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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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07.04.0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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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변호사/시인

 

구태 속의 이름들

 

명성은 쉽게 쌓이지도 않고 하루아침에 쌓이지도 않는다. 마치 웅장하고 거대한 성이 벽돌 한 장, 바윗돌 한 개를 순서와 방식에 따라 정성스레 꿰맞추어 축조되듯 그 분야의 주춧돌 놓는 일에서부터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한 번 쌓여진 명성은 어느새 난공불락의 성이 되어 어느 누구의 도전도 허용하지 않는 철밥통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아주 많다. 이러한 명성을 가진 자의 행동은 하나의 패턴이 되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행동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 모방하게 만든다. 간혹 그 명망가의 행위를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추종자들은 열광하기도 하고, 잘못된 길을 따라가기도 한다. 그 명망가는 자신의 명성에 해가 될 만한 자들을 가차 없이 징벌하고 아예 제거해버리기도 한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해 온 사실이기도 하다. 한때는 종교가 그랬다. 중세 암흑시대라고 불리던, 그 인간과 문명 말살의 시대에 카톨릭 종교지도자들이 그랬다. 마녀재판을 심심찮게 했다. 오죽하면 사람을 물속에 빠뜨려 죽으면 악마에게 붙들렸기 때문에 죽었다고까지 했을까? 현대에 들어서도 일부 종교지도자들의 행태는 여전히 구태를 답습하고 있고, 정치지도자들의 행태 또한 마찬가지이다. 거기에 연예인들과 스포츠 스타들이 가세하고 있고,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계 집단의 명망가들도 마찬가지이다.


티브이의 채널을 돌리면 하루 종일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새로운 드라마는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인기가 있으면 재방 또는 삼방은 기본이다. 하루 종일 드라마만 틀어주는 위성방송채널조차 생겨났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정상적인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정확하게 통계를 내보지 않아 섣부른 진단이 될지 모르겠지만 2,30% 정도는 정상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약 7,80%는 왜곡된 인간들의 성격파탄적 행태가 극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물론 드라마의 내용이 도덕적이거나 교과서적일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런 이야기로만 꾸며진다면 시청자들도 식상할 것이고,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극 전개에 금방 싫증을 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 드라마 작가들 중 상당수는 시대착오적인 의식에 대한 변환의 시점에 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서울시가 일부 불성실하고 무능력한 공무원을 퇴출했던 것처럼 구태의연하거나 시대착오적인 시나리오밖에 쓰지 못하는 작가들도 퇴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현대사회는 다양성의 시대이다. 그리고 정당하지 못한 행동에 대한 반동의 정서는 모두에게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특히 젊은 층일수록 불편부당함에 참고 있지 아니하다. 남편의 잘못된 행동에 아내가 참지 아니하고, 부모의 잘못된 행동에 자녀가 인내하지 아니한다. 교수의 잘못된 행동에 학생이 분노하고, 잘못된 사회구조에 모두들 항변한다. 그런데도 드라마 속의 구조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이분하여 가진 자의 횡포를 당연한 것인 양 호도하고, 가지지 못한 자의 좌절을 증폭시킨다. 시부모와 며느리를 이분하고, 학대와 사리에 맞지 아니하는 억지를 정당시하고, 상대를 무력화시킨다. 시집살이와 며느리살이를 과장하거나 왜곡한다. 헌법이 추구하는 남녀평등, 신분평등, 가치평등의 철학을 아무리 학교에서 열심히 배웠다고 하더라도 한 편의 드라마는 그 가치를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전혀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든다. 모든 국민에게 잘못된 부정을 일시에 학습시켜 버린다. 모두를 바보상자 앞에 불러 앉힌 후 그러한 행동을 당연한 것인 양 세뇌시킨다. 특히나 드라마 중 흔히 나오는 장면들을 살펴보자. 어느 날 사업이 망하면, 바로 몇 분 후에 채권자들이 들이닥쳐 소파며 냉장고며 집안 살림살이를 강압적으로 들고 나간다. 빚을 못 받는 대신 세간 살림 하나라도 건져(?) 채권을 회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두발로 거실로 뛰어들어와 가재도구를 부수고 짓밟는다. 그런 드라마 구성은 황당하다. 재판절차 없이 그렇게 채무자의 세간 살림 하나라도 가져가면 절도죄가 성립되고, 말리는 데도 가져가면 강도죄가 성립하고, 말리다가 상처라도 입게 되면 강도상해죄가 성립되어 최저형이 징역 7년이다. 채권자라는 이유로 물건을 부수면 재물손괴죄가 성립한다. 사귀던 남자친구가 배신하면 주먹이 난무한다. 물론 폭행죄가 성립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해죄가 성립하기도 한다. 남편의 외도 상대방의 집을 찾아가 머리를 쥐어뜯고 옷을 찢고 상해를 입힌다. 주거침입죄에 상해죄 또는 폭행죄가 성립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말도 되지 않은 시부모나 장인장모의 학대가 보여지고, 반대의 경우도 많다. 모두 재판상 이혼사유가 되고, 위자료 등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원인들이다. 시도 때도 없이 펼쳐지는 수많은 명예훼손사건이 하루에도 수없이 펼쳐지고 있는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 작가들의 의식수준을 본다. 물론 그들에게 고도의 법률적 지식을 요구하거나 도덕군자이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렇지만 시대에 맞는 의식구조를 가지고, 그 속에서 인간심리의 묘사와 상황전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묘사는 간곳이 없고 사실의 설명들만 나열된다. 그건 사실을 보도하는 신문기자의 몫이지 묘사와 창작의 의무가 있는 작가의 직무는 결코 아니다.


명성의 힘은 무섭다. 명성도 상징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일단 방송을 타거나 상을 타 이름이 매명되게 되면 그때부터 그의 말은 엄청난 권위를 부여받게 되고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 명성자가 얼마나 약한 인간인지 나는 안다. 아니 우리 모두는 안다. 몰랐다면 알아야 한다. 그가 설혹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 전문가일지라도 그 분야를 제외하면 아주 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어느 분야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못한 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그 하나의 힘에 매료되어 그를 모든 면의 전지전능자로 착각하고 맹목적 추종을 할 때가 많다. 특히 젊은 층의 연예인맹종이나, 일부 정치지망생들의 명망정치가에 대한 줄서기, 또는 사대사상에 찌든 일부 정치지도자들의 맹목적인 강대국맹신주의 등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최근에는 시민단체와 노동단체에서도 그런 일들이 빈번하다.


명성은 하루아침에 쌓여지는 급조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명성 속의 허구도 직시할 줄 알아야 한다. 이름에 걸맞는 노력을 신일신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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