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45)-사법농단과 직권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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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45)-사법농단과 직권남용
  • 신종범
  • 승인 2024.02.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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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법무법인 태일
신종범 변호사/법무법인 태일

“주문. 피고인들은 각 무죄”

재판 시작 4시간 27분 만에 재판장이 선고를 내렸다. 5년여에 걸친 재판만큼 선고에 걸린 시간도 상당했다. 지난 1월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1부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최초의 사법부 수장 구속기소’라는 기록을 세우며 세간의 관심 속에 5년여 동안이나 이어져 온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제1심은 이렇게 모두 무죄로 결론이 났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각종 재판 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헌법재판소 견제, 비자금 조성 등과 관련하여 모두 47개 범죄 혐의(직권남용, 직무유기, 공무집행방해, 공무상비밀누설 등)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핵심은 각종 재판 개입과 관련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이하 ‘직권남용죄’) 인정 여부였다. 상고법원 도입 등 숙원사업을 달성하기 위해 청와대가 원하는 대로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의 결론을 바꾸게 하거나, 재판을 지연시켰다는 혐의, 일선 법원에서 한정위헌 취지로 위헌제청 결정을 하자 이를 취소하고 재결정하라고 한 혐의,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통진당 소속 지방의회 의원들의 의원직 유지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을 맡은 판사에게 행정처가 특정한 입장을 문건이나 말로 전달했다는 혐의 등이 그것이다.

‘직권남용죄’는 형법 제7장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에 규정되어 있다. 형법은 공무원이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유기한 때 성립하는 ‘직무유기죄’(제122조) 바로 다음에 ‘직권남용죄’를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제123조)라고 규정한다. 법정 최고형이 징역 5년으로 뇌물죄와 같은 중대한 범죄다.

이전에는 ‘직권남용죄’로 처벌받는 사례가 거의 없었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불러온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이 ‘직권남용죄’로 기소되어 일부 유죄가 인정되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관여된 ‘사법농단’ 사건에서도 검찰은 ‘직권남용죄’를 핵심 혐의로 기소하였으나 이번에 제1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최초로 사법부 수장을 구속기소한 사건으로 그만큼 검찰에서 꼼꼼하게 수사하고 검토하였을 텐데 법원에서 무죄가 나온 이유는 우선, 우리 법원이 ‘직권남용죄’의 성립을 매우 엄격하게 인정하고 있는데 기인한다. 우리 대법원 판례는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형사처벌의 대상인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기본권 제한에 관한 최소침해의 원칙을 참작하여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는 전제하에 “‘직권남용’이란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그 권한을 위법·부당하게 행사하는 것을 뜻하고,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경우인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와는 구별된다”라고 한다. ‘일반적 직무권한’이 존재해야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는 것이고, ‘일반적 직무권한’의 범위를 넘는 월권행위는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판례는 “‘직권의 남용’이란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을 불법하게 행사하는 것, 즉 형식적, 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나 그 실질은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를 의미하고, 남용에 해당하는지는 구체적인 직무행위의 목적, 그 행위가 당시의 상황에서 필요성이나 상당성이 있는 것이었는지 여부, 직권행사가 허용되는 법령상의 요건을 충족했는지 등의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라고 하면서, “‘직권남용죄’는 단순히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는 행위를 하였다는 것만으로 곧바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직권을 남용하여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거나 다른 사람의 구체적인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결과가 발생하여야 하고, 그 결과의 발생은 직권남용 행위로 인한 것이어야 한다”라고 하여 ‘직권남용죄’의 성립을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사법농단’ 사건 제1심 재판부는 이러한 판례를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여 “양 전 대법원장에겐 재판에 관여할 일반적 직무 권한이 없다”는 것을 핵심 논거로 하여 위법하게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다거나, 의무 없는 일을 시키지 않았다거나, 재판결과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등의 이유로 ‘직권남용죄’와 관련된 모든 혐의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법농단’ 사건 제1심 판결에 대하여는 대법원 판례를 너무 형식적으로 해석하여 대법원장이 가지고 있는 사법행정권한의 실질적 측면을 도외시하였고, ‘사법농단’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써 법원 스스로 사법부의 독립을 포기하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제1심 판결과 같이 ‘사법농단’ 사건과 같은 고위법관 등에 의한 재판 개입에 대하여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현행 법제도 안에서는 국회를 통한 법관 탄핵이라는 수단이 동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관 탄핵이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 전에 법원 스스로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신종범 변호사/법무법인 태일
http://blog.naver.com/sjb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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