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저널=이성진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이 법관 임용을 위한 최소 경력요건을 배석, 단독, 합의재판장 등의 업무에 따라 세분화하자는 의견을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1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취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재판 지연 문제의 해법과 관련해 “법관이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는가도 중요하다”며 이런 구상을 제안했다.
현재 판사에 임용되려면 5년 이상의 법조 경력이 필요하고, 이 자격이 2025년에는 7년, 2029년에는 10년으로 점차 늘어난다.
법원은 이 때문에 판사 수급이 어려워진다고 호소해 왔으나,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2021년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조 대법원장은 “대륙법계 국가 중 경력법관 제도를 시행하는 곳은 벨기에와 우리나라 두 곳뿐인데, 벨기에도 사법 지체와 고령화 등으로 국민의 사법 신뢰가 저하돼 입법적 조치를 취했다”며 “배석 판사는 3년, 단독 판사는 7년, 합의재판장은 10년 등으로 담당 업무에 맞는 경력 법관을 뽑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11일, 제17대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 대법원장](/news/photo/202402/745731_82017_588.jpg)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배석판사는 3년 경력 요건이 적당하다고 봤다. 특히 벨기에는 이미 우리나라와 같은 길을 가다가 실패를 인정하고 돌아왔으므로 합리적인 길을 선택할 것을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은 또 법관의 증원과 처우 개선도 재판 지연 문제 해결을 위해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장기적으로 재판 지연 문제에 대처하려면 법관 증원이 절실한데, (판사 정원법 개정안이) 현 국회 내에 통과되지 않으면 너무 늦어진다는 우려를 표했다.
나아가 판사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워라밸도 무시하는 성인군자만을 기대할 수는 없는 만큼 국민이 조금 더 투자해서 대우를 늘리거나 해외 연수 기회나 안식년을 주는 등 힘들어도 법원에 남을 요인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 후 법원행정처가 다시 비대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행정처 인원이 턱없이 부족해 전임 대법원장 시절부터 필요한 만큼 늘리기로 방침을 정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행정처가 일방적으로 일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상대로 설명해야지, 특정 정치세력에 부탁해서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든 정책을 ‘법과 원칙’에 따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전임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원장 추천제를 전면 도입했던 것을 두고서는 “법원 구성원이 법원장을 추천하는 나라는 한 곳도 없고, 법원조직법도 추천제를 전제하고 있지 않다”며 “입법적으로 하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할 수 없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조 대법원장은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제에 대해서는 대법원 규칙으로 할지 입법으로 할지 결정해야 하는데, 3월에 대법관 두 분이 새로 오시면 맞춰서 논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사법의 정치화 문제에 대해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담담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문을 쓸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이런 사건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만큼 국회의원 선거 무효 등은 고등법원에서 1심을 하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 대법관은 지난해 12월 11일, 취임식에서도 재판지연 해소를 위해 법관 증원 등을 강조한 바 있다.
또한 법원 공무원의 전문성과 역할 강화, 재판과 사법 정보의 공개 범위 확대, 사회적 약자의 사법 접근성 향상, 전자소송 및 지능형 사법 서비스 시스템 구축 등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