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71)-‘8년 만에 동굴에서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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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71)-‘8년 만에 동굴에서 나오다’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3.09.15 17: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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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변호사시험법은 로스쿨 수료 후 5년간 5회로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로스쿨에 재입학해 수료를 해도 다시 응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는 절대적 응시 금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위 오탈자들은 10년 여의 시간 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법조인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사랑샘재단(이사장 오윤덕)은 제도의 사각에 놓인 오탈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200만원의 마중물 지원금이 지급되며 지원금은 여행, 새로운 진로를 위한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경험과 활동 등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지원 대상자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약속이 되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전을 결심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경험과 사색 등을 담은 에세이 1편을 1개월 내에 사랑샘재단에 제출하면 된다. 에세이의 형식이나 길이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익명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지원금 신청 시에는 ①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 참여 동기 또는 계획의 요지를 기재한 신청서 1통(사랑샘재단 홈페이지 소정양식) ② 로스쿨 석사 학위증 등 변호사시험 평생응시금지 해당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③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사본 ④ 온라인 송금 수령 계좌번호 ⑤ 에세이가 익명으로 발표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이를 사전에 신청서에 기재해야 한다.

사랑샘재단의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에 관해 문의사항이나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이메일 ydoh-law@hanmail.net, 전화 02-3474-5300으로 연락을 하면 된다. -편집자 주

<8년 만에 동굴에서 나오다>

J(필명)

8년. 어두운 동굴 속에서 지낸 시간이었다. 밝은 미래를 꿈꾸며 당당하게 들어왔던 이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고, 나는 기대보다 나약했다. 수험생활은 마치 동굴에서 기약 없이 땅굴을 파는 기분이었다. 정신이 피폐해지고 처음으로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아보기도 하였다. 진단명은 불안장애. 이후의 수험생활은 공부와의 싸움이라기보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포기할 용기조차 없었던 나는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을 품고 그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 패배하였다.

어찌 보면 나는 세상이 두려웠을 뿐인 거 같다. 이미 발을 들인 길에서 끝을 보지 않는 이상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했고,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여겼다. 결국 막다른 길에 이르고 동굴에서 나오고 나서야 나는 주위를 돌아볼 수 있었다.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것이 바뀌어있었다. 부모님은 어느새 은퇴를 바라보고 계시고 나에게 남은 것은 어디다 써먹을지 모를 법학 전문석사 학위와 빚뿐이었다. 겁쟁이로 살아서는 안 되는 벼랑 끝까지 몰린 것이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실패의 좌절감을 곱씹을 틈도 없이 취업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한 처음에는 막막하였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이거나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극복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스스로 의지를 다졌다. 신기하게도 더 이상 그 동굴과 같은 수험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일에 의욕이 넘쳤다. 내가 나아갈 길은 무수히 많이 뻗어 있었으나 외면하고 한 가지 길만 고집하고 있을 뿐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구직활동 역시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각종 취업 자격증과 NCS와 전공 필기 등 여전히 공부는 계속해야만 했고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준비하는 일은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이미 몇 차례 구직에서도 탈락을 겪었지만 아직까지는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그리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그동안 외면하며 소홀히 하던 것에도 신경 쓰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는 가족들과의 시간이었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 가족은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4년 차 직장인인 동생이 경비 대부분을 부담하였지만, 마중물 프로젝트 덕분에 다행히 나도 여행에 보탤 수 있었다. 부모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주도 땅을 밟아보셨고, 많은 추억을 쌓았다. 비록 여행 마지막 날 가족들이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일이 있기는 하였지만 후회 없는 여행이었다.

두 번째는 내 건강이었다. 오랜 시간 앉아있으면서 생긴 척추질환과 스트레스성 질환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관리를 너무나 소홀히 한 탓에 각종 잔병들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수험생활을 하며 급격하게 불어난 살이 가장 큰 문제였다. 10초만 달려도 숨을 헐떡이는 저질 체력을 회복하고 다이어트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최근 집 근처에 새로 오픈한 헬스장에 등록을 일단 마치긴 했다. 분명 고된 길이겠지만 한편으로 기대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시험에 떨어진 지금 나는 최근 10년 중에서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다. 문득 내가 처음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던 계기가 떠올랐다. 분명 그 시작은 행복한 미래를 꿈꿨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행복이라는 목적은 잊은 채, 수단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며 가까이에 있던 사소한 행복들을 놓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동굴에 틀어박히지 않고 사소한 행복들을 놓치지 않으며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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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2023-09-19 00:17:48
참으로 유익하고 흥미로운 기사 잘 보았습니다. 이런 정보는 여기 아니면 구하기 쉽지 않은데, 귀중한 시간 내어 주셔서 정보 공유해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자님처럼 유능하고 탁월하며 책임감 넘치고 훌륭한 사람들이 있어 우리 사회는 살 만한 사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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