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72)-‘무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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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72)-‘무채색’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3.09.22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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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변호사시험법은 로스쿨 수료 후 5년간 5회로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로스쿨에 재입학해 수료를 해도 다시 응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는 절대적 응시 금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위 오탈자들은 10년 여의 시간 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법조인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사랑샘재단(이사장 오윤덕)은 제도의 사각에 놓인 오탈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200만원의 마중물 지원금이 지급되며 지원금은 여행, 새로운 진로를 위한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경험과 활동 등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지원 대상자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약속이 되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전을 결심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경험과 사색 등을 담은 에세이 1편을 1개월 내에 사랑샘재단에 제출하면 된다. 에세이의 형식이나 길이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익명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지원금 신청 시에는 ①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 참여 동기 또는 계획의 요지를 기재한 신청서 1통(사랑샘재단 홈페이지 소정양식) ② 로스쿨 석사 학위증 등 변호사시험 평생응시금지 해당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③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사본 ④ 온라인 송금 수령 계좌번호 ⑤ 에세이가 익명으로 발표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이를 사전에 신청서에 기재해야 한다.

사랑샘재단의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에 관해 문의사항이나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이메일 ydoh-law@hanmail.net, 전화 02-3474-5300으로 연락을 하면 된다. -편집자 주

<무채색>

무명(필명)

나의 지난 5년을 나타내는 숫자 5개.

640점대로 시작해서, 730, 750, 860, 890점대까지.

의미 없는 물음이지만, 나에게 6번째 시험 기회가 있었다면 900점대 초중반의 점수가 나왔을까. 이렇게 꾸준히도 점수가 올라왔으니 어쩌면 내 꽃은 6년 만에 피어났을 수도 있는데. 누가 무엇을 근거로 내 화분을 5년 만에 버리는 걸까.

8년 전의 나는 어렸고, 꿈이 많았고, 다양한 색으로 가득 찬 모든 순간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하지만 로스쿨 3년과 수험생활 5년을 끝낸 나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신입으로 뽑기엔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었고, 로스쿨을 입학할 때의 스펙들은 유효 기간이 지나 빛이 바랬다. 로스쿨 석사 학위는, 연구직이 되기엔 부족했고 일반 사원으로 일하기엔 과했기에 기피 대상이 되었다. 오랜 수험생활로 건강은 악화되었고, 더 이상 새로운 무언가에 쏟을 열정도 남지 않았다.

발표 후 지금까지 몇 달간 취업 준비를 해보니, 새로운 일을 바닥부터 준비하는 일은 하던 공부를 이어서 1년 더 하는 것보다 재정적인 면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너무 버겁고 무서운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제는 무슨 꿈을 꾸고 무엇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인지도 막막하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변호사를 꿈꿔왔으니 사실상 10년 넘게 이 길의 끝만 보고 달려왔고, 그 긴 시간 꿈꿔왔던 미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꿈을 그릴 수 있을까…. “오래 공부했으니 합격 시켜달라”는 식으로 떼를 쓸 생각은 없지만, 시험을 칠 기회는 달라는 게 그렇게 잘못된 외침인가 싶어서 울컥하고 목이 멘다.

이제 나의 세상은 무채색이 되었다. 어떤 꿈을 꾸어도 반짝이지 않고, 삶의 의미는 사라졌다.

한때는 나를 빛내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그다음엔 나조차도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나를 잠식한다. 몇 달이 지나면 이런 생각이 안 들고 덤덤해질까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여전히 이 한 몸 건사하며 사는 게, 그 삶이 너무 무겁다.

다들 그저 살면 된다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면 된다고, 어디에나 길은 있다고 말을 하지만 아직 와닿지 않는다. 그저 산다기엔 매시간 매분 매초를 버텨내고 있고, 이제 더 이상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고, 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희망으로 가는 길을 찾아내야 하는 것은 결국 다시 나이기에, 지금 이 순간도 무섭다.

마중물 프로젝트를 통해 지원금을 받아 취업 준비에 보태고 있으니 이 에세이에서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럴 힘조차 없음이 지원해주신 분들께 죄송할 뿐이다. 사실 이 지원금을 받은 날조차도 울었다. 고작 이런 내가 되려고 내 20대가 그렇게 힘들고 아팠던 걸까 하는 마음에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슬펐다. 그래도 그 덕분에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으니 감사한 마음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슬픈 마음들은 여기에 훌훌 털어놓고, 그렇게 얻은 위로로 작은 힘을 내서 새로운 길을 향해 한 걸음 떼보려고 한다. 남은 내 삶은 조금이나마 평안해지길 바라며, 그리고 이런 나를 응원해주신 사랑샘 재단의 관계자분들, 지금도 어딘가에서 먹먹한 마음을 안고 살아내고 계실 다른 오탈자분들과 그 가족들의 삶 역시 평안하시길 바라며, 에세이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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