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79)-‘새로운 꿈을 향한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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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79)-‘새로운 꿈을 향한 여행기’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3.11.24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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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변호사시험법은 로스쿨 수료 후 5년간 5회로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로스쿨에 재입학해 수료를 해도 다시 응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는 절대적 응시 금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위 오탈자들은 10년 여의 시간 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법조인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사랑샘재단(이사장 오윤덕)은 제도의 사각에 놓인 오탈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200만원의 마중물 지원금이 지급되며 지원금은 여행, 새로운 진로를 위한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경험과 활동 등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지원 대상자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약속이 되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전을 결심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경험과 사색 등을 담은 에세이 1편을 1개월 내에 사랑샘재단에 제출하면 된다. 에세이의 형식이나 길이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익명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지원금 신청 시에는 ①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 참여 동기 또는 계획의 요지를 기재한 신청서 1통(사랑샘재단 홈페이지 소정양식) ② 로스쿨 석사 학위증 등 변호사시험 평생응시금지 해당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③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사본 ④ 온라인 송금 수령 계좌번호 ⑤ 에세이가 익명으로 발표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이를 사전에 신청서에 기재해야 한다.

사랑샘재단의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에 관해 문의사항이나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이메일 ydoh-law@hanmail.net, 전화 02-3474-5300으로 연락을 하면 된다. -편집자 주

<새로운 꿈을 향한 여행기>

정우성(가명)

근래에 내가 주로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영화 예술이다. 과학이 귀납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진리를 추구하고, 철학이 연역적 사념을 주된 도구로 진리에 접근하려 노력한다면, 예술은 이 둘 어디에도 확실히 속하지 않는 독특한 방식으로 역시 진리를 향해가는 것 같다. 덕분에 예술의 힘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에서 나오게 된다. 예술 중에서도 영화는 그 역사가 백 년 남짓으로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예술 분야보다 빠르게 발전하여 현재는 미술, 음악과 같은 종래의 장르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고유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나는 영화의 여러 작법 중에서도 누벨바그의 사조를 특별히 좋아하는데, 이는 196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시작된 새로운 예술 경향으로 저예산, 즉흥성, 아마추어리즘과 사실주의 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즉, 통상의 상업영화처럼 정형화된 시나리오에 따라 연극적인 특색이 강한 연기를 수단으로 영화를 연출하는 것에서 탈피하여 우연성에 기반한 흐릿한 네러티브를 통해 감독이 가진 주제 의식을 표현해 내는 것이다.

여기서 ‘우연성’의 시발점으로 ‘장소’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즉, 실제의 현실 세계에서 우리의 인생이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다르게 진행되듯이, 영화 속 가상 세계에서의 등장인물들의 삶도 그들이 위치한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따라서 ‘장소’에 대한 관심이 영화 창작의 시작이 되는 셈인데, 이번에 영화적 장소의 연구와 사색을 위해 내가 선정한 곳은 ‘통영’이다. 통영은 역시 큰 틀에서 누벨바그의 전통 아래에 있는 홍상수 감독이 그의 영화 <하하하>를 촬영한 곳이며 박경리, 윤이상, 김춘수 등의 예술가들을 배출한, 예술적 감성이 진하게 어린 장소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떠나기 전날 밤 통영의 감성을 제대로 느껴보고자 일부러 돈을 좀 더 주고 바닷가 전망이 좋은 곳으로 숙소를 예약했다(이후에 말하겠지만 이 결정은 결과적으로는 불필요한 것이 돼버렸다). 그리고 홍상수의 영화 <하하하>의 촬영지를 중심으로 방문 계획을 세운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도로 위에서 다섯 시간을 지루하게 보내고 난생처음 도착한 통영의 첫 느낌은 한마디로 ‘을씨년스러움’이었다. 금요일 저녁임에도 마치 유령 도시처럼 사람이 정말 없었다. 그렇게 우리나라가 서울공화국임을 새삼 느끼며 예약해 놓은 숙소로 가서 피곤함에 첫날은 바로 잠을 청했다.

둘째 날 이른 아침에 숙소를 나와 영화 속 문소리의 집이 있는 동피랑 언덕길로 향했다. 동피랑은 산동네 사방을 벽화들로 장식해 놓은 곳인데, 예전 부산에서도 비슷한 장소를 보았던 것 같다. 아마도 이 벽화라는 놈이 출렁다리와 더불어 요즘 지자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관광객 유인 수단인 모양이다. 길지 않은 길이지만 경사가 높아 힘들게 올라간 문소리의 집. 허나 이게 웬일! 집은 카페로 진작에 리모델링되어 영화 속 모습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실망한 채로 내려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소로 애용되었던 C 카페로 향했다. 이 카페는 동피랑에서 가까운 중앙시장 근처에 있었는데 지나는 길옆으로 예지원과 유준상의 숙소로 등장하는 N 호텔이 보인다. 알고 보니 모든 촬영지가 옹기종기 전부 인접하여 모여 있었다. ‘번거롭게 이동하기 귀찮으니 전부 근처에 몰아 한방에 촬영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3층에 위치한 카페로 올라갔다.

카페는 시인인 어느 여사님이 경영하고 있었는데 영화 이야기를 꺼내니 아주 반갑게 촬영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신다. 10년도 더 된 영화임에도 바로 어제 일처럼 표정이 아주 신나 보이신다. 나같이 영화를 보고 찾아오는 이들이 아직도 종종 있다고 한다. 하얀색 피아노를 비롯하여 영화 속에 등장했던 여러 소품들을 구경하고 내가 평소 궁금했던 촬영과 관련된 정보도 얻을 수 있어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저녁이 다 되어 영화에 등장하는 복어 요릿집에 가볼까 했는데 때마침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보았던 복 먹고 사망한 어느 청년의 끔찍한 비극이 떠올랐다. 찝찝한 마음에 망설이다 나도 모르게 해물 칼국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확률론을 거스르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했는지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인간의 목숨에 대한 집착은 이처럼 끈질긴 법이다.

다음 날 아침. 벌써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그러고 보니 바다 전경으로 특별히 잡은 방인데 발코니로는 나가보지도 않았다. 항구를 끼고 계속 돌아다닌 덕분에 딱히 방안에서 바다를 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방안에서 보이는 발코니가 마치 사각형의 영화 스크린처럼 보인다. 영화 속 이야기가 진짜 인생의 투사물에 불과하듯이 발코니에서 보는 바다도 진짜 바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번 여행에 대한 감상을 정리할 시간이다. 숙소 의자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선 나는 이곳 통영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에게는 이곳이 그저 그런 지방의 작은 항구일 뿐이다. 이런 곳을 동양의 나폴리라고 하다니 과장이 참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곳 통영을 일컬어 홍상수 감독은 영화를 찍고 싶은 욕구가 쏟아져 나오는 특별한 장소라 한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 감정이 메말라 버린 걸까? 아니면 역시 영화계의 거장답게 홍 감독은 무언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유별나게 세밀한 감정 구조를 가진 것일까?

잠시 고민을 했는데 의외로 정답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애초에 서로 다른 사람이 하나의 장소를 두고 똑같은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홍상수 감독은 나름의 추억과 의미가 이곳에 있으리라. 나는 그런 것들이 없으니 통영이 그저 그런 하나의 항구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나만의 장소를 찾아야 한다.

사랑샘 재단의 배려 덕분에 오랜만에 가져본 여유로움이었다. 이렇게 사회 곳곳에 유익한 기회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부럽고도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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