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2월, 크리스마스, 그리고 네 번째 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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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2월, 크리스마스, 그리고 네 번째 현자
  • 최용성
  • 승인 2023.12.0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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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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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여서 누구에게나 특별한 의미가 있다.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 신자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달이어서 더 뜻깊다. 예수가 역사적으로 실존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논란은 있다), 12월 25일이 실제 예수가 태어난 날인지는 확인된 바 없다. 서구 교회에서 그날을 예수의 생일로 기억하여 온 전통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기독교 국가가 아님에도 크리스마스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다음 해인 1949년부터 ‘기독탄신일’이라는 명칭으로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49년 지정된 9개의 법정 공휴일 중에 유일하게―개천절은 종교적 의미보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에 성격이 다르다―특정 종교의 축일이었기 때문에 문제 제기가 따랐을 법하지만, 조용히 넘어가다가, 1973년 용태영 변호사가 부처님 오신 날도 공휴일로 지정하여야 한다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일었고 결국 1975년 석가탄신일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성탄절이나 석가탄신일을 법정 공휴일로 삼는 데에는 헌법적 문제가 있다. “누구든지…종교…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한 헌법 제11조 제1항,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한 헌법 제20조 제2항에 위배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도 달라졌다. 1975년만 해도 국민 10명 중 8명 넘게 기독교 또는 불교 신자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용인될 여지가 컸다. 하지만 2022년 종교인구를 보면 개신교 20%, 가톨릭 11%, 불교 17%를 합한 수보다 많은 51%의 국민은 종교가 없다. 위헌 논쟁이 점점 심화할만한 사회적 여건이 아닐 수 없다. 국경일 지정이나 크리스마스 장식을 둘러싼 위헌소송 사건이 각하되었지만, 논란이 계속될 것이다.

이처럼 헌법적 논란이 있는 날이지만, 나는 여전히 크리스마스가 좋다(12월이니 부처님 오신 날 이야기는 미루자). 비록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마구간이라는 가장 초라한 장소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 이야기가, 가족이나 이웃은 물론이고 원수마저 사랑하고 구원하려고 한 예수의 삶과 죽음의 행적이 세상에 남긴 의미가 참으로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날짜가 한 해를 반성하고 새해를 새롭게 맞이하려는 마음과 잘 맞는 시기여서 더 좋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마다 영화 한 편을 떠올린다. 베들레헴의 별을 따라나선 3명의 현자 즉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경배한 이야기는 성경을 통하여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네 번째 현자가 있었다.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가던 그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느라 준비한 보물을 쓰면서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예수를 만나기 위하여 평생 돌아다니지만, 그때마다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돕느라 번번이 예수를 만나지 못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 예수를 돕기 위한 마지막 보물마저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데에 사용한다. 구세주가 십자가형에 처한 사실에 절망하며 죽어가던 그 앞에, 부활한 예수가 나타난다. 오랫동안 만나려고 찾아 헤맸지만, 이제는 바칠 선물이 아무것도 없으니 용서해달라는 그에게 예수는, 자신이 이미 선물을 받았다면서, 마태복음에서 나오는 유명한 말을 한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렇게 네 번째 현자는 편히 죽음을 맞이하며 구원에 이른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세계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누구인지 살펴 기독교인들이 앞서 헌신하고 돌볼 때, 그리고 그 선한 영향력이 사회적으로 확산하여 소외되거나, 곤궁하거나, 핍박받거나, 고통받는 이들, 절망에 빠진 이들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공감과 지지 속에 힘을 얻게 할 때 크리스마스는 종교적 논란을 초월한 보편적 축일로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이 인류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간직할 크리스마스 정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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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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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2023-12-09 11:36:16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참으로 훌륭한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용성 변호사님, 항상 응원합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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