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지막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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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지막 수업
  • 박상흠
  • 승인 2023.11.24 10: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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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들)
박상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들)

독일과 전쟁에서 패전한 프랑스의 알자스지방은 이제 프랑스어 수업이 금지된다. 평소 엄격한 문법수업을 하시던 아멜 선생님이 그날따라 엄숙해지셨다. “여러분, 내가 여러분을 위해서 수업을 하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알자스와 로렌 주에서는 이제부터 독일어 외에는 가르칠 수 없다는 명령이 베를린으로부터 시달되었습니다. 새 선생님이 내일 도착하십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프랑스어의 마지막 수업이 됩니다. 아무쪼록 주의해서 들어주세요.” 아멜 선생님은 프랑스어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렷하고 견실한 말이며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그러나 프란츠의 귀에는 이제 학교 지붕의 비둘기 소리도 독일어로 지저귀는 듯하다.

1871년 알자스지방에서처럼 모 국립대학교의 프랑스 수업이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해있다. 유엔의 공식 언어이며 인권의 모국어로 알려진 프랑스어 학과의 교육이 멈추게 되는 것은 마지막 수업에서의 슬픔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대학 당국이 영어와 IT 교육의 경쟁력을 프랑스어보다 더 높이 평가한 것은 곧 프랑스를 패전으로 몰아간 것 아닐까. 문화의 다양성과 언어의 풍요로움은 국가의 문화를 살찌게 하고 타국과의 외교 관계를 확장하는 것임에도 단순한 경제 논리로 학과 폐과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총과 무기를 들고 프랑스를 휘두르는 독일의 횡포와 크게 다를 바 없다면 지나친 말로 들릴지 모르겠다. 게다가 우주산업 강국으로서 그리고 인터넷의 뿌리인 인트라넷의 종주국인 프랑스의 진면목을 근시안적 잣대로 무너뜨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프랑스어를 사랑하고 말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대학의 결정을 독일 병정과 같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가혹한 평가가 아닐듯하다. 한국 법원은 재학생이 졸업할 때까지의 학과 유지를 정당성의 기준으로 제시하나 학과가 사라지게 되면 졸업생들의 신분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어과가 사라지게 되면 그들의 모국은 사라져 버리는 셈이며, 이방인으로 취급될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까뮈의 이방인에서 주인공이 찬란한 태양 빛 아래 이방인을 살인하고 법정에 서게 되자 주인공은 그곳에서 이방인으로 취급받게 된 사실을 떠올려보자. 주인공은 변호인에게 의견을 전달했지만 무시했고 검사는 엄마의 장례식장에 나타나지도 않고 소식을 전해 듣고도 울지 않았던 그를 기소했으며 판사는 이를 받아들여 사형을 언도했다. 프랑스어를 무시한 한국은 한국어를 외면하는 프랑스를 마주하게 될 수 있다. 뜨거운 한류열풍이 불고 있는 프랑스를 이방인 취급하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

무엇보다 폐과를 위해 학칙을 개정하고 이를 위한 사전절차로 사전공고와 심의 및 공포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학과의 주인공인 학생들의 의견수렴을 요식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고 근로기준법의 논리에 따라 교원들의 동의만 있으면 유효하다는 법이론은 학생들을 이방인 취급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세계화의 시대에 다양성을 고양하고 다양한 민족과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서라면 경쟁의 논리만 작동하는 대학교가 아니라 인문학의 순수성과 토양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대학경영이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언어는 생각의 그릇이다. 프랑스어가 인류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자유와 창의성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자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멜 선생과 달리 마지막 수업에 동의한 교원들로부터 버림받아 이방인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K대의 프랑스 교육 전공 재학생들을 돕기 위해 법정에 나선 필자에게 프랑스 정부의 협조와 한국 법원의 응원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박상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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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2023-11-24 18:05:09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참으로 훌륭한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변호사님, 항상 응원합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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