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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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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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1.0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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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호떡과 박치기

 

나는 따뜻한 호떡을 사 먹을 때 참 행복하다. 잔칫집에서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음식을 먹을 때보다 뜨거운 호떡에 손이 데지 않도록 이리 저리 돌려가며, 적당히 식도록 호호 불어가며 먹을 때 너무나 행복하다. 아마도 어린 시절 추운 겨울에 길거리에서 호떡을 그렇게 맛있게 사 먹던 추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일 게다. 친구들과 어울린 하굣길에서 호떡을 사먹을 수 있었던 날은 참으로 호주머니가 넉넉한 날이었다. 호떡 하나에 5원이던 시절, 10원짜리 동전 하나면 두 개의 호떡을 살 수 있었고, 친구와 하나씩 나눠먹던 때의 우정만큼 더 따뜻한 우정을 느낄 수 있었던 때가 있었던가..... 어느 날 마음씨 좋은 호떡 가게 아저씨가 정신없이 호떡을 먹는 우리를 향해 선뜻 하나씩 더 건네주시며 빙긋 웃던 그 인심 앞에 얼마나 우리가 행복했던지 모른다.


얼마 전 어느 시잡지에 “중독”이라는 시를 발표한 적이 있다. “네온이 반짝이는 번화가의 바게트에서는/중략/먹어야 산다는 독약을 판다//중략/단맛에 혀끝이 마비된 어미는/허겁지겁 만삭의 삶을 채우고/제 새끼에게도 숨 쉴 틈 없이 먹이를 준다/무게를 더 해도 저울눈금은/날짜변경선 위에서 멈추어 서 있다/아무도 그 눈금 너머를 읽을 수 없다/치사량의 무게는 사흘이다/중략/바게트의 주인은 친절하다/이미 중독된 어미에게 중독된 아이는/어른이 되어서도 바게트 앞을 떠날 수 없는/개가 되어간다//바게트의 윈도우에는/뉴욕ㆍ파리ㆍ런던ㆍ독일ㆍ동경ㆍ이태리라는/들으면 알 듯도 싶고 모를 듯도 싶은/풍요로운 이름들이 요란하게 쓰여 있다/개들이 짖는 저편, 변두리 한 귀퉁이/서울 바게트에서는/맛없고 텁텁한 보리 건빵만이/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채/더욱 더 단단하게 굳어가고 있다......


우리 일생은 중독에 의한 반복적 추종일지도 모른다. 내가 40여 년 전 맛있게 먹었던 호떡의 추억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고농도의 설탕으로 만들어진 빵과 초코렛 맛에 중독된 요즘의 아이들도 몇 십 년 후 여전히 그 바게트에서 그 빵을 찾게 될지 모른다. 서양의 제조방식에 의한 각종 베이커리의 양산 속에서 우리는 그 제과점 앞에 이름 붙여진 뉴욕, 파리, 런던, 동경 등을 은연중 동경하도록 학습 받고 있는지 모른다. 치사량의 한계를 넘어설 때까지 우리는 중독으로 인한 폐해를 깨닫지 못한다. 문제는 아무도 그 치사량의 한계를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비로소 죽는 순간에 깨달을 수 있을 뿐. 그러한 중독은 강대국에 대한 맹목적 신뢰와 중독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강자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 중독현상은 소수의 식자층에서, 여론형성층에서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마치 어미가 단맛에 중독되어 배가 부른 데도 꾸역꾸역 목까지 음식을 채워 넣으며 뱃속의 아이에게 은연중 그 단맛을 중독 시키듯, 어린 아이의 손목을 잡고 달콤한 초코렛을 파는 바게트를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며 달디 단 고칼로리 베이커리를 먹어치우는 아이의 모습에서 사랑을 베풀고 있다는 자만에 빠지듯, 아빠마저 그 뒤를 황급히 따르며 중독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이빨이 썩고, 나중에 당뇨와 비만으로 이어지고 나서야 달콤함에 젖어있던 나쁜 식습관을 후회하듯, 그렇게 후회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중독은 적게는 식습관에서이겠지만, 크게는 국제역학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김일 선수가 지난 10월 26일 향년 77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어린 시절 호떡을 좋아했던 것만큼 김일 선수의 프로레슬링을 좋아하였다. 김일 선수의 프로레슬링이 열리던 날은 흑백 티브이가 생중계를 했고, 라디오방송이 요란스러웠었다. 어디 티브이가 흔한 시절이었던가, 한 동네 통 털어 한 집이나 있을까 말까한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그 부잣집 아이에게 각종 아부를 떨어야 했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한방에 모여앉아 고함을 지르고 흥분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40여 년 전의 옛일이다. 항시 김일 선수는 시합 초반에는 상대방의 반칙이나 공격 앞에 수많이 매를 맞아 보는 우리를 안타깝게 했었다. 그러나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렇게 얻어맞던 김일 선수가 기운을 차리고 박치기를 하기 시작하면 안토니어 이토끼 선수이든, 압둘라 부처 선수이든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는 했다. 그게 쇼였는지 미리 각본에 의한 것인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하여튼 김일 선수는 그렇게 우리에게 역전의 멋진 승부를 보여주었고, 온 국민은 거기에 열광했다. 하루는 고향에서 그의 경기가 열렸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초등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링주변에 모여 그의 레슬링경기를 관전하며 얼마나 고함을 질러대었는지 모른다. 물론 그 경기에서도 마지막에 박치기 한 방으로 승부를 결정짓고 두 손 크게 휘젓던 모습은 지금도 내게 여전히 영웅의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지금이야 프라이드라든지 케이원 경기처럼 각종 더 처절한 폭력이 운동경기라는 미명하에 티브이중계가 되고 있지만, 프로 레슬링이 가져다 준 통쾌함은 그 이상이었던 듯 싶다.


당뇨와 고혈압 등의 합병증으로 10여년간의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가장 많이 했다는 말이 스승인 역도산 선수가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역도산의 제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으로 밀항했다 붙잡혀 감옥생활까지 해야 했던 그가 당시 일본인들에게 영웅이던 역도산의 보증으로 석방된 후 그의 수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역도산의 고향인 함경도를 한 번 다녀와야만 죽은 뒤에라도 그의 스승 역도산을 하늘에서 편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한탄하던 그는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역도산만큼 좋아했다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기일에 죽었으니 이를 우연으로만 보기에는 무언가 운명의 끈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중독의 연속이다. 호떡 맛에 중독된 나의 행복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질 것이다. 우리 한국이 이 거친 약육강식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는 국제역학관계에서 무엇에 중독되어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한 방은 김일 선수의 박치기가 아닐까? 지혜의 원천인 머리가 마지막 싸움판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 축구대표팀 주장 지네딘 지단이 이탈리아 수비수 마르코 마테라치의 모욕적인 말 한 마디를 박치기로 해결했던 것처럼. 우리를 해치려는 자를 한 방에 잠재워버릴 수 있는 박치기...... 뒤늦었지만 김일 선수의 영전에 머리 숙이며 그의 명복을 빈다. 우리나라에 박치기가 아닌 영혼의 지혜가 넘쳐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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