는데 결과가 안 좋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또 합격한 수험생들에게는 “이제부터 또 다른 시작의 길 위에 섰다는 생각을 갖으라”고 주문했다.


변호사를 직업으로 한 지 27년째. 시대가 변한만큼 법조계 시장도 바뀌었음을 실감한다는 황 변호사는 법률사무소 몸집을 줄이고 그만큼 발로 뛰는 중이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권위의식 버리고 몸으로 부딪히는 것이 불황을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소개하면서 “공부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얻으면서 힘이 닿는 한 발로 뛸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허윤정 기자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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