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47-이사의 의사결정 책임: 차라리 기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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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47-이사의 의사결정 책임: 차라리 기권하라?
  • 손호영
  • 승인 2023.12.0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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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회사의 이사 자리는 막중합니다. 이사회의 일원으로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권한이 큰 만큼, 책임도 큽니다. 단지 이사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위배할 경우, 상당한 액수의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도 있습니다.

태백시가 2001년 리조트 사업을 위해 태백관광개발공사를 설립(태백시 지분 57.4%)하면서 골프장, 스키장, 숙박시설 건설·운영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자금난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태백시는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주식회사 강원랜드를 떠올렸습니다. 강원랜드가 만들어질 때, 태백시도 출자했습니다. 그리고 합작출자계약에서 정한 바에 따라 태백시는 강원랜드의 이사를 지명해 두었습니다. 이에 태백시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우리가 지명해 둔 이사를 통해 강원랜드로 하여금 태백시에 기부하게 하자.”

구체적으로 이 아이디어는 ‘강원랜드가 태백시에 폐광지역 협력사업비로 150억 원을 기부하되 그 기부금의 용도를 이 사건 공사의 긴급운영자금으로 지정하여 기탁하게 하자.’는 기부안으로 이사회에 발의되었습니다. 기부란 ‘무상’이기 때문에, 강원랜드가 득 볼 것이 없어 보이는 이 기부안에 이사회는 동요합니다. 기부안의 타당성에 대한 의견대립이 있었고 배임 이슈를 검토하면서 몇 차례 보류됩니다. 하지만 결국 재심의가 이루어져 재적이사 15명 중 12명이 출석한 가운데 7명 찬성, 3명 반대, 2명 기권으로 결의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강원랜드는 150억 원을 태백시에 기부하였습니다.

강원랜드가 이 기부안 결의를 나중에 문제 삼은 것은 2년 뒤입니다. 강원랜드는 당시 이사들 중 찬성과 기권을 한 이사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를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6다260455 판결). “이 사건 결의에 따른 기부행위가 폐광지역 전체의 공익 증진에 기여하는 정도와 원고에 주는 이익이 그다지 크지 않고, 기부의 대상 및 사용처에 비추어 공익 달성에 상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고 3(이사) 등이 원고(강원랜드) 이사회에서 이 사건 결의를 할 당시 위와 같은 점들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액수이겠지요. 회사에 150억 원의 손해를 입힌 이사에게는 얼마의 책임을 물으면 될까요? 태백시가 지명한 이사는 20%의 책임을 지게 되었고 다른 이사는 10%의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액수로 산정하면 무려 30억, 15억입니다. 각 이사가 개인적으로 이를 배상해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만 이 판결에서는 ‘기권’한 이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명시하였습니다. 문제된 이유는 상법 399조 3항에서 “이의를 한 기재가 의사록에 없는 자는 그 결의에 찬성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는데, 이 사건에서는 ‘기권’의 의사가 명시적으로 기재되었으므로 ‘이의를 한 기재가 의사록에 없는 자’로 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사가 가지는 권한에만 주목하다가 종종 그 책임의 무거움을 잊는데, 이 판결은 그 무거움을 새삼 일깨워준다고 할 것입니다.

여담으로 회사 판례를 볼 때는 항상 세금 이슈를 살펴보면 좋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태백시에 대한 ‘기부’가 있었기에, 강원랜드는 이 사건 기부금을 해당 사업연도 손금에 산입한 후 법인세를 신고·납부하였습니다(법인세법 24조 2항 1호). 그러자 영월세무서장은 “강원랜드의 기부는 실질적으로 태백시에 대한 것이 아니라 태백관광개발공사에 대한 우회 지원 아닌가?”라는 의문을 표시하면서 기부금 전액을 손금불산입하였습니다(법인세법 52조 부당행위계산부인). 어쩌면 강원랜드는 법인세 절세를 위해 태백관광개발공사에 바로 돈을 주지 않고, 태백시에게 기부한 뒤 태백시에서 다시 태백관광개발공사에게 돈이 넘어가게 설계(?)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강원랜드 손을 들어주었습니다(대법원 2018. 3. 15. 선고 2017두63887 판결). “원고의 이 사건 기부행위는 이러한 기부금품법의 규정에 따라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 상대방 및 수혜자를 태백시로 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거기에 별다른 조세회피의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이 사건 기부금은 손금산입이 허용되는 법정기부금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그 최종적인 결과만을 내세워 이 사건 기부행위와 태백시의 자금지원행위를 하나의 행위 또는 거래라고 섣불리 단정하여 과세대상으로 삼아서는 아니 된다.”

강원랜드의 기부금 사건은 이렇게 다방면으로 이슈가 되었고 여러 판결까지 나왔습니다. 한번 살펴봐 두면 좋을 것 같아 소개해 보았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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