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35-법과 회계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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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35-법과 회계의 만남
  • 손호영
  • 승인 2023.09.0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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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법률가로서, 회계지식이 과연 필요할까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굳이 회계를 공부하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상식과 이해를 가지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회계지식이 있으면, 사안을 바라보는 데에 좀더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음은 분명합니다.

최근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3. 6. 15. 선고 2017다46274 판결)에서는 이러한 사안이 문제되었습니다. 2010년 대차 비정규직 근로자가 공장을 점거 농성했습니다. 현대차가 직접 교섭에 나서고, 직접 고용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점거 농성은 필연적으로 공장을 멈추게 했습니다. 현대차는 이후 점거 농성을 불법행위로 보고, 참가 근로자들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했습니다.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 사건이니, 판단할 쟁점은 일단 두 가지가 되겠습니다. 첫째는, 불법행위가 되는지, 만약 불법행위가 된다면, 둘째는, 손해배상의 규모는 어떠한지.

첫 번째 쟁점보다는 두 번째 쟁점이 이 글에서 주목하는 부분입니다. 오랜 법리를 한번 살펴봅니다. 93년 판례입니다. “법리상 제조업체에 있어서 불법휴무로 인하여 조업을 하지 못함으로써 그 업체가 입는 손해로는, 조업중단으로 제품을 생산하지 못함으로써 생산할 수 있었던 제품의 판매로 얻을 수 있는 매출이익을 얻지 못한 손해와 조업중단의 여부와 관계없이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차임, 제세공과금, 감가상각비, 보험료 등)을 무용하게 지출함으로써 입은 손해를 들 수 있다.”

2심(부산고등법원 2017. 8. 24. 선고 2013나9475 판결)은 이 판례를 들면서, ‘조업중단의 여부와 관계없이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을 손해액으로 산정했습니다. 그 계산식은 이러합니다. 즉, ① 연간 고정비용 382,855,288,129원을, ② 연간 가동시간 3,925.2시간으로 나누면, 시간당 고정비용이 나오므로, 여기에 ③ 공장 가동중단시간 278.27시간을 곱하면, 총 공장 가동에 따른 고정비 손해액 27,141,837,620원이 나오게 됩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상식적인 셈법인데, 더 들어가봅니다. 우선, ‘연간 가동시간’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것은 공장의 가동계획시간을 보면 됩니다. 미리 회사가 정해둔 계획을 증거로 확보하면, 이 부분은 쉽게 나옵니다. 그러면 ‘연간 고정비용’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2심은 이렇게 산정했습니다. 2010년 지출된 ① 직접비, 준직접비 합계 383,640,550,965원과 ② 간접비 17,174,737,164원을 합한 금액에서 ③ 변동비 17,960,000,000원(= 노무비 중 3,990,000,000원 + 복리후생비 중 282,000,000원 + 수도광열비 중 13,688,000,000원)을 빼서 구한 것입니다.

이것도 그렇구나 싶다가도, 직접비, 간접비, 변동비 이야기가 나오니 조금은 갸우뚱하게 됩니다. 사실 이 용어들은 회계용어이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운영할 때 하는 분석이 원가관리회계의 CVP 분석이라고 합니다. 원가(Cost), 조업도(Volume), 이익(Profit)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손익분기점(BEP: break-even point)을 계산할 수 있는데, 이는 ‘손실을 피하기 위해 회사가 달성해야 하는 매출액 수준’, ‘매출액 변동에 따른 영업이익의 변화 수준’ 등을 알려주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원가는 변동원가와 고정원가로 나눌 수 있는데, 변동원가는 ‘조업도가 변동함에 따라 총원가가 비례적으로 변동하는 원가’이고, 고정원가는 ‘일정한 관련범위 내에서는 조업도가 변동함에도 불구하고 총원가가 일정한 원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CVP 분석에서는 매출액에서 변동비를 공제한 값을 공헌이익(Contribution Margin)이라고 합니다. 공헌이익은 매출액에 비례해서 변동하는데, 이 값이 고정비 이상이어야만 회사에게 이익이 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고정비는 ‘영업레버리지’를 아는 데에도 필수적입니다. 영업레버리지가 높으면, 고정비가 지렛대 역할을 하면서 매출액이 커질수록 영업이익도 더 크게 커질 수 있습니다. 즉, ‘영업레버리지 = 영업이익의 변화율/매출량의 변화율’인데, 이는 ‘공헌이익/영업이익’이 되고, ‘공헌이익 = 매출액 - 변동비’, ‘영업이익 = 공헌이익 - 고정비’가 되므로, 결국 고정비가 클수록 영업레버리지는 커진다는 뜻이 됩니다.

이러한 원가관리회계의 맥락에서, 회사는 고정비를 계산해두고 있으므로, 법률가는 이 정보를 이용해서 손해액을 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과 회계가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실무를 하다보면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다보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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