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81)-‘쉽게 쓰여진 대국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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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81)-‘쉽게 쓰여진 대국평’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3.12.08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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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변호사시험법은 로스쿨 수료 후 5년간 5회로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로스쿨에 재입학해 수료를 해도 다시 응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는 절대적 응시 금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위 오탈자들은 10년 여의 시간 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법조인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사랑샘재단(이사장 오윤덕)은 제도의 사각에 놓인 오탈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200만원의 마중물 지원금이 지급되며 지원금은 여행, 새로운 진로를 위한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경험과 활동 등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지원 대상자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약속이 되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전을 결심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경험과 사색 등을 담은 에세이 1편을 1개월 내에 사랑샘재단에 제출하면 된다. 에세이의 형식이나 길이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익명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지원금 신청 시에는 ①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 참여 동기 또는 계획의 요지를 기재한 신청서 1통(사랑샘재단 홈페이지 소정양식) ② 로스쿨 석사 학위증 등 변호사시험 평생응시금지 해당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③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사본 ④ 온라인 송금 수령 계좌번호 ⑤ 에세이가 익명으로 발표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이를 사전에 신청서에 기재해야 한다.

사랑샘재단의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에 관해 문의사항이나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이메일 ydoh-law@hanmail.net, 전화 02-3474-5300으로 연락을 하면 된다. -편집자 주

<쉽게 쓰여진 대국평>

유명을 지향하는 무명(필명)

1. 들어가며

처음 시작하는 입문자가 두는 바둑이든 당대 일류 명인이 두는 바둑이든 첫수와 마지막 수가 있기 마련이다. 로스쿨, 변시라는 나의 바둑은 이미 종국에 이른지 오래지만 이번 기회를 빌려 진 바둑을 복기해 보려 한다.

2. 초반전

니는 왜 법조인이 되려 하였을까.

거창한 포부 따윈 없었고, 그저 어려운 사람을 돕고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알량한 생각으로 법조인의 꿈을 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청소년기 장래희망 정도의 막연한 감상을 품었기에, 법과대학에 입학하기는 하였으나 일부 관심 분야만 다소 열심히 공부하였을 뿐 왜 배워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는 분야는 건성으로 공부하였으며, 남은 시간을 각종 사회과학서적 탐독에 열을 올리면서 학부 생활을 허송세월로 보내었다. 사법고시 공부도 그저 친구들이 하니까 나도 해보았을 뿐이었다.

즉, 바둑판 앞에는 앉게 되었으나 앞으로의 대국을 어떻게 풀어갈지 명확하고 진지한 고민 없이 남들이 두는 포석과 정석, 그것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속기로 두어갔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아직 입시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던 로스쿨 초기 기수에 별다른 준비 없이도 입학하는 요행을 누리게 되었다.

이처럼 나의 바둑은 남들이 두는 수를 손 따라 두다 보니 초반에 귀에서 돌 몇 점을 잡는 요행을 얻기도 하였지만, 대국 전체의 관점을 보면 귀 쪽에 틀어박혀 중앙에의 발전성을 보이지 못하는 등으로 이미 대국 초반부터 대사를 그르친 상황이었다.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을 뿐.

3. 중반전

로스쿨에 입학해서도 다른 동기, 선후배들처럼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갖고서 치열하게 지내지 못하였다.

법조인 예비 양성이란 거창한 이름을 걸고 세운 로스쿨이었지만 (지금도 같은 생각이지만) 실무와 관련 없는, 다소 심하게 표현하면 지적 허영의 산물이라고 보아도 좋을 정도의 학설과 이론을 위주로 가르치던 법대 교수들이 로스쿨 교수로 직함만 바꿔 학부 시절 그대로 가르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는 로스쿨 초기라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았던 과도기의 상황이고 내가 몸담았던 학교에서 겪은 나의 주관적 경험에 따른 회상이므로 10년이 넘은 지금은 개선되었으리라 믿는다.

게다가 나는 당시 변시 합격률 보장과 맞바꾼 학사 관리 엄정화라는 제도로 이뤄진 가혹할 정도의 상대평가가 가져온 비인간성에 버티지 못하고 로스쿨을 자퇴할까도 생각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 진학했던 로스쿨에 이미 투자한 시간과 돈이 아쉬워 졸업은 하자, 어떻게든 변시는 합격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지옥 같던 로스쿨 생활을 참아 냈다.

바둑의 고수는 이미 그르친 돌은 과감하게 사석작전 바꿔치기를 생각하거나 버릴 땐 버리더라도 교환으로 이용하여 최대한 효율을 뽑아내어 상황을 정리, 타개하는데 결국 나는 버려야 될 돌을 미련과 본전 생각, 안일한 희망을 갖고서 끝까지 붙들었고 결국 5수까지 하는 우를 범하였다. 봉수위기라 하였을 텐데….

4. 종반전

첫 불합격 때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로스쿨 생활을 이처럼 불성실하게 보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 사실 합격자발표일 훨씬 이전부터 재수에 들어갔다.

학사 관리 엄정화와 가혹한 상대평가, 졸업하기 위해 억지로 채워야 했던 학점 이수라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대로 수험공부를 했고 모의고사에서도 중상위권을 쭉 유지하여 이번엔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재시 변시 수험장에 들어갔고 마지막 선택과목 직전 민사 사례형 시험을 마쳤을 때 이번에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을 가졌다.

차라리 민사 사례형을 다소 망쳤다면 선택과목에서 집중할 수 있었을까.

나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선택과목을 치렀고, 평소 모의고사에서 최우수 답안으로 선정되고 내내 최상위권 점수를 받았던 선택과목에서 문제를 오독하여 자세히 서술한 1문에서 결론이 틀리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다. 그렇게 1문을 잘못된 내용으로 길게 서술한 탓에 2문은 서술시간이 부족하여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는 시간 관리의 잘못이 겹쳐 과락 점수를 받게 되었고 결국 합격선을 넘기고 선택과목 과락으로 불합격하였다.

대국 종반에 공배를 메우다가 단수를 보지 못하여 자충수를 두어 대마가 잡혔달까. 신물경속의 격언을 마음에 두지 않았달까.

비록, 지금도 가끔은 재시 선택과목 과락 불합격했던 날을 악몽으로 꾸긴 하지만, 민사 사례형 시험을 잘 보았다는 흥분을 다스리지 못하고. 선택과목이 평소 점수를 벌어주는 효자 과목이라고 얕잡아보고 방심했던 나의 잘못이고 나의 진짜 실력일 뿐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할까.

사실 재시 불합격으로 나의 변시 수험생활은 실질적으로 끝이 났다.

다들 선택과목 과락으로 불합격하였으니 3시 땐 합격할 거라 응원해 주었지만, 재시 수험 기간에 앞으로 다시 하지 못할 정도로 이미 열정과 의지를 갈아 넣었었기에 솔직한 심정으로 더는 수험생활을 버틸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변호사가 되어 사회 각지에서 활동하는 선후배 동기들의 모습에 주눅이 들고 자격지심이 생겨 마음이 꺾여버리는 등 내 마음의 크기가 작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로 나는 준비 없이 로스쿨에 입학하였기에 로스쿨 생활비로 금융기관에서 생활비를 융통하였는데, 금융기관에서는 재시 수험 기간까지는 상환을 유예하여 주었지만 3시부터는 매월 일정액의 변제를 요구하였다.

이에, 생활비와 수험비용, 변제금 마련을 위해 3시부터는 마냥 수험생활에만 집중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취업과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없었기에, 여름까지는 노가다라고 불리는 막노동판에서 일하며(당시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덕분에 나는 내 또래의 먹물들에 비해 건설 분야의 가장 밑바닥 분야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고, 이는 나중에 실무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기 마련인 듯하다) 자금을 모아 가을부터 몇 달 공부하여 시험장으로 가는 식으로 3시~5시의 수험생활을 보내었다.

나의 노력과 재능이 부족한 탓이었겠으나 이러한 수험으로는 매번 합격선에서 20점 정도 모자라는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오탈자라는 사회적 신분(?)을 득하게 되었다.

5. 종국과 평가

수험생활을 마치니 아무것도 없는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버렸지만, 일단 아는 것은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에 변호사사무실 직원으로 취업하게 되었고 비록 사회적 위치는 다르지만 로스쿨에서 배운 지식을 실무에서 사용해 보는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나의 처지를 이해해 주고 채용해 준 대표와 좋은 동료들 덕분에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어느덧 일 잘하는 사무장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인지 계속하여 고민이 쌓여갔고, 30대까지 별다른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 대인관계의 경험과 노하우가 적다 보니 일 자체보다는 사람들을 대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느껴, 좋은 여건의 환경이었지만 아쉽게도 일을 그만두고 쉬게 되었고 이제 인생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여 비록 유사직역이지만 다른 자격증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바둑판에 놓은 모든 돌에는 다 의미가 있는 법이다. 폐석과 사석에도 그 대국 내에서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고 바둑을 끝내고도 그렇게 잘못 두어진 수를 복기하며 실수를 줄여나가는 의미가 있다.

나는 로스쿨 제도에서는 실패한 폐석이거나 버림돌인 사석의 처지가 되었지만, 부디 당국에서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실태와 현황을 잘 파악하여 오탈 위기에 놓인 수험생들, 오탈할 것이 예정된 재학생들을 조력하는 데 활용하면 좋겠단 생각이다. 그러나 당국은 오탈자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고 무시하는 것이 제도의 안착에 더 유의미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고, 그런 분석이 자칫 ‘오탈자 구제 논 ’의 단초가 될까 주저하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한국 사회와 기득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탈자 구제는 현실성이 0에 수렴한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에 그런 것을 바라지 않고, 다만 나와 같은 길을 걷게 될 사람이 앞으로 1명이라도 줄기를 바란다).

로스쿨, 변시에 관한 나의 바둑은 패국으로 끝이 났지만 이는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두어진 몇 판의 대국이었을 뿐 내가 둘 바둑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더 좋은 내용과 결론도 승국을 얻어가는 새로운 바둑을 두어나가고 싶다. 아직 내가 두어 가야 할 바둑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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