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한국의 군사정찰위성의 발사와 기술만능주의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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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국의 군사정찰위성의 발사와 기술만능주의의 유혹
  • 신희섭
  • 승인 2023.12.0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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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가끔 배가 아프다고 하던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담당 의사는 CT 촬영 기계가 없다며 대학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대학병원이라니 많이 놀랐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 대학병원 대신 어린이 환자를 많이 보는 소아전문병원을 찾았다. 여기 의사 선생님은 아이 때 흔한 일이고 관장하면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실제 관장으로 나았다.

고가의 좋은 의료 기계는 정확한 원인 규명을 돕는다. 의료분쟁이 잦아지면서 더 정확한 진단이 중요해진 것도 확실하다. 하지만 정밀한 기계 없이는 판단하지 않는 의사를 보면서 의술이 인술에서 기술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의료계를 비판하려고 쓴 글은 절대 아니다. 과학주의 방식이 틀렸다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복잡성과 전문성이 작동하는 세상이니 정확한 것이 중요하다. 객관적인 것도 중요하다. 확실히 의료라는 과학영역은 그렇다.

2023년 12월 2일(한국 시각) 한국은 군사정찰위성 1호기를 발사했다. 이번 군사위성의 해상도는 30cm급이라고 한다. 해상도가 높아 사람과 차량을 식별하는 수준이며 획득된 정보는 군사적 용도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한국은 2025년까지 4개의 위성을 더 발사해 군사 정찰 능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2004년 4월 22일 북한 룡천의 폭발 사고와 비교해 보면 20년 만에 얼마나 많이 변화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김정일을 태운 열차가 멈춘 룡천역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사태를 파악하고 싶었던 한국 정부에게는 당시 아리랑 위성이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런데 1999년 발사한 다목적 실용위성인 아리랑의 해상도는 6.6m였다. 해상도 1m 미만이 기준인 군사 정찰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우리 정부가 사서 쓰던 미국 상업회사의 영상은 해석이 필요해 다시 상업회사에 보내지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손으로 만든 30cm급 위성을 우리가 해석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국의 군사정찰위성 확보는 여러 의미가 있다. 첫째, 대북 전략정보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부분적으로는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아직 위성 개수도 부족하고, 운용 경험도 부족하니 미국의 정보 자산은 여전히 한국에 소중하다. 둘째, 북한의 핵 위협을 사전에 탐지하고 제거하는 ‘킬체인(kill-chain)’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이는 도발 억지를 도울 것이다. 셋째, 한국의 우주 분야 특히 군사 분야에 대한 능력을 비약적으로 강화한다. 발사체 기술 등이 보완되면 한국의 우주 공간 활용 분야도 넓어질 것이다. 기술과 자본이 있어야 개척할 수 있는 우주 분야로 한국의 지정학이 확대해 가는 것이다. 넷째, 위성을 띄우기 위한 제반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것 역시 향후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위성 기술 수준이 높아지고 군사 정찰 능력을 강화하는 것은 군 지도자나 정치지도자가 판단할 때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정확한 정보는 전략적으로 상대방을 압박하기 좋기도 하다. 하지만, 기술 발전에는 명암이 모두 있다. 뒤따르는 부작용이 없을 수 없다.

첫째, 정찰 기술의 발전은 상대국의 공격 기술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위성탐지를 어렵게 만드는 지하 요새 구축, 극초음속 미사일, 잠수함 발사 미사일의 개발뿐 아니라 위성 자체를 요격하거나 먹통으로 만드는 기술까지. 상대국은 더 저렴한 비용으로 위성을 무력화하려고 할 것이다. 그 결과는 고통스러운 군비경쟁.

둘째, 정찰 기술이 발전하면서 상대 위협을 먼저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 강조되면 선제공격(preemptive attack)의 유인이 커진다. 도발자의 무기가 빠른 속도의 공격무기고 상대가 내가 먼저 공격할 것으로 예상이 되면 잠재적 도발자는 먼저 나를 공격할 수 있다. 즉 북한의 위협을 탐지하고 우리가 킬체인을 사용하려고 하면, 북한이 먼저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안보 불안을 심화시킨다.

셋째, 위기가 고조되는 찰나의 순간, 이 상황이 피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여야 하는지 결정은 인간의 몫이다. 절대 기계에 맡길 수 없다. 죽든 살든 인간의 의지와 판단이 개입된다. 문제는 기술이 이런 판단력을 약화할 수 있다.

한국이 군사정찰위성을 가졌고, 그래서 오히려 전쟁을 조장한다는 주장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한걸음은 다른 국가들의 다른 한 걸음을 내딛게 만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 징후가 선제공격인지와 다음 단계인 전쟁으로의 확전 여부 판단은 인간 몫이다. 정치에서 리더십은 인술이지 기술이 더더욱 아니다. 혹시 모를 기술만능주의를 경계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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