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5)-로펌 생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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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5)-로펌 생활에 대하여
  • 박준연
  • 승인 2023.05.1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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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박준연 미국변호사

인터넷 게시판에서 미국 로스쿨을 졸업하고 소위 빅로, 그러니까 글로벌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는 생활은 어떤가 하는 질문을 봤다. 제일 간단한 답은 요즘에는 잘 안 쓰는 표현인지는 몰라도 그때그때 다른 ‘케바케’일 것이다. 어느 지역의 어느 로펌에서 어떤 팀의 일원으로 일하는가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케바케를 전제로 개인적인 경험을 써보려고 한다.

내가 처음 빅로 업무환경을 경험한 것은 로스쿨 2학년을 마친 여름방학이었다. 회사는 파크 애비뉴에 위치한 전형적인 뉴욕 로펌이었다. 서머 프로그램 첫날, 4년 차 선배 변호사와 같이 쓰게 될 오피스 문 옆에는 내 이름이 들어간 육중한 금속 네임 플레이트가 걸려있어서 그날 일 끝나자마자 기념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의 2개월은 로펌 생활로 일반화하기에는 좀 색다른 경험이었다. 팬더믹 이후에는 많이 바뀌었겠지만, 미국 대형 로펌에서 여름은 로스쿨 재학생인 ‘서머 어소시에이트’들이 오는 시기이다. 거의 매일 저녁에는 이벤트가 있었고 매일 점심은 이름만 들어본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과식해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졸린다는 ‘food coma’라는 영어 표현도 이때 처음 들어봤다. 이벤트의 내용도 다양해서 뮤지컬이나 콘서트에 가거나, 트라이베카의 쿠킹 스튜디오에서 요리하기도 했고, 요트를 빌려 허드슨강 세일링을 하기도 했다. 7년 가까이 되는 뉴욕 생활 기간 관광하거나 뉴욕을 즐긴 경험은 이때가 거의 유일했던 것 같다. 물론 회사에서 하는 활동이라 100% 마음 편히 즐길 수는 없었고 늘 긴장을 떨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나뿐 아니라 동기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로스쿨 졸업 후, 같은 회사에서 근무할 때와 도쿄에서 일할 때의 가장 큰 차이는 대면으로 일하는 팀의 크기이다. 뉴욕에선 대여섯 명의 어소시에이트들이 함께 소송이나 중재 업무를 하면서 행동을 함께한 적이 많았다. 기일이나 재판이 다가오면 팀원들과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생활을 같이하다시피 했다. 점심, 저녁은 일하면서 같이 시켜 먹고 남은 음식은 회사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그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해서 아침으로 먹는 날들이 이어졌다. 뉴욕에서 도쿄로 오고 나서도 다른 오피스의 변호사들과 큰 팀의 일원으로 일하기는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대면으로 무리를 지어 일하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대기업과 로펌 근무환경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외교부 근무하다가 뉴욕의 로스쿨에 유학했고, 일반 회사에는 근무해 본 적이 없지만 둘 사이에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로펌 근무를 하다 보면 업무와 그 외 생활의 경계선을 분명하게 긋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다. 법률 서비스뿐 아니라 다른 대고객 서비스에도 마찬가지인 부분이 있겠지만, 로펌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경우, 클라이언트의 당장 신변 및 재정 상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므로, 업무시간 밖이라고 해서 업무에서 손을 놓기가 쉽지 않다. 얼마 전 한 로펌의 내부 발표 자료에서 변호사들은 매일, 24시간 온라인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언급이 있었다고 해서 논란이 되었다. 24시간 온라인인 것은 요즘 시대 분위기에도 역행하지만,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을 좀먹는 업무 스타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장기적으로 이런 식으로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노련한 변호사는 당장 처리해야 할 일과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려도 되는 일을 신속하고 적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나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

가끔 업계 밖에 계신 분들이 힘든 일 하신다고 이야기하면 나는 으레 요즘 안 힘든 일이 있냐고 반문하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지나친 자신감에도 자기 연민에도 빠지지 않고, 성실한 직업인으로 생활해 나가는 것이 내 소박한 목표이다.

박준연 미국변호사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했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 ‘Latham & Watkins’ 도쿄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아태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글로벌 로펌인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스’ 도쿄 오피스에서 근무 중이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hs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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