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18-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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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18-모르겠다
  • 손호영
  • 승인 2023.05.0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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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모르겠다.”는 말도 때에 따라 다르게 쓰입니다. 상대에 대한 의문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임의적 감경사유의 존재가 인정되고 법관이 그에 따라 징역형에 대해 법률상 감경을 하는 이상 형법 제55조 제1항 제3호에 따라 상한과 하한을 모두 2분의 1로 감경한다는 취지의 의견이 다수의견이 되었습니다(대법원 2021. 1. 21. 선고 2018도5475 전원합의체 판결). 그러자 별개의견은 쟁점을 “크게 보면 이 판결에서 다루고 있는 임의적 감경에 관한 문제는 피고인에게 선고할 수 있는 형의 범위에 관하여는 사실상 생각을 같이 하면서 이를 판결서에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논리적으로 더 나은 것인지에 관한 논의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와 같이 정리하면서, “잘못된 문언해석에 얽매여 선고형을 정하는 처단형의 범위조차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형사 판결서를 작성해야 하는 현재 실무를 고집하는 것이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입니다. 여기서 ‘모르겠다.’는 정말 모른다가 아니라 알면서 볼멘소리를 한 것이겠습니다.

비슷한 유형의 표현은 여러 곳에서 보입니다. 대법원이 원심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힘을 주어야 할 곳을 구별하지 못한 것을 강하게 질책하는 표현도 보입니다(대법원 1959. 12. 31. 선고 4291민상150,151 판결). “도대체 원심은 무엇 때문에 대금액결정에 관하여 이와 같이 정력을 소비하였는지 모르겠다. 본건에서 대금이 얼마냐 또는 어떻게 결정할 것이냐 하는 점은 전연 논외가 아니냐 말이다.” 위 사례와 함께 보니, 대체로 대상에 대해 강하게 탓하고자 할 때, ‘모르겠다.’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짐작을 나타낼 때도 ‘모르겠다.’는 표현을 씁니다. 종래 토지 소유자 스스로 그 소유의 토지를 일반 공중을 위한 용도로 제공한 경우에 그 토지에 대한 소유자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의 행사가 제한되는 법리를 재차 확인한 다수의견이 있습니다(대법원 2019. 1. 24. 선고 2016다264556 전원합의체 판결). 이때,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다수의견이 가지는 논리의 전제를 짚어봅니다. “다수의견과 그 보충의견의 판단에는, 피고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인 사안에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로 포장 등이 오로지 일반 공중의 통행만을 위한 것으로서 일반 공중의 이익과 구별되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독자적인 ‘이익’이라는 개념을 상정하기 어려우므로, 토지 소유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부당이득의 반환을 구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 이후에 나오는 접속사는 당연하게도 ‘그러나’입니다. 잘 봐주어도 그런 생각인 것 같은데, 그래도 그건 옳지 않아. 이런 화법입니다.

정말 모를 때 판결에 “모르겠다.”는 표현이 쓰이기도 합니다(대법원 2020. 2. 13. 선고 2017도16939 판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가 어떤 연유로 그에 이르렀는지를 객관적으로 규명한다는 것은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명시적으로 모른다는 표현을 쓴 것은 드문 사례이기는 합니다.

“○○이 취득한 자금운용의 기회가 곧바로 피고인의 임무위배행위로 인하여 취득한 재산상 이익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 이 사건 위원회에 통상적인 이율보다 지나치게 낮은 이자를 지급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에 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으나, 기록상 이를 인정할 증거를 찾을 수 없다(대법원 2022. 8. 25. 선고 2022도3717 판결).”

업무상배임 성립 여부가 문제되었는데, 피고인에게 재산상 이익이 인정되는지에 대해서 판결은 가타부타 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는데 증거가 부족하니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만 기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판결에서 명확하게 피고인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지 않았다고 본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보다 명확히는 ‘피고인이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는지 모르겠다.’일 수 있습니다.

가끔 대법원은 하급심이 ‘모르겠다.’고 한 것에 대해 지적합니다. 더 알아봐야 했는데 성급히 모르겠다고 판결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더 세심히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것을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조부모가 손자녀를 입양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다수의견은 “조부모가 자녀의 입양허가를 청구하는 경우에 입양의 요건을 갖추고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부합한다면 이를 허가할 수 있다.”고 봅니다(대법원 2021. 12. 23.자 2018스5 전원합의체 결정). 그러면서 “(그러한) 점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채 위에서 본 이유만을 들어 재항고인들의 청구를 기각한 제1심결정을 유지한 원심판단에는 조부모에 의한 미성년자 입양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재판에 영향을 미친 법률 위반의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재항고이유는 정당하다(대법원 2021. 12. 23.자 2018스5 전원합의체 결정).”고 판시했습니다.

판결의 ‘모른다’는 표현은 이처럼 여러 의미를 함축하는데, 새삼 살펴보았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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