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한국에서 지역주의 투표행태는 바뀌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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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국에서 지역주의 투표행태는 바뀌었는가!
  • 신희섭
  • 승인 2023.11.1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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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한국 유권자들의 투표 기준은 무엇일까? 이는 비교정치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이다. 투표가 무엇에 영향을 받는지를 파악해야 정당이 선거 전략을 짤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 유권자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정치가 어떤 동력으로 돌아가는지를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유권자들의 투표에서 지역주의 투표행태는 유명한 주제다. 영남과 호남을 본적지로 하는 유권자들은 각각 영남과 호남을 대표하는 정당에 표를 던져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 대통령을 직선으로 선택하는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들이 사용한 선거 전략인 지역주의 투표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결과로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지역주의에 기초한 투표행태는 여전히 나타났다.

그럼 현재도 1987년의 지역주의 투표행태는 동일하게 살아서 작동할까? 지역주의를 망국의 병으로 본다면 여전히 국가를 분열시키는 특정 지역을 지지하고 다른 지역을 증오하는 형태의 정서적 지역주의는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비교정치학의 투표 연구에서는 지역주의와 관련된 세 가지 변화가 나오고 있다. 첫째, 한국 유권자들은 지역주의 보다는 이념에 기초해 투표한다는 것이다. 한국정치에서 정당의 지지 확보 전략으로 지역주의보다 이념이 더 먹힌 것은 2002년 대통령 선거와 2004년 국회의원선거를 기점으로 한다.

2002년 선거에서 민주당의 대선후보였던 노무현 후보는 ‘노사모’라는 조직을 이용해 초반 열세를 뒤집고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정당 보스의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유권자와 당원의 지지로 당선이 결정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는 진보라는 이념과 젊은 세대의 지지를 기반으로 표를 확보한 것이다. ‘3김 정치’의 보스 정치가 끝이 나고, 지역주의 동원전략이 이념과 세대 동원전략으로 변화한 것이다.

2003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2004년 총선에서 역풍으로 돌아왔다. 자기 정당 지도자인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 소추한 민주당을 대신해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졌고, 열린우리당은 호남지역에 기초한 지지를 확보하기보다는 ‘진보’라는 이념을 표방했다. 선거 전략은 성공적이어서 열린우리당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총선에서 의석 과반수를 넘겨 152석을 확보했다. 이념이 지역주의를 넘어선 것이다. 이 선거를 계기로 한국의 실질적 양당제(유효 정당 수에 근거)는 보수적 이념 중심 지역주의선거 전략에서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 지향적 정당체계로 변화한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정당 양극화의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둘째, 지역주의 투표의 근거도 정서에서 합리성으로 달라졌다. 1987년 부산·경남과 대구·경북과 호남과 충청으로 갈렸던 지역주의 투표는 1990년 ‘3당 합당’으로 한 번 변한다. 3당 합당은 반호남 연합정당을 만들어 영남을 단합하게 하고 충청 지역주의를 완화한다. ‘영남 vs 호남’의 대결이 된 것이다. 이 시기 지역주의 투표는 유권자의 출신 지역 혹은 거주 지역에 대한 호감 여부 또는 지역 정서 때문에 설명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와서 지역주의 투표는 다른 정당과의 비교에 따른 합리적 선택이라는 해석이 등장해 정서적 투표를 대체하고 있다. 유럽처럼 이념에 기초한 정당 선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자신에게 더 유용한 정책을 만드는 지역에 기초한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특정 지역이 무조건 좋고 다른 지역이 무조건 혐오 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이 유권자에게 더 정책적으로 유용하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 좀 더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셋째, 지역주의 투표의 범위도 변화했다. 최근 연구들은 지역주의 투표행태가 나타나지만 ‘영남 vs. 호남’의 대립이 아니라 ‘대구·경북과 호남’의 대립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부산과 경남지역에서 지역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에 대한 지지가 수도권의 투표행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주의 투표행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지역의 범위는 줄어들고 있다.

대구 경북지역의 대표적 산업이 섬유산업이라 쇠퇴해가는 산업구조에 따른 투표 행태라는 설명과 포항과 울산 등에서 호남인들의 유입에 따른 투표행태의 변화라는 설명 등 영남 지역의 투표행태 변화는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역주의가 이념에 의해 완전히 대체된 것은 아니지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권자인 사람들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주의의 약화가 가져올 영향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 집합적 투표행태인 지역주의가 바뀌고 있는 것은 한국정치에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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