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지막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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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지막 수업
  • 박상흠
  • 승인 2023.07.2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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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들)
박상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들)

“질문할 내용 없습니까.” 민사법 강의로 후학들을 양성하신 조무제 전 대법관께서 종강을 앞두고 수강생들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질문할지 몰라 한동안 교실은 침묵으로 휩싸였다. 몇 분간의 정적이 흐른 후 조교수님께서는 포화하는 법조시장에서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학생들에게 되물으셨다. 또 한동안 침묵이 흐르더니 혜안이 넘치시는 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대책을 세워주셨다. 변호사가 없는 시골에 내려가서 무료로 변론을 하고 주민들을 돕는 일을 하십시오. 때가 되면 주민들에게 소문이 나고 먹을 양식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점차 유지가 될 것입니다. 조무제 교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고 내게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어느덧 변호사 생활 10년의 세월이 지나고 보니 정말 앞서나간 선각자의 가르침이었음을 매일 매일 절감하곤 한다. 조교수님의 가르침을 듣지 않은 이들 중 최근 무변촌에 가서 변론을 하고 경쟁력을 확보한 변호사들의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조교수님의 가르침은 비단 무변촌에 가라는 말씀에 국한되지는 않는 듯하다. 기존 법조인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법조 영역을 미리 선점하고 개척하는 일을 하라는 주문이었다. 한국 법조계의 어른으로서 후학들을 염려하고 그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심 어린 충고는 오늘 우리 후배 로스쿨생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조교수님의 가르침을 내 10년간 법조 생활에 거울로 비추어 보면 나는 동아대학교의 사내변호사로서 근 6년간 근무한 경험을 되돌아보게 된다. 대학 관련 법률이 생경한 영역이므로 일반 변호사들에게는 익숙하지 않고 법률자문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소송을 의뢰할 때에도 사건의 개요를 이해시키는 데 상당한 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실무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그곳에서 눈물과 땀방울을 흘려보았기 때문에 법조문의 형식을 넘어 실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익힐 수 있었다. 따라서 대학변호사 퇴사 후 수임사건의 상당수는 대학교사건이 주를 이루고 있고 법률상담도 적지 않게 수임하고 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영역을 개척하는 법률가는 포화하는 법률시장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법이다. 또한, 조교수님의 가르침은 본인이 하고 싶은 법률사무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신 듯하다. 시골에서 변호사의 도움의 손을 간절히 찾는 주민들에게 도움의 손을 내미는 변호사, 그래서 자기일에 보람을 느끼는 변호사 말이다.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이어지는 예화를 들어보면 남들이 화려하게 보는 법조인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법조인이 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된다.

최근 저녁 식사를 함께한 상당한 지위에 오른 선배 법조인에게서 들은 말이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둔 상당수는 법원으로 검찰로 그리고 대형로펌으로 진출했는데, 나이가 많은 한 형님은 증권사의 부장으로 취업을 했다고 한다. 졸업식에서 모두가 그를 위로하고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했는데 세월이 흘러 20년이 지나고 보니 증권사의 부장으로 취업한 사람은 지금 명성 높은 증권사의 등기이사가 되었고, 주말에는 회사의 골프장에서 필드를 돌고 있단다. 또 동기들을 초대해 만찬을 제공하고 여행할 수 있도록 마음껏 후원해준다고 한다. 비록 물질적 풍요가 전부는 아니지만 증권사의 부장으로 첫발을 내디딘 그 형님은 자신이 하고 싶은 법조시장을 개척했고 지금은 만족하는 자리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결국, 오픈Ai와 법률시장의 개방화 그리고 해마다 포화상태를 재촉하는 법조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책은 자신이 하고 싶은 법률영역을 개척하고 자신이 행복감을 느끼는 법률가의 위상을 찾는 일이라 본다. 개척하고 도전하는 것은 법률가의 숙명이 된 셈이다. 내가 변론을 하며 법률사무의 고됨을 느낄 때마다 꺼내 보는 의뢰인의 한 통의 편지는 늘 넘어질 때마다 나를 일으켜주는 생수와 같아 힘겨운 학업시간을 보내고 있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듯해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박 변호사, 건승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너무 어지럽습니다. 여기저기에서 탁류가 시샘을 하며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높은 산 깊은 골짜기에서 신선한 새 물이 흘러내려 씻어 줄 때가 옵니다. 우리 박변은, 탁류에 찌든 애타는 가슴들이 찾을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숙명적인 인재임을, 나의 오랜 교육 경력에서 느낍니다. 1961년 저의 대학 졸업쯤에서 지리산에 갔다가 눈에 갇혀, 10일간을 산중 2채만 있는 집에 머무른 때가 있었습니다. 내다보면 전부가 흰색만이 있을 따름, 그 깊은 골짜기는 간곳없고, 평평한 둔덕으로 변해 있었으며, 오솔길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주인 모친의 당부가 ‘축대 밑을 나서지 마라, 다섯 발자국만 잘못 떼면, 천 길 낭떠러지라, 인생이 끝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인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박상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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