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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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06.10.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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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평화해결노력, 분쟁야기의 아이러니

 

오래전 유럽 여행 때 스위스 알프스 산마을에 사는 노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아주 평범한 일상사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그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그 노인은 내가 아느냐고 물어본 어느 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오직 자기가 키우고 있는 젖소 몇 마리와 조그마하게 재배하고 있는 포도밭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열심히 목초를 운반하고, 잠시 후면 자기 아들이 트랙터로 그 목초를 실으러 올 것이라며 순박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노인의 얼굴 전체에서 느껴졌던 평화와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만일 사흘 동안만 이 세상에 신문이 없다면, 사흘 동안만 티브이와 라디오가 멈춰 선다면, 세상은 대책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사흘 동안의 그 불가능한 공백을 꿈꿔본다. 어쩌면 세상은 더 평화로워질 수도 있고, 세상의 정신병이, 스트레스가  상당수 회복될 지도 모른다는 불가능의 꿈을 꿔본다. 어쩌다 며칠 업무와 상관없이 시골 여행을 떠나 자연경관과 더불어 지내다보면 세상을 잊고 신문이나 티브이 뉴스를 보지 않고서 지내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평소에 맛보지 못했던 평화로운 마음이 된다. 그 여유로움에 허리끈을 풀게 되고 복장에서부터 행동까지 모두 여유로워지고 넉넉해진다. 그러나 서울로 돌아오는 순간부터 다시 세상은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핑핑 돌아가고 있고, 그 세상의 급류 속에서 또 다시 허우적거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가 많다. 팽팽한 긴장감에 사로잡혀 뜀박질하고 있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오늘도 일찍 일어나 조간신문을 펼쳐들었다. 한미에프티에이 협상과 관련한 한미간의 갈등, 협정체결을 반대하는 시위대와 이를 진압하는 공권력 사이의 피 터지는 대결장면이 커다란 사진과 함께 대문짝만하게 활자화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북한핵문제로 빚어진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안대로 홍콩 당국이 북한 선박을 억류하고 검색하였으나 위반사항을 발견하지 못하였는다는 기사와 함께 한국군이 사정거리 1,000킬로미터의 순항 미사일을 개발하고 1,500킬로미터의 순항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보도도 보인다. 대기업들이 대주주 보호가 어려워질 수 있는 상법개정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는 보도와 함께 여수항에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비축기지완공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보도도 보인다.


여기저기에서 죽 끓듯이 넘쳐나는 사건사고들 속에서 마치 그 어떠한 대열에 동참하지 않고 빠진다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듯한 조급증과 불안감이 저절로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이 매일매일 전개되고 있다. 그렇지만 며칠 동안 시골여행에서 아무 것도 듣지 않고 보지 않고, 오직 자연과 더불어 맑은 공기와 밝은 햇살 속에서 흙을 밟다가 돌아와도 여전히 세상은 그대로 굴러가고 있고, 내 인생에 별반 마이너스가 없는 것을 보면, 그리 조급해 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없이 존재하는 늑대소년들, 수없이 전개되는 왕초들의 호들갑, 새로운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제재와 특혜가 서로 엇갈리며 사람의 넋을 빼놓는 세상, 그렇지만 그 역시 별반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여전히 세상은 어지럽고, 평화스럽기 위해 분쟁을 해결하겠다며 인간들이 만드는 분쟁이 진정한 평화를 앗아가고 있다.


최근 인기를 누리던 젊은 여자 아나운서의 급작스러운 재벌가 아들과의 결혼문제가 세간에 화제가 되더니, 지금은 이중번역이니 대리번역이니 하면서 정지영 아나운서의 명의로 번역 출간된 “마시멜로”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잘못된 번역에 대한 스스로의 잘못을 시인하고 방송을 중단하고 그 동안 받은 인세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오히려 서점가에서는 마시멜로의 판매량이 늘었다는 넌센스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사회이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등 대형서점의 판매량 주간베스트 2,3위를 차지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아연실색해진다. 잘못된 출간이었다면, 번역가 아닌 자가 번역한 책이라면 당연히 그 잘못된 번역가의 이름으로 인쇄된 책이 시중에서 수거되고 절판하여야 하는 것이 출판사의 도리이겠지만, 어디 세상이 그렇게 순진한가? 오히려 마시멜로를 모르던 국민조차 그 책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출판사는 대리번역, 이중번역의 불명예를 선전도구로 삼아 주체할 수 없는 돈으로 보상을 받고 있다. 차라리 불명예의 사건을 만들어 떼돈을 버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게 바로 이 세상이다. 누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모르긴 해도 금방이라도 핵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북한핵실험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것이다. 모든 것을 현상으로 보고, 그에 대한 방비만 하면 되는 것을, 그 현상을 기현상으로 보고 이를 잠재우겠다고 모두들 소란을 피우다보면 세상은 시끄러워지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유야무야되고 마는 웃기는 결과가 도출되는 게 현실세계이다. 국가 경제가 어렵다고 쓴 경기부양책이 오히려 경제불균형을 심화시킨다는 경제학원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세계평화를 이룩하겠다며 방방 뛴 부시정권의 이라크 침공이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오랫동안 미상하양원을 독점하고 있던 공화당 정권에 치명타를 안겨줄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예상되는 미국민 여론에 의하면 공화당이 참패할 것이라고 하니, 마치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가 지리멸렬했던 한나랑과 민주당의 모습하고 다를 바가 없다. 물론 또 다시 시간이 흐르면 반전을 하겠지만, 쓰레기 만두파동이 만두공장을 모두 죽이고, 해충이 발견되었다는 김치파동이 모든 김치공장을 죽이고... 그렇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다시 사람들은 만두를 사먹고 김치를 사먹는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그 만두와 그 김치가 무엇이 달라졌을까? 역시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시간밖에 없는 것일까? 그대가 죽으면 그대 세대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모든 분쟁의 해결을 위해 우리 모두 죽자고 선동할 수는 없지만, 너무 오래 사는 것도 또 다른 사회문제를 야기하니 죽지 못해 산다는 옛말이 하나 그를 것 없다. 스위스 산마을의 그 노인의 삶이 그리울 뿐이다. 행동으로 보여주지도 못하는 막막한 이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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