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54)-‘퇴고록(推敲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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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에세이(54)-‘퇴고록(推敲錄)’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3.05.19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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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변호사시험법은 로스쿨 수료 후 5년간 5회로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로스쿨에 재입학해 수료를 해도 다시 응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는 절대적 응시 금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위 오탈자들은 10년 여의 시간 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법조인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사랑샘재단(이사장 오윤덕)은 제도의 사각에 놓인 오탈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200만원의 마중물 지원금이 지급되며 지원금은 여행, 새로운 진로를 위한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경험과 활동 등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지원 대상자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약속이 되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전을 결심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경험과 사색 등을 담은 에세이 1편을 1개월 내에 사랑샘재단에 제출하면 된다. 에세이의 형식이나 길이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익명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지원금 신청 시에는 ①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 참여 동기 또는 계획의 요지를 기재한 신청서 1통(사랑샘재단 홈페이지 소정양식) ② 로스쿨 석사 학위증 등 변호사시험 평생응시금지 해당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③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사본 ④ 온라인 송금 수령 계좌번호 ⑤ 에세이가 익명으로 발표되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이를 사전에 신청서에 기재해야 한다.    

사랑샘재단의 ‘새로운 꿈을 긷는 마중물’ 프로젝트에 관해 문의사항이나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이메일 ydoh-law@hanmail.net, 전화 02-3474-5300으로 연락을 하면 된다. -편집자 주

<퇴고록(推敲錄)>

제파(題把/필명)

2023년 4월 20일 목요일, 나는 마지막 변호사시험에서 불합격하였다. 영원히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을 박탈당했다. 22일 토요일은 외할머니의 아흔한 번째 생신이셨다. 어머니는 차마 참석하실 수가 없었다. 제 어미조차 죄인으로 만들었느니 감히 무슨 낯으로 살겠는가.

그것은 발버둥이었다.

가난한 형편에, 취업과 경제활동을 한동안 미루어두고 법조인이라는 꿈을 품고 달려온 지난날의 세월은 ‘나로 인하여’ 이 불행의 고리를 끊고 이 험난한 상황을 타개해 보려 했던 발버둥이었다.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드리고 싶었고, 그 소망은 내게 원동력이 되었으며, 그 희망을 품으며 살아가던 순간순간들은 고단한 와중에도 그럭저럭 행복해서 살만하다고 느꼈었다.

그러나 그 발버둥은 결국에 깊은 수렁 속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게 된 일종의 허우적거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의 모든 노력과 시간은 없던 셈이 되어버렸고 결국 나는 단지 시간을 무의미하게 허비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질책과 실망, 후회 속에 인격은 무너져 내려갔다.

지난 8년간 변호사 자격증 하나만을 바라보면서 모든 걸 쏟아부어 봤지만 이제 그것이 내 길이 아니라고 한다. 지금까지 갔던 길은 잘못된 길이었으니 돌아가든지 아니면 여기서부터는 다른 길을 가라고 한다.

차라리 어딘가 다중우주가 존재한다면 그곳에 또 다른 나는 변호사이길 바란다. 그래서 부모님께는 자랑스러운 아들로, 동생에게는 듬직한 오빠로 살아가고 있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이 우주의 나는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한 자. 아무것도 아닌 자이다.

나는 법조직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와 꿈에 사망선고를 받았다. 세상은 더는 내 길이 아니라고 하는데, 미련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이겠지만 길이 끊겼으니 돌아설 수밖에 없다. 황망하고 좌절스러운 마음을 차마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더 어찌할 방법도 도리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아서 살지 않을 수도 없다.

죽을 용기도 없으니 어떻게든 살아 나갈 방도를 찾아야만 한다. 감당하기 어렵다. 어떠한 순간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온 마음을 지배하였다. 죽을 용기조차 없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죽을 용기’를 갖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여도 보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그 대단한 ‘죽을 용기’도 낼 수 있는 자라면 ‘살아갈 용기’는 어째서 갖지 못하겠는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사랑샘 재단의 마중물 프로젝트. 그것은 내게 ‘살아갈 용기’를 내어보라고 말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마중물 단 한 바가지라도 갈급한 자에게 생명수가 될 수 있음을, 죽기 직전까지 목말라 보지 못한 자는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좌절하고 있을 시간도 없고, 그럴 여유는 더더욱 없다. 시련과 좌절은 나를 더 강하게 단련할 뿐, 결코 나를 주저앉힐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정말 끝나는 것이다. 나에게는 아직 부모님도 조부모님도 형제도 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일어나야 하고 살아내야 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아프고 쓰라릴 것이다. 그럼에도 감내하고 살아내야 한다. 오늘의 좌절과 다짐은 평생 기억하게 될 것이다. 난 무얼 할 수 있는가. 끊임없이 물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지금 몹시 두렵다. 평생 가질 수 없는 변호사 자격증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인격이 뒤틀린 자가 될까 봐. 인성적으로도 못난 자로 살아갈까 봐. 내 삶은 앞으로 수련자의 삶이 될 것이다. 제정신인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몹시도 못난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기 위해.

문득 지나쳐온 사실들을 떠올려 본다. 내가 살아가야 하는 여러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과분하게도 나를 위해 기도해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저마다 종교와 신념은 다르더라도 그 기도 주제가 오직 나를 위한 기도였음을, 자기 자신이 아닌 이 보잘것없이 작은 자를 위한 기도였음을, 덮어두고 살았지만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비록 내가 그 기도의 내용을 이루는 삶은 살아내지 못하더라도, 내가 죽어있으면, 그들의 기도는 일말의 의미조차 상실한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일종의 배반과도 같다. 기대에는 못 미치더라도 신의를 저버린 자로 남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한때는 나도 말로는 입버릇처럼 “나 크리스천이오.” 떠들었던 때가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어느 순간부터 기도를 안 한 지 오래되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해달라던 소망이 공허한 외침처럼 느껴져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부터 다시 기도를 하려 한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자를 위한 기도. 나를 위했던 그들처럼 그 숭고한 기도를 말이다.

지나간 시간과 애썼음에 대해서는 나조차도 해줄 말은 전혀 없다. 그 누가 노고를 치하해 주랴. 단지 묻어두고 보내줄 따름이다. 오늘도 밤이 길다. 내일도 태양은 뜨겠지만 과연 나를 비출까?

비추어주지 않는다고 그곳에 단지 주저앉아 있을 텐가? 비추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텐가? 아니면 저 멀리 햇살 드리운 곳을 향해서 힙겹게라도 몸을 일으켜 걸어 나갈 텐가. 수통에 옮겨 담은 마중물 한 바가지, 허리춤에 질끈 묶고 내달아보자.

이 졸문(拙文)은 나와 같은 고통으로 고요한 심연처럼 어둡게 웅크려있을 이름 모를 그대에게 내보이는 편지이기도 하지만, 본래적 의미의 편지 그뿐만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자 출사표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나는 오탈자(五脫者)이면서도 오탈자(誤脫字)이다. 오탈자가 된 사실. 그 사실은 변호사가 되려는 목표에 있어서는 분명한 실패이다. 그 분명한 실패를 애써 외면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인정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퇴고(推敲)한다. 내 이야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고 나는 졸문(拙文)으로 남을 생각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끊임없이 퇴고(推敲)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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