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현 변호사의 형사교실]강도상해죄와 심신미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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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변호사의 형사교실]강도상해죄와 심신미약(1)
  • 법률저널
  • 승인 2009.10.1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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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법무법인 세인  변호사
연세대 법대 졸업, 법학 박사, 수원지검 검사,

이용호 사건 특검팀 특별수사관,

아주대 법대 부교수, 연세대, 법무연수원 강사

 

최근 등교 중이던 8세 여아를 끌고 가서 성폭행한 일명 '나영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재범임에도 불구하고 만취상태였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징역 12년이 선고되었고 이에 대해 여론은 흉악범에게 감형하였다는 것에 분개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면 저지를 수 없는 범죄의 경우에 소위 ‘술을 먹은 사건’들이 적지 않는데, 이럴 때에 형을 감경 받을 수 있는 심신미약(형법 제10조 제2항)을 인정할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되곤 한다. 특히 강도상해죄와 같이 법원이 작량감경(형법 53조)을 하여도 워낙 법정형이 높아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능한 범죄에서는 심신미약 인정여부가 가장 중요하게 된다.
 
국민참여재판에서 강도상해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된 사건을 소개한다.
먼저 검사의 공소사실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2009.8.2.01:40경 어느 앞길을 지나가던 중 피해자(29세, 여)와 마주치자 피해자를 뒤따라가 한 손으로는 피해자의 목을 감싸고 다른 손으로는 피해자가 어깨에 메고 있던 핸드백을 낚아채기 위하여 그 줄을 잡아당겼다. 이에 피해자가 위 핸드백을 움켜쥐자 피고인은 피해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2회 때려 피해자를 넘어뜨려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한 후 피해자로부터 현금 125,000원, 새마을금고 현금카드 1매, 기업은행 비씨카드 1매, 새마을금고 통장 1개, 시계, 팔찌, 목걸이, 반지, 귀걸이 등이 들어있는 피해자 소유 위 핸드백을 빼앗아 이를 강취하고 피해자에게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눈꺼풀 및 눈주위 영역의 타박상 등을 가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피고인은 경찰과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에 술에 취하여 범행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였고, 공판준비기일에서도 공소사실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지 않으나 범행 다음날 아침에 의식을 찾아보니 자신이 경찰서에서 밤새 잤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의 코에서 코피가 난 흔적이 있었는데 피해자의 진술과 경찰관의 설명을 듣게 되어 공소사실은 인정하겠다고 하였다. 계속해서 변호인은 피고인의 평소 주량이 소주 2병 정도인데 전날에 거의 잠을 자지 않아 매우 피곤한 상태에서 소주를 4병 반 이상을 마시게 되어 너무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한밤중에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기에 이는 형법 제10조 제2항에서의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의 범행으로 보여 그 형을 감경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피고인의 아버지는 피고인이 구속된 얼마 후에 피해자에게 금200만원을 주고 원만히 합의를 함에 따라 재판이 순조롭게 풀릴 여건이 마련되었다.


그리하여 재판의 쟁점은 심신미약의 인정여부가 되었고, 이에 따라 검사는 피해자와 피해자의 남자 친구, 초동수사를 맡았던 경찰관을 증인으로 신청하고, 변호인은 피고인과 함께 술을 마셨던 피고인의 친구를 증인 신청하였다. 피고인의 친구가 현역 군인으로 휴가 중에 피고인과 함께 술을 마셨기에 현실적으로 증언이 가능할 지가 걱정이 되었는데, 피고인의 친구는 군부대에서 휴가를 보내주어 증언이 가능하였고 결국 피고인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오전의 배심원선정절차에서 7명의 배심원과 1명의 예비배심원을 선정하게 되었는데, 변호인은 배심원후보자들에게 ‘술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못 마시는 분이 있느냐’, ‘술을 마시고 술주정을 하는 것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있느냐’는 등의 질문을 하여 아무래도 술에 괜한 거부감이 있을 듯한 후보자나 피해자와 비슷한 젊은 여자분에 대해서 기피를 하였다. 배심원후보자들 중에는 식품위생법위반으로 조사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하면서도 술을 마시고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분이 있었기에 변호인의 입장에서 기피를 할까 고민을 하던 차에 검사가 먼저 기피를 하는 바람에 고민이 자연스레 해결이 되기도 하였다. 만 70세 이상이면 배심원 면제사유이기에 원하면 얼마든지 면제를 받을 수 있고 이에 두 분이 해당되는데도 모두 배심원이 되고 싶다고 하였다. 그 중에서 한분은 몸이 상당히 불편한 것 같았고 검사가 그분을 기피하는 바람에 결국 배심원이 되지 못하여 상당히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후의 증거조사절차에서 검사측 증인으로 채택된 피해자와 피해자의 남자친구는 출석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술에 취하였는지 잘 모르겠다고 진술하였지만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검찰 조사시에 피고인이 ‘술 냄새가 나가지고 진술도 제대로 못하였고, 술에 취해 가지고 꼬꾸라져 있었다’고 진술한 부분이 있었기에 비록 합의가 되었지만 피고인과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는 피해자나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증언을 하지 않는 것이 피고인에게 불리할 이유는 없었다.


피고인을 검거하고 초동수사를 맡았던 경찰관은 피고인이 술에 취하였다는 것을 별로 느끼지 못했고, 피고인은 검거 직후에 잘못을 하였다며 울기까지 하였는데 당시 피고인을 처음 붙잡은 남자 2명이 신원을 알리고 싶지 않다며 그냥 가버리자 갑자기 범행을 부인하고 그 사람들로부터 맞았다는 말만 하였고, 피해자가 처음 조사를 받는 지구대에서 자는 것처럼 보였으나 조사내용을 엿듣는 것 같기도 하였다며 피고인에게 상당히 불리한 증언을 하였다. 이에 변호인은 남자 2명 중에서 1명은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었기에 위 남자 2명과 범행을 부인하는 것은 관련이 없으며, 피해자를 장시간 조사를 하면서 옆에 앉아서 자고 있는 피고인이 정말 진짜로 자고 있는지, 자는 척하며 조사내용을 엿듣고 있는지를 전문가인 경찰관이 그렇게 애매하게 진술할 수가 있느냐고 반박하고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하였을 때에 남자 2명이 피고인을 붙잡지도 않은 상태에서 피고인이 무릎을 꿇고 있었던 것은 피고인이 전혀 도망을 갈 것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피고인의 남자친구는 자신이 군에서 휴가를 나오는 바람에 먼저 피고인과 자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이어서 호프집에 가서 다른 사람들까지 합세하여 술을 마셨는데 전부 소주 4병 이상을 마신 것 같고, 피고인이 마지막으로 노래방에 갔을 때에는 술에 몹시 취하여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였고,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피고인이 전날에도 게임장에서 거의 잠을 자지 못하였다는 말을 들었고 피고인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등 특별한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고 증언하였다. 검사는 여러 명이 술을 마셨는데 어떻게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이 마신 술의 양을 정확히 알 수 있느냐고 하면서 정말 같이 술을 계속 마신 것이 맞기는 맞느냐고 추궁하기도 하였다.


이어서 피고인 신문에서 검사는 피고인이 주량을 소주 2병이라고 진술하기도 하고 소주 3병이라고 진술하기도 하였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정말 술에 취한 상태로 어떻게 피해자를 주먹으로 때리고 핸드백을 빼앗아 달아날 수가 있느냐고 하면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고, 변호인은 피고인이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함께 생활하던 아버지가 몸이 불편하여 직장을 잃게 되는 등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그동안 5년 넘게 사회생활을 하였으나 최근 폭력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외에는 아무런 전력이 없고 현재 요리사로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마침 여름 휴가철이라서 전날에 게임장에서 오랜만에 밤샘을 하다시피하여 매우 피곤한 상태에서 주량을 훨씬 벗어난 음주로 인해 범행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점을 더욱 크게 부각하였다. 신문 과정에서 피고인이 중학교 재학 중에 육상선수로 큰 대회에서 2등까지 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어 피해자가 구두를 벗고 맨발로 피고인을 잡기 위해 뛰어가며 계속 소리를 치고 이 소리를 듣고 차량에서 내린 남자 2명이 피고인을 쉽게 붙잡을 수 있었던 것도 피고인이 술에 취하였기에 가능하였던 것 같다고 주장하기까지 하였다.


검사는 술에 만취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심신미약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례를 인용하면서 피고인에게는 심신미약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 후에 초범이고 합의한 점 등을 감안하여 징역 3년 6월을 구형하였고, 변호인은 강도상해죄의 법정형이 무기징역 또는 징역 7년 이상인 이유는 강도가 칼 등 흉기로 피해자에게 큰 상해를 가하여 완전히 반항을 억압한 경우 등을 예상하여 중벌을 가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실제 본건과 같은 경우는 소위 날치기와 별로 차이가 없으며 본건을 위와 같은 강도상해죄의 법정형으로 의율하기에는 너무 무겁고 가혹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따라서 재판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범행이고 흉기 등에 의한 중상이 아니며 합의가 된 경우에는 심신미약을 인정하여 용서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점도 감안하여 전과도 없는 이제 20대 초반의 젊은이에게 집행유예의 선처를 내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변론을 하였다.


배심원들은 저녁식사와 함께 4시간 이상의 평의와 평결, 그리고 양형 토의를 통해 전원이 피고인에게 심신미약이 인정될 뿐만 아니라 집행유예 선고의 의견을 내었고, 재판부도 이를 존중하여 배심원들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주는 바람에 피고인은 그날 밤늦게 석방이 되어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강도상해죄와 같이 1회 감경하여도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능한 범죄의 경우에는 술을 통한 심신미약이 구세주와 같은 역할을 하여 절묘한 찰떡궁합이 될 줄을 입법자들께서는 미리 알고 계셨을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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