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다시 읽는 일제 강제노역 사건 판결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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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시 읽는 일제 강제노역 사건 판결문(2)
  • 최용성
  • 승인 2023.05.0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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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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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피해자들이 외교부장관을 상대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자, 정부는 2005년 8월 26일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민관공동위원회’)를 개최하고,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와 군대 등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으며, 사할린동포 문제와 원폭피해자 문제도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라는 취지의 공식의견을 표명하였다.

이러한 사실관계에 기초하여 대법원은 대한민국헌법에서 출발하여 기념비적 명판결을 내린다. 먼저 제정헌법 전문에서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상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이라고 하고, 부칙에서 헌법의 최고규범성과 해방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 제정 가능성을 규정한 점, 현행헌법 전문에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규정한 점을 들어 일제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에 지나지 않고, 일본의 불법적인 지배로 인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그 효력이 배제”됨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반하는 “일본판결 이유는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므로 일본판결을 승인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된다.

이어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문제까지 끝났다는 주장이 부당함을 밝힌다. 즉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은…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 대가관계가 있다고 보이지 않음”을 짚어낸다. 이어 대법원은 (박정희 정권에서 이루어진) 청구권협정에 결코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가 나타났는데 오히려 이야말로 일제의 불법에 대한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근거임을 밝혀낸다. 즉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논리적으로 당연하다. 그리하여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아니하였음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되지 아니하였다”라고 선언한다. 이어 원고들의 청구권에 대하여 대법원은 “국가가 조약을 체결하여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함에 그치지 않고 국가와는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직접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근대법의 원리와 상충하는 점, 국가가 조약을 통하여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것이 국제법상 허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와 국민 개인이 별개의 법적 주체임을 고려하면 조약에 명확한 근거가 없는 한 조약 체결로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 이외에 국민의 개인청구권까지 소멸하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인데, 청구권협정에는 개인청구권의 소멸에 관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의사 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 충분한 근거가 없는 점, 일본이 청구권협정 직후 일본국 내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및 그 국민에 대한 권리를 소멸시키는 내용의 재산권조치법을 제정·시행한 조치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대한민국 국민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음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원고 등의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는 없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됨으로써 일본의 국내 조치로 해당 청구권이 일본국 내에서 소멸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이를 외교적으로 보호할 수단을 상실하게 될 뿐이다. 따라서 원고 등의 피고에 대한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원고들은 피고에 대하여 이러한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명쾌하게 결론 내리고 있다.

이처럼 기념비적인 대법원판결을 어떤 식으로든 무력화하는 조치는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는 점에서도, 항일독립투쟁을 대한민국의 정통성으로 삼은 헌법 전문을 사실상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도 중대한 헌법위반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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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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